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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해설은 시인의 축제에 동참하는 따뜻한 협업이죠”

등록 2019-07-19 06:00수정 2019-07-19 19:48

시집 해설 전문 유성호 문학평론가
11년 만의 평론집 ‘서정의 건축술’
“서정과 윤리성은 시의 두 핵심”
서정의 건축술
유성호 지음/창비·2만원

유성호 교수(한양대)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시집 해설을 가장 많이 쓰는 평론가일 것이다. 그 자신은 시조집 50여권을 포함해 200권 남짓한 시집의 해설을 썼을 것으로 헤아렸다. 200권이라면, 한 권당 해설 분량을 평균 잡아 원고지 70매 안팎이라 칠 때, 그 자체로 단행본 열권이 넘는다.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2008) 이후 11년 만에 신작 평론집 <서정의 건축술>을 낸 유 교수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시집 해설, 시에서 서정의 중요성, 난해시에 대한 생각 등을 들어 보았다.

“평론과 해설은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평론은 평론가가 자신의 테마를 가지고 텍스트를 끌어오지만, 해설은 주어진 텍스트의 장점을 찾아 덕담을 하는 글입니다. 얼핏 보기에 장점이 없을 것 같은 시인한테서도 장점을 찾아서 의미화해 주면 해당 시인에게도 도움이 되고 비평가로서도 보람을 느끼게 되죠.”

시 비평집 <서정의 건축술>을 낸 유성호 한양대 교수. “서정시의 여러 과녁들에 거리를 두지 않고 최대한 그에 즉해서 미덕을 찾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시 비평집 <서정의 건축술>을 낸 유성호 한양대 교수. “서정시의 여러 과녁들에 거리를 두지 않고 최대한 그에 즉해서 미덕을 찾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는 “칭찬과 덕담을 주로 한다는 점에서 해설은 비평의 엄정함에서는 어느 정도 일탈한 글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점은 해설이 과거 발문과 서문의 전통을 잇는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쓴 정지용의 글처럼 시인의 지인이 개인적 인연과 작품 소개를 겸해서 쓰는 게 발문이고, 한용운이 자신의 시집 <님의 침묵>에 붙인 ‘군말’처럼 시인 자신이 쓴 글이 서문 또는 후기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해설은 비판적 분석보다는 시집의 장점과 문학사적 의미를 찾아줌으로써 시인의 축제에 동참하는 따뜻한 협업입니다. 그런 시집 해설을 가리켜 ‘주례사 비평’이라 비난하는 것은 장르적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봐요.”

평론집 <서정의 건축술>은 크게 보아 시의 서정성과 윤리성, 난해성을 다룬 일반론과, 허만하와 황동규 같은 원로 시인에서 최금진과 신용목 등 소장파 시인들에 이르는 시집이나 시세계를 다룬 작가론으로 나뉜다. 20, 30대 젊은 시인들, 그리고 ‘미래파’로 일컬어지는 실험적이고 난해한 시인들은 보이지 않는데, 이 점은 그가 책 제목에서부터 강조한 ‘서정’의 유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근대 초기 시의 서정은 단일한 주체를 상정했지만, 지금 젊은 시인들의 서정은 단일한 주체의 내면 토로와는 거리가 있지요. 그러나 저는 반서정이나 탈서정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반동일성, 탈주체가 두드러져 보이더라도 다시 그것을 통어하는 어떤 질서만큼은 주체의 자기 표현이라는 서정의 원리에 기대고 있는 것이죠.” 서정과 함께 그가 강조하는 것이 시에서 윤리성의 유무다. 이번 평론집 맨 앞에 실린 ‘우리 시대의 ‘시적인 것’과 윤리성’이라는 글에서 그는 시에서 사회역사적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순수예술적 의장(意匠)이나 시에 관한 메타적 논의도 중요하지만, 사회역사적 층위의 가치판단이 없이는 ‘시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나 해석은 불구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유성호 교수는 한 월간지에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이라는 글을 10회 이상 연재했고, 가수 정태춘의 두 시집 <노독일처>와 <슬픈 런치>에도 해설을 썼다. 그는 “조용필의 노래 중 서른여섯 곡의 가사를 외워 부를 정도로 좋아한다”며 “조용필도 그렇고 정태춘도 그렇고 단순한 음악인이 아니라 문학사적 사건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 이후 11년 만에 신작 평론집 <서정의 건축술>을 낸 유성호 한양대 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 이후 11년 만에 신작 평론집 <서정의 건축술>을 낸 유성호 한양대 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는 지금 문학잡지 세 곳의 편집위원 또는 주간을 맡으면서 문학 관련 조직 두어 곳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셈인데, “앞으로는 해설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비평적 에세이 또는 테마가 있는 글쪽으로 건너가고 싶다”고 밝혔다.

“윤동주 시 전편 해설집을 낼 생각으로 지금 3분의 2 넘는 작업을 해 놓았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한국 시사(詩史)는 꼭 쓰고 싶어요. 그리고 사실 제가 제일 재미있어 하는 건 내러티브로서의 문학사예요. 조직과 인간관계에 따른 문인들의 이합집산, 매체의 역사 등이 어우러진, 실증과 해석의 문학사라 할 수 있겠죠. 제가 주로 시 비평만 하다 보니 소설쪽 청탁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데, 가까운 소설가들에 대해서는 평론을 쓸 생각입니다. 그런데, 약속 드릴 수 있는 건, 저는 시는 쓰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하하.”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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