김인선 글모음/메디치·1만6000원 우선 익숙치 않은 이름, 글쓴이를 소개해야겠다. 철학을 공부하고 고전음악을 사랑했으며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등에서 기자로 일했던 김인선(1958~2018)은 마흔 즈음에 사회생활을 접고 경기도 산자락 마을로 들어갔다. 형의 사업 실패와 연대보증으로 맨몸이 되다시피 한 사정도 있었지만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그의 기질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집보다는 헛간에 가까운 장소에서 최소한의 벌이만 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그의 현실과 그냥 두기 아까운 글쟁이로서의 재능을 친구들이 모두 안타까워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팽이의 속도로’ 자신의 삶을 살다가 예순 나이에 급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첫 저작이자 유고집인 이 산문집은 2005년 이후 그가 썼던 글들을 사계절로 묶었다. 그가 일했던 잡지들처럼 한글의 말맛이 살아 있고, 기름기 뺀 검박한 필치로 시골살이를 기록했다. 시골살이라고 해서 자연 예찬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권정생과 같은 해맑은 눈으로 꽃과 동물들을 관찰하지만 까다로운 취향과 궁핍한 생활 사이에서 삶의 아이러니를 응시하는 모더니스트의 기질도 때론 블랙코미디 같은 에피소드 안에서 불쑥 뛰어나온다. 몸이 아파 꼼짝 못하는 어머니에게 들꽃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차마 못 꺾는 여린 심성과 겨울 한복판에 집안을 서성이는 귀뚜라미를 보며 “나도 죽으면 저 귀뚜라미처럼 냄새나는 골방과 화장실 빈 벽을 홀로 기어 다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현기증을 느끼다 “하기야, 지금 이미 그러고 있지만….” 곱씹는 씁쓸함에서 어찌 보면 기인과도 같았던 그의 삶이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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