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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국의 한국전쟁 문학 ‘통속적 무용담’이 대부분이죠”

등록 2019-07-07 18:31수정 2019-07-07 20:11

[짬] 육군사관학교 정연선 명예교수

최근 <잊혀진 전쟁의 기억-미국소설로 읽는 한국전쟁>을 펴낸 정연선 명예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최근 <잊혀진 전쟁의 기억-미국소설로 읽는 한국전쟁>을 펴낸 정연선 명예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을 어떻게 봤고, 한국전쟁에서 싸운 미군은 어떤 마음으로 총을 들었는지가 궁금했죠.”

2007년 교수직에서 퇴임한 정연선 육사 영어과 명예교수의 말이다. 육사 26기인 그는 1985년 미국 에머리대학에서 미국의 전쟁문학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땄다. 1·2차 세계대전 등 미국이 치른 전쟁을 다룬 이 나라 문학 작품을 읽고 미국인의 전쟁관과 전쟁심리를 밝혔단다. 귀국해 육사 강단에 다시 서면서 마음속에 숙제 하나를 품었다고 한다. 미국의 한국전쟁 문학만을 따로 떼어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34년이 지나 뜻을 이뤘다. <잊혀진 전쟁의 기억-미국소설로 읽는 한국전쟁>(문예출판사). 그가 최근 낸 책이다. 2일 서울 태릉 육사도서관에서 저자를 만났다.

“정년 뒤 미국의 한국전 소설·수기 100권 정도를 원서로 읽었어요. 그중 70권은 두세 쪽씩 요약했죠. 그렇게 책을 썼어요.” 그는 이번에 낸 책이 미국의 한국전쟁 문학만을 다룬 첫 책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다. 미국의 노벨상 수상 작가인 토니 모리슨은 한국전쟁과 매카시즘 그리고 죄수와 사회 하층민을 상대로 한 위험한 생체실험을 미국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1950년대 미국의 세 가지 사건으로 꼽았다. 전쟁 자체를 모른다면 전쟁의 기원이나 전쟁이 부른 한민족의 비극을 알 리가 없다.

<잊혀진 전쟁의 기억> 표지
<잊혀진 전쟁의 기억> 표지
미국인이 쓴 한국전쟁 문학은 어떨까? “대부분 통속 소설이죠. 험악한 전쟁을 이겨내는 무용담들이 많아요. 미 문학의 계보에 자리할 작품은 거의 없어요.” ‘내가 그곳에 갔었네’ 유의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왜 이 전쟁에서 싸우는지 그 이유를 묻는 게 미 전쟁문학의 전통이죠. 한국전도 비슷해요. 그런데 한국전 문학을 보면 표피적 경험의 묘사가 주된 특징입니다. 한국전은 미군이 추위로 고생한 첫 전투입니다. 이상하게도 인분 냄새 불평이 특히 많이 나옵니다. 장군 한 명이 ‘비행기나 타야 인분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소설도 있죠. 공산주의를 물리치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국가가 보내서 어쩔 수 없이 온 ‘신이 저버린 땅’ 한국에서 빨리 벗어나자는 생각이 많이 나와요.”

한국전쟁 5년 뒤 일어난 베트남전쟁만 해도 필립 카푸토(<전쟁의 소문>)나 마이클 헤어(<디스패치>)의 수기나 팀 오브라이언의 소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이 많이 읽혔지만 한국전쟁은 그에 버금가는 필독서가 나오지 않았단다.

통속성을 벗어났더라도 그 문제의식은 인종주의와 같은 미국 사회의 병리적 현상에 닿아있단다. 토니 모리슨이 7년 전에 쓴 장편 <고향>과 같은 작품이다. “한국전 귀환 병사의 사회 적응 문제를 다루고 있죠. 주된 묘사는 인종차별의 사회적 해악입니다. 필립 로스 <분노>(2008)도 한국전에서 전사한 청년의 죽음과 그로 인한 가정의 비극을 다뤘죠.”

한반도의 민족적 비극이 투영된 작품은 그나마 한국계 2세인 이창래(<항복한 사람들>)와 수잔 최(<외국인 학생>)의 작품 정도란다. “미국인에게 50~60년대는 2차대전의 여운이 남아 있어 이 전쟁에 대한 책과 영화가 많이 나왔어요. 60년대 말엔 베트남전쟁이 티브이를 통해 실시간 중계됐죠. 한국전이 끼어들 틈이 없었죠. 한국전쟁은 또 원상회복을 목표로 한 제한전쟁이었어요. 미국 정부가 이 전쟁을 국민한테 알리려고 하지 않았어요.” 한국전에 모두 178만명의 미군이 참전했고 4만명 이상이 사망·실종했지만 전쟁을 피부로 느낀 미국인은 참전 군인의 가족 정도였다는 것이다.

최근 ‘잊혀진 전쟁의 기억’ 펴내
‘미국의 한국전쟁 문학’ 첫 연구서
정년 뒤 100권 원서 독파해 집필
“베트남전 달리 널리 읽힌 작품 없어
민족적 비극 강조는 동포2세 작품뿐”

육사 26기로 72년부터 모교 강단 서

그는 90년대 들어 한국전 작품 출간이 다소 활기를 띠고 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참전 미군들도 고령화해 자신의 한국전 경험을 남기려고 하기 때문이죠. 북한 핵 논란이 커진 것도 영향이 있죠.”

한국전에 대한 미국의 피상적 인식은 이 나라 대통령들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관에서 한 연설에서도 잘 나타난단다. “치열한 전투를 겪은 미 병사들의 고통을 주로 이야기하죠. 한국에 대해선 경제발전 정도만 이야기합니다. 한민족이 겪은 비극적 고통은 이야기하지 않아요.”

포로와 피난민을 묘사한 작품이 많다는 것도 미국의 한국전쟁 문학의 한 특징이란다. 저자가 가장 인상적인 한국전쟁 작품으로 꼽은 <전쟁 쓰레기>(하진)는 바로 중공군 포로 이야기다. “한국전은 서로의 진영에서 자신의 이념으로 포로들을 전향시키려 했던 최초의 현대전이죠. 한국전에서 중공군이 겪은 참혹한 고통에 대한 하진의 묘사는 그 어떤 전쟁소설보다 더 사실적입니다.”

피난민 묘사가 많다는 점을 두고는 이렇게 밝혔다. “베트남전만 해도 전투가 벌어지면 주민들이 자신이 살던 지역을 떠났지만 우리처럼 양쪽의 국가로 도피하지는 않았어요. 한국전 민간인 희생자 100만명 가운데 상당수가 피난민이었죠.”

1970년 육사를 졸업한 저자는 전방근무 2년을 마치고 1972년 서울대 영문과로 학사 편입해 석사까지 마쳤다. “육사 동기 186명 중 100명이 베트남에 갔어요. 저 역시 베트남에도 가고 야전 장군이 되는 게 꿈이었죠. 그런데 육사 졸업 1년 만에 육사로 가라는 특명을 받았죠. 영어과 교수 요원으로요. 육사 때 제 영어 성적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사관 생도들이 ‘전쟁문학’ 수업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는 대목은? “무엇이 병사들을 돌진하게 하는지에 관심을 많이 보이더군요. 일종의 전투심리학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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