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리카르도 페드리가 편저, 윤병언 옮김/아르테·8만원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말년에 서양철학의 집대성을 위해 80여명의 동료학자들과 함께 기획한 철학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두번째 권이 번역돼 나왔다. 1권 고대·중세편에 이은 근대편으로 르네상스의 시작부터 칸트까지를 다룬다.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이탈리아 학자들이 집필했으니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르네상스 이야기가 흥미롭고 유려함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비전문가를 위한 안내서를 자처하는 이 책은 근대에 피어난 주요한 철학적 질문들의 전후맥락을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주제들이 흩어진 듯 연결되는 르네상스 철학의 특징과 맞아떨어지는 서술방식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책의 한 부분은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과 철학의 발전에 중요한 매개가 되었던 점성술과 마술의 역할에 대해서 소개한다. 16세기 마술사이자 화학자, 발명가였던 조반니 바티스타 델라 포스타는 자연의 변형이라는 관점에서 마술을 자연철학의 일부이자 실용적인 학문으로 받아들였다. 자연의 변형에 대한 그의 연구는 화학과 광학 분야에서 큰 성과를 냈다. 이러한 르네상스의 과도기적 성격은 점성술과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의 공존을 가능하게 했지만 16·17세기의 전쟁과 혁명, 상업의 성장 등 혼란의 세기를 거치며 새로운 질서와 관념의 관계를 모색하는 근대적 사유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 데카르트, 칸트 등 주요 철학자들을 다루면서 왜 이런 철학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당대 사회와 문화를 아우르는 폭넓은 관점을 제시해, 개괄하기 이상의 풍요로운 독서 체험을 제공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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