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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과거사 연구 치열…접근법은 제각각

등록 2005-12-23 18:03수정 2005-12-23 18:19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지난 8월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3090명을 발표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A href=\"mailto:jongsoo@hani.co.kr\">jongsoo@hani.co.kr</A>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지난 8월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3090명을 발표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2005 학술계 진단 (중) 역사 논쟁과 미래 모색

진보-보수, 근현대사 둘러싼 정면 논쟁은 적어

2005년은 ‘기억투쟁’의 해였다. 광복 60년의 의미까지 더해 과거사를 둘러싼 학계의 고심이 깊었다. 근현대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미래를 어떻게 개척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갈렸다. 그러나 서로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논쟁은 적었다. 학계는 각자의 방식으로 제 우물을 파는 데 집중했다.

친일 청산 문제가 그 우물 가운데 하나였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8월, 친일인사 369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학계의 친일 문제 연구를 집대성하고 그 성과를 시민사회와 나눠 가지려는 노력이었다. 12월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 역시 학계의 오랜 숙원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안병욱 카톨릭대 교수, 안경환 서울대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등이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친일인사 명단 발표 ‘과거사 정리위원회’ 도 출범
보수쪽선 ‘박정희 재해석’ 반격나서
동아시아 역사 공동서술도 새로운 지평 열어

이런 흐름에 대한 반격은 현대사 전체를 재해석하는 시도로 드러났다.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이대근 외·나남출판 펴냄)와 <현대한국사강좌>(김일영 외·생각의나무 펴냄)는 이런 점에서 상징적인 책이다. <…한국경제발전사>는 식민지근대화론에서 다져진 실증경제사학의 방법론을 17세기 이후 오늘에 이르는 한국 경제 전체에 적용했다. 식민지 시기 경제성장, 60년대 수출주도전략, 70년대 중화학공업전략 등을 통해 한국이 고도성장을 이뤘다고 긍정 평가했다. <현대한국사강좌>도 이승만 이후 현대사를 적극 평가했다.

2005 학술계 진단
2005 학술계 진단
현대사에 대한 ‘보수적’ 재해석은 특히 박정희 시기에 대한 적극적인 긍정으로 이어졌다.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가 박정희 시기를 다루는 연중 콜로키움(전문가 토론회)을 진행했다.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김형아 지음·일조각 펴냄)은 박정희 통치 시스템을 실증적으로 살폈다. 이런 연구 흐름은 경제성장의 성취를 실증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판적 역사학자들은 여기에 정면 대응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서술이 그것이다. 폐쇄적 민족주의 패러다임을 스스로 극복하면서 평화를 지향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미래의 대안으로 제시하려는 노력이었다.


<미래를 여는 역사>(한중일공동역사편찬위·한겨레신문사 펴냄)는 대표적인 성취다. 한·중·일 세 나라 학자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3년여에 걸쳐 공동 저술했다. 세 나라에서 동시에 출간했고, 각 나라에서 중등 역사교과과정의 부교재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한·일 여성학자들이 주축이 된 <여성의 눈으로 본 한·일 근현대사>(한일여성공동역사교재편찬·한울 펴냄), 한·일 현직 교사들이 쓴 <조선통신사<(한일공통역사교재 제작팀·한길사 펴냄) 등도 공동역사연구의 길을 넓혔다.

아직 본격화되진 않았지만, 비판적 사회과학계 내부에서 중요한 논쟁거리가 제시되기도 했다. ‘헌법의 민주적 개혁 전략’을 둘러싼 학자들간의 시각차가 드러났다. 박명림(연세대)·홍윤기(동국대) 교수 등이 몇몇 학술대회와 글을 통해 “87년 체제 극복을 위한 헌법의 민주적 개혁”을 주창했고, 계간지 <창작과비평> <황해문화> 등이 여러 기획글을 통해 힘을 보탰다. 반면 최장집(고려대) 교수 등은 “민주주의를 버리고 헌정주의로 귀결될 일”이라며 이를 비판했다. 현재 이 논쟁은 잠복중이다. 여기에는 현재 한국 사회를 ‘87년 체제’로 볼 것인지 ‘97년 체제’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시각차도 깔려 있다. 더 깊이 들어가자면 제2의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번질 여지가 충분하다. 관심있는 교수들의 입장도 예리하게 엇갈리고 있다. 2006년에는 정치학·사회학계를 중심으로 뜨거운 화두가 될 전망이다.

해가 저물기 직전 불거진 ‘황우석 사태’는 인문사회과학계에도 깊은 성찰의 과제를 남겼다. 격월간 <녹색평론>, 계간지 <환경과생명>을 중심으로 장성익·김종철 등 몇몇 철학자와 생태론자들이 황우석 연구의 ‘재앙적 징후’를 경고했지만, 대다수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자연과학자들의 일로 미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학술출판계, ‘근현대사 해석’ 성취 두드러져

‘개발없는 개발’ 식민지 근대화론 허점 반박
‘우남 이승만 연구’ 현 기득권 세력의 뿌리 분석
‘북조선…’ ‘한국전쟁’ 소장학자들 연구노력 돋보여

학술출판에서도 근현대사 분야의 성취가 두드러졌다.

<개발없는 개발>(허수열·은행나무 펴냄)은 20여년에 걸친 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발전론 사이의 논쟁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방법론을 통해 오히려 그 주장의 허점을 반박했기 때문이다. 지은이인 허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본거지인 낙성대경제연구소 출신이다. 그는 실증경제사학을 통해 일제 지배의 ‘민족차별적 성격’을 분석했다.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 틀림없는 이 역사 논쟁의 가닥을 잡기 위해선 <고종황제 역사청문회>(이태진 외·교수신문사 펴냄)를 읽어볼 만하다. 고종 시기의 성격을 놓고 역사학자들이 펼친 대논전을 정리했는데, 그 대부분이 식민지근대화 논쟁과 직접 관련이 있다.

<우남 이승만 연구>(정병준·역사비평사 펴냄)는 학술적으로나 대중적으로 높이 평가할만한 책이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일제 시기부터 해방에 이르는 시·공간을 실증적으로 촘촘하게 엮었다. 현재 한국 사회의 기득권 및 보수 세력을 이루는 고갱이가 이승만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군의 정치 그룹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흥미진진하다.

이와 관련해 <북조선사회주의체제 성립사>(서동만·선인 펴냄)와 <한국전쟁>(박태균·책과함께 펴냄)을 빼놓을 수 없다. 두 책 모두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망라하면서 이를 다시 넘어서려는 현대사 연구자들의 노력이 스며 있다. <북조선…>은 본격 학술서고 <한국전쟁>은 좀더 대중적으로 쓰였다. 소장학자들의 실증적인 현대사 연구 노력이 없었다면 ‘박정희 재해석’의 흐름이 2005년 학술 출판계를 지배했을 것이다.

<위기의 노동>(최장집·후마니타스), <도덕교육의 파시즘>(김상봉·길 펴냄) 등은 한국 사회의 현재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심층 분석한 책이다. 현실의 문제에 고개 돌리지 않는 두 학자의 학문적 모색이 잘 담겨 있다. 특히 박정희-전두환 시기에 형성된 현행 중등 도덕교육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 <도덕교육의 파시즘>은 철학자·윤리학자 내부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신개발주의’ ‘토건국가’ 등의 개념을 정착시킨 <신개발주의를 멈춰라>(조명래 외·환경과생명 펴냄), <개발공사와 토건국가>(홍성태 외·한울아카데미 펴냄) 등도 주목할 만하다. 외국이론의 수입에 매달리는 대신,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한국적 개념틀을 모색하고 이를 구체적 정책 대안으로 이어붙이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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