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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북녘말, 모른다 하문 안되갓구나

등록 2019-08-09 06:02수정 2019-08-09 20:35

문화어 수업-다음 세대를 위한 요즘 북한 말, 북한 삶 안내서
한성우·설송아 지음/어크로스·1만5000원

“인차 거의 다 와시오. 땅집이 완전히 많디요? 평양두 이케 시내를 좀 벗어나문 쭈욱 이시오, 땅집이.”(리청지 교수)

“땅집이요? 그럼 아까 본 높은 건물은 하늘집인가요?”(한슬기)

“하하하, 우습다야. 기게 하늘집이 아니구 기낭 아파트라 한다. 야~ 슬기가 아저씨한테 처음으로 말 걸엇다야. 슬기야, 이 아저씨가 그리 무서원? 이젠 말 좀 트이갓구나.”(리 교수)

평양 새살림거리를 내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오간 대화다. 교외의 아담한 가정집에 도착하자 리 교수의 부인이 억센 듯 구수한 함경도 말로 서울에서 온 슬기네 가족을 반긴다. “어이 왔음둥, 그 먼 길을 어이 왔음둥?”

남한의 국어학자 한겸재 교수는 아내, 중학생 딸 슬기와 함께 평양에서 1년간 지내러 왔다. 북한 방언을 조사·연구하기 위해서다. 이 가족의 평양살이를 도와줄 북한의 리청지 교수(미술)는 평안도 출신, 그 아내는 함경도 출신, 중학생 딸 예리는 평양에서 나고 자란 신세대다. 한 교수 가족이 앞으로 1년간 보고 듣고 체험할 북녘 생활은, 실은 모두 가공의 시나리오다.

말소리 연구자인 한성우 인하대 교수, 그리고 북한 출신으로 2011년 한국에 들어온 설송아 기자가 함께 <문화어 수업>을 내놨다. 북쪽의 문화어는 남쪽의 표준어에 해당하지만, 책은 문화어보다 토속적인 입말에 주목한다. 한반도 분단이 75년째에 접어들고 남·북의 언어 이질성이 심화한 오늘날, 북녘의 언어와 일상 생활을 이해하는 데 맞춤하다. 딱딱한 학술서의 틀을 깨고 “가상의 평양살이” 이야기로 생생한 북쪽 방언을 들려주며 언어학적 해설을 곁들였다.

‘수업’은 모두 20강으로 짜였다. 식사 시간, 부엌 풍경, 교통수단 이용, 의식주, 학습 용어, 세탁과 미용, 호칭, 욕설과 구호, 은어, 스포츠 용어 등 일상에서 날마다 쓰는 말들이 탐구 대상이다. 지짐판(프라이팬), 살양말(스타킹), 고기겹빵(햄버거), 살결물(스킨 로션) 같은 말들은 곱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난다. ‘물세탁’에 대비되는 ‘화학세탁’(드라이 클리닝), 남쪽말의 ‘뚜벅이’에 해당하는 ‘11호차’(두 다리로 걸어다님), 롱구방(승합차, 영어 롱밴 Long Van의 일본식 발음) 등 얼핏 종잡기 힘든 말들도 많다. ‘사귀다’는 낱말은 북쪽에선 ‘교차하다’, ‘서로 엇갈리다’라는 뜻이다. 평행하지 않은 두 직선은 언젠가 사귄다. 한 교수가 북녘에서 “아내와 사귀었으면 슬기는 없을 뻔했다.”

두 가족과 북한 민초들이 때론 정겹고 익살스럽게, 때론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며 주고받는 ‘남북 대화’를 듣다 보면, 언어와 풍습, 정서를 공유하는 핏줄 공동체의 동질감을 절감하게 된다. 그 따뜻함의 이면에는 이질감이 너무 커져 버린 일부 언어 변화와 고정관념에 대한 안타까움과 언어학자로서의 관조적 태도도 묻어난다. 외래어 표기, 두음법칙, 구개음화, 사이시옷과 쌍시옷의 용례 등이 그렇다. 어문 규정의 차이, 오랜 분단과 이념 대결 때문이다.

지은이는 그러나 “사람이 만나고 말이 충돌하는 말의 전쟁이 이뤄지기 전에 전파를 통해(서라도) 서로의 말을 듣게 된다면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그저 말의 주인들이 스스로 말을 결정해나가는 과정”이다. 지은이가 “(섣부른) ‘통일’이 아니라 ‘소통’이 먼저”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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