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유방사 다케다 마사야 엮음, 김경원 옮김, 이라영 해제/아르테·2만원
연예인들의 ‘노브라’ 사진이나 “음란한 건 여성의 몸이 아니라 당신 시선”이라 외치는 여성단체의 상의 탈의 시위가 늘 화제가 되는 데서 보듯, 여성의 가슴은 종종 사회적이고 문화적이면서 정치적인 것이 된다.
<성스러운 유방사>는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 일부의 갖가지 유방 재현과 관련 복식을 검토한 문화사다. 일본의 ‘유방문화연구회’를 중심으로 문화연구자 20여명이 10년 동안 진행한 연구 결과를 묶은 것이다. 미국 역사학자 메릴린 옐롬이 쓴 유명한 <유방의 역사>(1997·한국어판 절판)가 떠오르지만, 이 책은 동양을 중심으로 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한국의 유방 이야기는 빠져 있어 그 아쉬움은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의 해제로 달랠 수 있다.
20세기 초 중국의 자매를 그린 포스터. 얇은 비단 한장만 걸쳐 속이 훤히 보이게 했다. 아르테 제공
유방 문화사가 성스러운 ‘모성의 유방’과 성적으로 대상화된 ‘에로틱한 유방’의 대립이라고 거칠게 구분한다면, 그 사이에 사람 수만큼 많은 유방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책은 드러낸다. 근대 이전 일본에서는 유방을 성적 대상으로 여긴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 유방의 융기된 부분은 점차 유혹의 기관이 되어 다양한 ‘가슴 이야기들’은 삭제되어 갔다. 2차 대전 직후 미국이 일본에 보낸 ‘라라 물자’(구제 물자) 속 양장의 영향으로 값비싼 브래지어는 ‘단정한 차림’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다. 가정에 속박된 ‘어머니의 몸’은 점차 노동력과 상업적 가치가 있는 몸, 사회성이 있는 몸이 되었고 여성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1930년대 중국의 누드 모자상을 그린 포스터. 아르테 제공
중국에서는 유방의 압박과 해방 물결이 차례로 오갔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가슴을 눌러 가리는 속옷이 있었지만 1920년대엔 유방의 해방을 제창한 ‘천유(天乳) 운동’이 퍼졌다. ‘유방 해방론’은 여성해방·민족혁명·국가부강 등의 맥락과도 결합했다. 문화대혁명 시기(1966~76) 이후 신중국은 ‘남녀평등’을 국시로 삼았고 여성도 가슴을 납작하게 하는 등 외모에서 ‘남자와 똑같이 되기’를 중시했다. 하지만 중국 문학에서 “유방의 표현이 요동치고”, 전투에서 죽다시피 한 팔로군에게 유즙을 먹여 살려냈다는 ‘혁명미담’을 다룬 소설이 각광받으면서 ‘올바른 젖가슴’론이 유행한다.
1928년 중국 여성 잡지에 실린 속표지 그림. 풍만한 유방의 여성 누드화를 배경으로, 납작한 가슴의 여성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아르테 제공
책은 그밖에도 인어공주와 조개껍데기 브래지어의 변천, 중국의 여장 남자 배우들, ‘정상적인 가슴’ 찾기에 골몰하는 여성들, 남자들의 유방과 긴 유방을 가진 수컷(남자) 야인 설화 등의 문화를 다양하게 찾아 실었다. 소설 속 여성 캐릭터의 동상 가슴을 움켜쥐는 관광객들 이야기, 가슴을 도려내는 고문 끝에 순교한 서양 가톨릭 여성 성인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명대 <삼재도회>에 수록된 유방이 긴 남자 야인의 그림. 아르테 제공
이라영의 해제는 한국적 맥락을 담았을 뿐 아니라 이 책의 유방사가 간과한 중요한 부분을 챙겨 ‘신의 한수’가 되었다. “여성의 가슴은 학살의 역사에서 더욱 집중적으로 공격받았다. 가슴을 향한 폭력도 기록되어야 한다. (…) 상처를 받을지언정 누구를 해치지 않는다. 그 가슴이 가장 편한 상태로 내버려 두자.”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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