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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직지’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에 영향 주었다?

등록 2019-08-02 06:01수정 2019-08-02 21:05

직지-아모르 마네트 1, 2
김진명 지음/쌤앤파커스·각 권 1만4000원

김진명(사진)의 신작 <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관계를 파고든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직지심체요절>(‘직지’)과 늦어도 1455년 이전에 찍어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사이에 영향 관계가 있다는 설정을 시공간을 오가는 미스터리 기법으로 풀었다.

소설은 라틴어를 전공한 전형우 교수가 끔찍한 주검으로 발견된 현장으로 문을 연다. 일간지 사회부 기자인 김기연은 전 교수 주검의 배후를 캐는 과정에서 청주 서원대학교의 컴퓨터 전공 김정진 교수를 만난다. 김 교수는 ‘직지’의 고장 청주에서 직지 알리기 운동을 벌이는 인물. 귀가 잘리고 창이 심장을 꿰뚫었으며 목을 통해 피를 빨린 전 교수의 살해 수법이 서양의 종교 관련 비밀조직과 관련 있을 것으로 짐작한 기연은 교황청과 구텐베르크, 직지 사이의 삼각 관계에 혐의를 두고 구텐베르크의 고향 마인츠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및 아비뇽 등을 종횡하며 사건의 핵심을 향해 나아간다.

두 권짜리 소설의 제2권은 기연이 “1400년대로 돌아가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던 무렵인데, 최근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킨 승려 신미가 한글 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그렸다. 세종이 신미의 안내로 금속활자를 만드는 주자사 양승락과 그의 외동딸 은수를 비밀리에 만나는 장면도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명나라를 거쳐 바티칸과 마인츠로 건너간 은수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 소설 <직지>의 핵심 가설이다. ‘코리(조선)’에서 온 여자라는 뜻으로 ‘카레나’로 불린 은수가 구텐베르크와 친분이 있던 성직자 겸 신학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도움을 받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과 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작가는 직지의 의미와 가치를 강조하느라 구텐베르크의 업적을 깎아내리려 하지는 않는다. “직지가 씨앗이라면 구텐베르크는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게 한 정원사”라는 기연의 편지에 작가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포도주 제조에 쓰던 프레스를 응용한 인쇄기로 대량 인쇄의 길을 연 구텐베르크의 발상은 직지 및 한글 창제의 기본 정신과 통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금속활자나 한글이나 지식을 지배층의 독점에서 해방시켜 전 인류가 함께 나아가자는 지식혁명의 도구이자 정신”이라는 점에서 직지와 구텐베르크와 한글이 통한다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당대 최첨단 기술이라는 점에서 직지와 한글은 또 지금의 반도체로도 이어진다고 작가는 평가한다.

소설 부제로 쓰인 ‘아모르 마네트’(Amor Manet)는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글귀의 후반부로, 이 글귀는 은수의 할아버지가 원나라 수도에서 만난 서역 승려들한테서 받은 십자가 목걸이에 새겨진 것이었다. 은수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 목걸이를 지닌 채 명나라를 거쳐 바티칸과 마인츠까지 흘러가는데, 이 글귀는 은수의 삶을 관통한 한마디이자 소설 <직지>의 주제를 응축한 구절인 셈이다. 소설 속 구텐베르크가 말한바 “인류의 위대한 동행이라는 인쇄의 정신”,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의 바탕에 깔린 애민 정신이 곧 직지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쌤앤파커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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