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가 읽어주는 신곡-시공간을 뛰어넘는 단테의 생생한 목소리 박상진 지음/한길사·1만6000원
“그대들의 씨앗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를 따르기 위해 태어났다.”(신곡 ‘지옥’편 26곡 중에서)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중세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문인이자 사상가, 정의로운 공동체를 꿈꿨던 정치가였다. 무엇보다, 단테는 궁극의 사랑과 구원을 좇은 순례자이자 구도자였다. 30대 중반 정쟁에 휘말려 전 재산과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돼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대표작 <신곡>은 그가 유럽을 떠돌면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20년 가까이 집필한 대서사시다. 쓰인 차례대로 지옥, 연옥, 천국 등 세 권으로 짜였다. 각 책에 33개씩 모두 100곡(지옥편 서곡 포함), 1만4233행의 시가 유려한 운율과 리듬을 타고 흐른다.
외젠 들라크루아, <단테의 배>, 1822. 한길사 제공
이탈리아 문학 전공자인 박상진 교수의 <단테가 읽어주는 신곡>은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단테의 순례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의 내면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신곡에서 재현되는 내세는 당대의 신학과 천문학에 기반한 우주와 내세의 구조를 치밀한 기하학적 구조로 보여준다. 신곡은 그러나 문장의 의미가 압축적인 시문인데다 당대의 사유 체계와 시대적 배경이 반영돼 있어, 관련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단테 자신이 문학, 철학, 정치학, 신학, 언어학, 자연학 등 여러 분야에서 고대와 중세를 섭렵한 지식인이자 경계인이었다.
<신곡>의 내세구조. 단테의 놀라운 상상력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내세를 치밀한 구조와 다양한 인물로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한길사 제공
신곡이 쓰일 당시는 활자 인쇄술이 나오기 전이어서, 모든 책은 육필원고로 탄생하고 필사본으로 확산됐다. 책읽기는 묵독이 아니라 낭독이 보편적이었으며, 700년전 독자들도 낭송과 필사로 신곡을 접했다. 단테는 신곡을 지식인의 문자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민중의 입말인 토스카나 속어로 썼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필사본만 825종에 이른다. 지은이가 책의 제목을 <단테가 읽어주는 신곡>으로 뽑은 이유다. 청각(낭송)은 시각(텍스트 읽기)보다 훨씬 섬세하다.
지은이는 “사실상 <신곡>은 소리로 가득 찬 세계”라고 말한다. “처음 지옥에 들어선 단테는 소리로 지옥의 본질을 순식간에 깨닫는다. 별 하나 없는 어두운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한숨과 울음, 비명을 들은 단테는 울음을 터뜨린다.” 연옥을 거쳐 “천국에 오른 단테의 귀에는 조화로운 협화음이 천사의 감미로운 노래와 함께 들려온다.” 책의 원제 <디비아나 코메디아(Divina Commdia)>는 이탈리아말로 ‘신성한(신에 관한) 희극’이다. 비극이 아닌 희극인 이유는 지옥에서 시작한 순례의 여정이 결국 천국에 이르며, 그 과정에서 천상의 구원과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단테는 ‘코메디아’를 “신과 인간의 합일”이라고 표현했다.
귀스타브 도레, <베르길리우스와 단테 2>, 1861. 한길사 제공
단테는 내세 순례의 안내자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지옥·연옥)와 요절한 첫사랑이자 영원한 연인이었던 베아트리체(천국)를 호출한다. 지은이는 작품 속 주인공 단테가 자신의 내세를 가는데 굳이 길잡이를 세운 이유와 “뒤를 따라가면서 서성거리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주목한다. 그리고 단테에게서 “자신을 객관화해서 살펴보고 싶었던(…) 성찰하는 태도, ‘근대적 개인’”을 발견한다. 단테는 그렇게, 끝없는 고통, 처절한 정죄, 찬란한 환희의 세계를 차례로 둘러본 뒤 다시 현세로 돌아온다. “단테는 인간의 구원을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추진해야 할 기획으로 생각했다.”
지은이는 단테의 글이 뛰어난 감수성으로 타자의 목소리에 공감하고 응답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단테를 제대로 읽는 것은 유럽적 보편주의와 유럽 중심주의 같은 가짜 보편성이 아니라, 단테 곁에 있는 진정한 차원의 보편주의를 들여다보고 꺼내서 여러 맥락에 비춰 견줘보는 일”이다.
존 플렉스먼, <샤를 마르텔>. 금성의 하늘에서 단테와 베아트리체(오른쪽)가 마르텔을 만나는 장면. 한길사 제공
이런 생각은 <신곡> 원저의 ‘운율을 살리는 번역의 어려움’ 문제로도 확장된다. 신곡은 각 시편을 3연으로 구성한 삼연체 기법에 더해, 전체 1만4233행의 각각을 11개의 음절로 엄격하게 맞췄다. “이렇게 촘촘히 짜인 운율구조 속에 심오한 내용을 담아낸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신곡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이런 운문 형식을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은이는 “운율을 기계처럼 흉내내지 말고 단테 고유의 목소리를 번역어의 소리에 담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은이는 맺음말에서 “때로는 눈을 감고 귀를 열어보라”고 주문한다. 눈을 감으면 저 앞을 향했던 시선은 순식간에 내면으로 돌아서고, 내면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신곡을 읽는 것, 단테라는 기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바로 그런 경험”이다. 단테의 순례길에 영혼의 안내자가 있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신곡>의 풍부한 독해를 도와줄 뛰어난 길잡이 책을 얻게 됐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