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의 신작시집 ‘눈 속의 구조대’
거친 언어와 자극적 표현 난무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 흔적도
거친 언어와 자극적 표현 난무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 흔적도
장정일 지음/민음사·1만원 ‘시인 장정일’이 돌아왔다. 마지막 시집 <천국에 못 가는 이유>(1991) 이후 무려 28년 만에 신작 시집 <눈 속의 구조대>를 내놓으며 시업 복귀를 신고했다. 장정일은 1984년 무크 <언어의 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 <길안에서의 택시잡기>(1988) 등을 내며 새로운 감수성의 출현을 알렸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그에게 제7회 김수영문학상을 안겨 주었다. 그 뒤 장정일은 소설로 방향을 틀었다. <아담이 눈뜰 때>(1990)를 필두로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같은 문제적 소설들을 연이어 발표하며 시에 이어 소설 장르에도 자신만의 인장을 뚜렷이 새겼다. 그러는 동안 시는 팽개쳐 두었다. 언젠가 만났을 때 시에 관해 물었더니,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답을 돌려주기도 했다. 오랜 시적 침묵을 깨고 펴낸 시집 <눈 속의 구조대>는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 없이 장정일이 여전히 젊고 도발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새 시집에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연상시키는 아이러니와 반어, 허를 찌르는 유머도 있지만, 가학·피학 성애와 신성모독, 자기 모멸과 파괴를 향한 열망을 담은 거친 언어가 난무한다. 사는 동네의 맥도날드 매장이 폐점했다는 소식에 시인은 개탄한다. “온통 맥도날드가 널려 있는 세상에/ 맥도날드가 없는 동네라니”(‘시일야방성대곡’). “한 컵에 두 개의 빨대를 꽂고/ 이마를 맞댄 채 얼음 채운 콜라를 마시던 곳/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찾아온/ 우리의 보리수”가 없어진 사태를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햄버거에 대한 명상’) 레시피를 친절하게 설명하던 30년 전 장정일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시집에 실린 더 많은 시들은 그의 소설들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위악과 자기 혐오의 몸부림을 담았다. 특히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금서가 되었으며 작가 자신은 음란물 제작 혐의로 형을 살게 했던 문제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의 흔적이 곳곳에서 내비친다. “당신은 내 엉덩이에 매질을 했지/ 메트로놈 박자처럼 메말랐던 매질/ 주위가 하얗게 변해 가고 있어”(‘내 말이 그 말이야’)에서 서로의 엉덩이를 때려 가며 가학·피학 성교에 매달리던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남녀 주인공을 떠올리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육군 대위가 지어 준 이름으로 시인이 되기는 싫었다 (…)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벗어날 수 없다면 아버지의 문법을 파괴하자고 결심했다”(‘K2’)에서, 역시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 신과 아버지를 합한 억압적 존재 ‘신버지’의 그림자를 확인하는 것도 마찬가지.
28년 만에 신작 시집 <눈 속의 구조대>를 내놓은 장정일. “나는 K2/ 적지에 던져진 병사/ 총탄을 맞고 울부짖는/ 게릴라”(‘K2’)라는 구절에서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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