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애, 김은주, 유민석, 이승준, 이지영, 정유진 지음/에디투스·1만5000원 ‘고전’이라는 말에서는 어렴풋한 먼지 냄새가 난다. 고전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소진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고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서다.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를 쓴 김상애·김은주·유민석·이승준·이지영·정유진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함께 공부하는 연구자들이다. 지은이들은 2016년 강남역 사건 이후 한국 페미니즘 현장의 폭발적 ‘수요’를 좇는 페미니즘 관련 ‘신상’ 책이 쏟아져나왔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고전까지 찾아 나서 독자에게 권하는 이유는 “바삐 달려온 운동의 시간만큼이나 페미니즘 이론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 “‘지금 여기’를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목적”에서다. “페미니즘 고전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그에 대한 정의는 페미니즘 저작을 요청하고 재탄생하게 하는 지금 여기의 현장(location)에서 증명된다.” 책은 서구 페미니즘 사상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12권의 고전을 여섯 개의 주제 안에 배치해 집중 소개한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권의 옹호>,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 낸시 초도로우의 <모성의 재생산>, 게일 루빈의 <일탈>,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 등이다. 저작들 사상의 계보와 함께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 정신분석 페미니즘, 퀴어 페미니즘 등 페미니즘 이론의 스펙트럼도 엿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인간임을 주장하는 데서 출발한 페미니즘의 사유는, ‘성’을 섹스/젠더/섹슈얼리티로 나눔으로써 인간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데 기여했다. 이성애와 가사·육아 노동이 여성의 본능이므로, 이를 따르는 일이 여성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신화를 부수는 사유도 여성, 남성, 아동 모두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페미니즘의 지적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여기’에서 생긴 질문들이 포털 사이트의 연관 검색어마냥 자동 연상된다. ‘생물학적 여성’은 어떤 집단을 의미하는가? ‘생물학적 여성’만 인정하자는 주장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비혼, 비연애, 비섹스, 비출산 운동은 어떤 삶과 사회를 지향하는가? ‘코르셋’을 벗은 ‘디폴트 인간’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일각에서 주장하는 ‘남성 역차별’은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한 장치인가, 허상인가? 지은이들은 ‘지금 여기’의 질문과 고전을 직접 연결하는 대신, 고전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이론가들에 대해 쉽게 설명하며 ‘독자와 고전의 대화’를 유도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을 두고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작, 여성학의 고전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부정의하다. 이 책은 그냥 인류의 고전”이라고 말한 바 있다.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가 다룬 책 모두에 해당하는 얘기다. 페미니즘 사유의 공통된 특징은 누군가 ‘인간’을 이야기할 때, 그 ‘인간’ 속에 누가 포함되고 배제되는지를 꿰뚫어 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다루는 고전 중 하나인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 한국어판 부제는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이다. 언어가 필요한 당신에게 고전을!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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