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열린책들·1만2800원 그날의 이야기는 1933년 2월20일 베를린의 국회의장 궁전에서 시작된다. 사업가 24명이 궁전에 모이자, 헤르만 괴링 국회의장이 등장해 곧 있을 선거를 언급했다. 사업가들은 나치당을 위해 먼저 나섰다. “신사 여러분! 모금함으로!” 순식간에 돈이 쌓였다. 모금 이유는 간단하다. “부패는 대기업의 회계 장부에서 긴축 불가 항목이며 거기에는 로비, 신년 인사, 정당 후원 등 다양한 명칭이 붙는다.” 소설 <그날의 비밀>에는 1930년대 2차 대전 전야를 다룬 16개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책의 주인공은 역사의 조명을 받은 주연들이 아닌, 사건에 휘말렸던 무수한 공범자들이다. 저자는 히틀러나 괴링 같은 정치인들의 뻔뻔스러움보다 이들을 도운 기업가들의 무덤덤함에 더 주목한다. “스물네명의 인사는 호적상의 이름만으로 불리지 않는다. (…) 그것들은 우리의 자동차, 세탁기, 세제, 화재 보험, 그리고 건전지의 이름이다. (…) 그를 이어 그의 아들, 아들의 아들이 그 왕좌에 앉을 것이다.” 저자가 1933년 2월20일이 과거가 아닌 현재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150쪽의 이 소설은 2017년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섬세하면서도 시니컬한 문체는 오히려 ‘그날’의 비극을 극대화한다. 1938년 독일군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은 사건을 담은 이야기 ‘전격전’은 전투를 의미하는 소제목과 달리 평화로웠던 국경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녀들이 화환을 내밀었고 군중은 나치 문장이 그려진 작은 깃발을 흔들었으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히틀러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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