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자전적 에세이’ 펴낸 윤수경 작가
40대 비혼 여성인 윤수경씨는 부끄러움이 많다. 학창시절엔 툭하면 볼이 빨개져 별명이 ‘불난볼’이었단다. 짓궂은 친구들은 겨울이 되면 손이 시리다며 윤씨 볼에 손을 쬐기도 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도 순간 부끄러워 멈칫한단다. 이 수줍음 많은 내향인이 최근 자기 얘기가 담긴 책을 냈다. 제목이 <문지방을 넘어서>(폭스코너 펴냄)이다. ‘생각 많고 고독한 내향인이 문지방을 넘어 만난 평안과 즐거움’이란 부제처럼, 그가 문지방 밖으로 여행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는 글들이다. 12일 서울 광화문역 근처 카페에서 저자를 만났다.
부끄러움이 많은데 어떻게 책을? “책을 내고 싶어 몇 가지 기획안을 출판사에 보냈더니 이번에 나온 책을 제가 잘 쓸 것 같다고 집필을 권유하더군요. 용기를 내어 썼죠.”
그는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홀로 사색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즐거움이 침해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크다. 하지만 세상은 내향인에게 쉽지 않은 곳이다. 그는 대학을 나와 4년가량 영화사 기획실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아름다운재단 등 시민단체 몇 곳에서 3~4년 활동가로도 일했다. 현재 생업인 초·중학생 독서지도는 8~9년째 해오고 있다. “경력이 쌓이고 아는 내용이 많아질수록 앞에 나서야 할 때가 생기기더군요. 그때마다 (내향인인) 제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편하지 않았어요. 또 동료 후배의 마음을 잘 헤아려 맞춰줘야 하는 데 쉽지 않았죠. 부대끼다 그만둘 기회가 오면 스스로 나왔어요.”
그도 대학을 다닐 때는 학생회 활동도 하고 당위적으로 ‘함께하는 삶’도 꿈꿨단다. 하지만 이 마음은 사회로 이어지지 않았다. “영화란 매체를 좋아해 그 분야에서 제 꿈을 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저는 수줍음이 많은 데 영화 쪽은 대개 적극적으로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뒤에서 ‘너무 멋지다’고 감탄하며 바라보다 시민단체로 일터를 옮겼죠.”
이처럼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그는 늘 문지방을 넘는다. 왜? “세상이 재밌어서죠. 재밌게 사는 게 잘사는 거라고도 생각해요. 영화나 책 드라마 음악 그림 등 세상에 감상하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아요.” 그는 “감상만 아니었다면, 단연코 인간으로 환생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재밌는 영화가 일주일에 몇편 씩 쏟아지고 책도 좋은 작가가 계속 나오잖아요. 드라마나 전시도 그렇고요. 같은 음악도 밤중이나 뙤약볕 아래에서 들을 때 느낌이 달라요. 사람으로 태어난 행복이죠. 초등생 때부터 순정만화를 워낙 좋아했거든요. 야구장에서 해가 지고 전광판이 켜질 무렵 잔디 색깔이 변해가는 모습도 너무 아름답죠.” 소녀 때 홀로 버스를 타고 종점을 찍고 돌아오는 여행을 즐겼다는 이 내향인이 지금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공항이다. “집에서 가까운 김포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가요. 거기서 인천공항까진 꼭 리무진 버스를 탑니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다가가면 안내직원이 ‘짐 있으세요’라고 물어요. 이 말을 들을 때 너무 짜릿해요. 공항에서 이별하는 이들이나 하늘 위로 오르는 비행기를 볼 때는 내 여러 고민이 너무 사소해 보이죠.”
문지방을 넘는 여행은 그가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힘을 비축시켜 준다. 여행 중 길을 잃거나 버스가 끊기는 등 위기를 만날 때마다 늘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단다. 서점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을 보면 인간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영화제에 가면 사람에 대한 마음의 문턱이 조금은 낮아진다고도 했다.
마흔 넘어 첫 저술 ‘문지방을 넘어서’
영화사 기획실·시민단체 활동가 거쳐
초·중생 독서지도하며 글쓰기 ‘용기’ 어색하지만 ‘문지방 넘는 이유’ 담아
“세상에 감상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자기답게 즐겁게 사는 즐거움 소개 미국인 중 3분의 1에서 2분의 1은 내향인이라고 베스트셀러 <콰이어트> 저자 수전 케인은 썼다. “내향인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사람들은 언제가 됐든 시간이 흘러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사회생활이나 커리어나 인맥 관리에 집중하느라 자기한테 잘 집중을 못 해요. 정작 그렇게 해야 할 시간이 올 때 연습이 안 돼 잘 못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관계가 좁아지고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늘어나잖아요.” 그는 “사람은 내향인과 외향인의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며 자신은 내향인 특성이 70%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책 쓰면서 어릴 때 재밌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대부분 혼자 사부작사부작 놀았던 것이더라고요. 만화책을 보러 다니고 여기저기 동네 구경을 한 거예요.” 그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서 내향인이 느끼는 불편함은 조금씩 줄고 있다. “내향인이라는 말을 쓴 지도 몇 년 안 됐어요. 내향인의 라이프스타일이 관심 대상이 된 거죠. 제가 20~30대 때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면 친구들이 ‘왜 그래’, ‘너 참 신기하다’고 했어요. 지금은 뭐라고 안 해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원하는 삶을 못 산다는 그런 생각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한국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했어요. 요즘은 좀 달라요. 덕질처럼 자기만의 것을 깊이 파는 것을 인정하고 응원하잖아요. 자기가 누구인 줄 알고 자기답게 재밌게 사는 게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문지방을 넘어야죠.” ‘외향인에게 바라는 것’ 하나만 말해보라고 하니 이렇게 받았다. “스스로 밝히지 않는 개인신상을 함부로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더 줄어들어야 해요. 어디 사냐, 몇살이냐, 결혼했냐, 아이가 몇이냐,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 이런 질문요. 사람마다 자기 상황이 다 있어요. 현재 개인의 어떤 모습이 있는데, 질문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한 틀을 만드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아이가 몇이냐는 질문에 ‘없어’라는 답을 꺼낼 때 0.5초라도 마음이 아플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내향인’ 윤수경씨에게 요즘 행복하냐고 묻자 고개를 저었다. “하루에도 순간순간 감정이 달라요. 오늘 아침 동네 숲을 산책하면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오후에 예정된 인터뷰를 생각하니 걱정과 불안이 몰려오더군요.” 계획을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이번 책을 낸 뒤 내가 이렇게 책을 쓸만한 사람인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이야기가 많아지면 흘러나올 테니까 그때 천천히 저에게 기회를 줘볼까 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문지방을 넘어서> 표지.
영화사 기획실·시민단체 활동가 거쳐
초·중생 독서지도하며 글쓰기 ‘용기’ 어색하지만 ‘문지방 넘는 이유’ 담아
“세상에 감상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자기답게 즐겁게 사는 즐거움 소개 미국인 중 3분의 1에서 2분의 1은 내향인이라고 베스트셀러 <콰이어트> 저자 수전 케인은 썼다. “내향인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사람들은 언제가 됐든 시간이 흘러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사회생활이나 커리어나 인맥 관리에 집중하느라 자기한테 잘 집중을 못 해요. 정작 그렇게 해야 할 시간이 올 때 연습이 안 돼 잘 못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관계가 좁아지고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늘어나잖아요.” 그는 “사람은 내향인과 외향인의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며 자신은 내향인 특성이 70%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책 쓰면서 어릴 때 재밌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대부분 혼자 사부작사부작 놀았던 것이더라고요. 만화책을 보러 다니고 여기저기 동네 구경을 한 거예요.” 그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서 내향인이 느끼는 불편함은 조금씩 줄고 있다. “내향인이라는 말을 쓴 지도 몇 년 안 됐어요. 내향인의 라이프스타일이 관심 대상이 된 거죠. 제가 20~30대 때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면 친구들이 ‘왜 그래’, ‘너 참 신기하다’고 했어요. 지금은 뭐라고 안 해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원하는 삶을 못 산다는 그런 생각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한국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했어요. 요즘은 좀 달라요. 덕질처럼 자기만의 것을 깊이 파는 것을 인정하고 응원하잖아요. 자기가 누구인 줄 알고 자기답게 재밌게 사는 게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문지방을 넘어야죠.” ‘외향인에게 바라는 것’ 하나만 말해보라고 하니 이렇게 받았다. “스스로 밝히지 않는 개인신상을 함부로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더 줄어들어야 해요. 어디 사냐, 몇살이냐, 결혼했냐, 아이가 몇이냐,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 이런 질문요. 사람마다 자기 상황이 다 있어요. 현재 개인의 어떤 모습이 있는데, 질문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한 틀을 만드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아이가 몇이냐는 질문에 ‘없어’라는 답을 꺼낼 때 0.5초라도 마음이 아플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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