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지음/문학동네·1만4500원
윤이형(사진)의 새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는 페미니즘과 퀴어, 소수자 및 약자에 대한 관심이라는 뚜렷한 방향성을 지닌다. 형식상으로는 정통 사실주의와 판타지, 에스에프(SF), 알레고리 등이 섞여 있음에도 책 전체에 걸쳐 일관된 주제의식이 유지된다.
그러나 같은 주제라 하더라도 표현 방식과 결말 처리에 따라 ‘착한’ 소설과 ‘강한’ 소설로 나누는 분류법도 가능하겠다 싶다. 그리고 양쪽 모두에 속하지 않는, 망설임과 고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소설이 그 사이에 있는데, 독자에게 더 큰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은 이 계열의 작품이다.
표제작과 ‘승혜와 미오’, ‘마흔셋’ 등 책 앞부분에 실린 작품들이 ‘착한’ 부류에 속한다. 표제작은 가사와 양육 때문에 촛불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던 여성들이 모임을 만들고 자신들의 생각을 담은 책자를 제작해 가족들에게 전함으로써 마침내 집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이런 결과도 해피엔딩이라 하겠는데, 이 소설에는 화자 경희와 옛 친구인 서빈 사이의 갈등과 그 해소라는 또 다른 드라마가 있다. “남자 없이는 살지 못하는” 운운하며 결혼을 택한 친구들을 비판하던 서빈과, 그런 서빈이 기혼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거리를 두게 된 경희가 오해를 풀고 광장에서 재회하는 결말이다.
‘승혜와 미오’에서는 동거하는 레즈비언 커플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생긴다. 커밍아웃을 한 채식주의자이며 자식을 낳거나 키우는 데 반대하는 미오, 커밍아웃 하지 않은 ‘클로짓’이며 고기를 즐기는데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자식을 키우고 싶어하는 승혜. 사소한 일이 계기가 되어 오해와 불신이 쌓여 가던 둘의 관계 역시 소설 말미에 가면 ‘착한’ 쪽으로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낳는다. 동생의 성 전환 수술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중년 여성을 등장시킨 ‘마흔셋’에서도 자매 또는 남매 사이의 우애와 믿음은 희망적 결론을 향해 소설을 열어 놓는다.
에스에프적 설정을 통해 남녀의 처지를 바꿈으로써 여성 차별과 혐오를 비판한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역시 에스에프 기법으로 가사용 로봇들의 반란을 그린 ‘수아’ 등은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강한’ 소설들이라 할 수 있다. 머리는 아래로 향하고 양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힘껏 땅을 밀며 엉덩이를 들어올린 자세를 강요 받는 중년 남성이 느끼는 고통과 모멸감은 남성 지배 사회에서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차별과 혐오를 뒤집어 놓은 셈이다. 로봇들의 집단 반란에 직면해서야 평소 그들에 대한 처우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수아’의 결말도 마찬가지.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다룬 ‘피클’은 ‘착한’ 소설과 ‘강한’ 소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작품이다. 연예주간지의 계약직 편집기자인 선우는 여자 후배 유정이 남자 편집장한테 성폭력을 당했다는 이메일을 받고 고민에 빠진다. “‘문제’가 될 이야기는 솔직히 듣고 싶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아니었다.” 유정이 편집장과 사귀는 관계였던데다 평소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는 다른 여자 후배들의 말에 선우의 고민은 더 커진다. 망설임과 고민이 이어지면서 선우 자신이 인턴 시절 문제의 편집장한테 성추행을 당했던, 애써 눌러 놓았던 기억이 불거져 나오고, 오랜 지체 끝에 마침내 선우가 유정의 편에 서기로 하는 결말은 단순하지 않은 만큼 여운도 크게 남긴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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