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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있는가?

등록 2019-07-26 06:01수정 2019-07-26 20:08

스티븐 킹 신작 ‘아웃사이더’의 질문
연쇄살인 뒤에 도사린 존재 ‘이방인’
‘빌 호지스’ 연작 홀리 기브니도 나와
아웃사이더 1, 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각 권 1만3800원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있는가?’ 스티븐 킹의 신작 장편 <아웃사이더>는 이런 질문으로 독자를 자극한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소도시 플린트 시티에서 열한살 소년 프랭크 피터슨이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수사를 담당한 형사 랠프 앤더슨은 목격자들의 진술과 지문 그리고 디엔에이(DNA) 증거에 따라 영어 교사이자 지역 어린이 야구단 코치이기도 한 테리 메이틀랜드를 체포한다. 그러나 메이틀랜드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실제로 사건 당시 그가 인근 도시에서 열린 모임에 동료 교사들과 함께 참석했음이 확인된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게 바로 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테리가 범행 당시 두 곳에 동시에 있었다는 ‘증거’를 앞에 두고 랠프의 부인 지넷과 랠프는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범인으로 몰려 체포된 테리 자신은 “카프카의 소설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야. 아니면 <1984>”라는 말로 자신이 놓인 상황의 부조리를 표현한다. 이렇듯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딜레마를 제출한 작가가 어떻게 그 딜레마를 해결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아웃사이더>를 읽는 재미의 하나다.

‘공포의 제왕’ 스티븐 킹의 신작 <아웃사이더>는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 위에 서 있다. 황금가지 제공
‘공포의 제왕’ 스티븐 킹의 신작 <아웃사이더>는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 위에 서 있다. 황금가지 제공
“세상에 중력처럼 견고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누구라도 같은 시각에 두 군데의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자명한 물리법칙을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아는 과학의 범주에 갇히지 않는, ‘초자연’적 존재나 현상일 것이다. 소설 본문에서는 ‘이방인’으로 번역된, 책 제목 ‘아웃사이더’(outsider)가 바로 그런 존재를 가리킨다. 한국어판 1권 말미에서 지넷이 남편 랠프에게 던지는 질문에 그 정체가 암시되어 있다. “‘두 명의 테리’라는 수수께끼의 유일한 해답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면?”

프랭크의 죽음과 테리의 체포 이후에도 플린트 시티에는 끔찍한 비극이 그치지 않는다. 수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협박이 랠프에게 전해지고, 테리의 변호인 하위 골드와 그의 일을 돕는 전직 경찰 알렉 펠리는 랠프와 자신들이 공통의 적을 상대로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1권 말미에 처음으로 등장한 중년 여성 홀리 기브니는 ‘이방인’을 상대로 한 싸움을 주도하며 소설이 끝날 때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홀리 기브니는 스티븐 킹의 전작들인 ‘빌 호지스 3부작’ <미스터 메르세데스> <파인더스 키퍼스> <엔드 오브 왓치>에서 빌 호지스의 조력자이자 파트너로 활약했던 인물. 빌이 죽은 뒤 그의 탐정 사무소 ‘파인더스 키퍼스’를 맡아 꾸려 가던 그는 하위와 알렉의 의뢰로 사건 수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테리 메이틀랜드는 피터슨이라는 아이를 죽이지 않았어요”라는 단언으로 일거에 수사 방향을 바꾼다.

‘이방인’의 정체를 확인하고 그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랠프와 홀리는 줄곧 의견 충돌을 보인다. 홀리가 초자연을 향해 열린 태도를 주장하는 데 반해, 랠프는 어디까지나 이성과 과학의 관점을 고집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적 능력, 번뜩이는 유머 그리고 무엇보다 근성”이라는 측면에서 랠프가 죽은 빌 호지스와 매우 닮았다고 홀리는 생각한다. 이런 호감은 두 사람이 협력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동력이 됨과 동시에, <아웃사이더>가 또 다른 시리즈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 놓는 듯해서 주목된다.

“이 세상에는 뭐든 있을 수 있어요. 이제는 그렇다는 걸 알겠어요.”

모든 일이 끝난 뒤, 랠프는 이런 말로 자신의 세계관이 바뀌었음을 고백한다. 이에 앞서 이방인은 “인간들이 워낙 자기들의 현실 인식에서 벗어나는 설명은 받아들이지 못하거든”이라는 말로 합리성에 대한 맹신을 꼬집는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는 게 불가능하다는, 상식적이며 굳건한 믿음에 대한 회의는 소설 전편에서 거듭 피력된다. 그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성 중심주의라는 무장을 해제하고 소설 속 이야기에 빠져들라는 작가의 권유이자 초대라 하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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