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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못생겨도 맛 좋은 감자똥이 제일 좋아!

등록 2019-08-30 06:00수정 2019-08-30 20:19

잔칫집에 가면서도 “똥돼지 녀석 살찌웁시다”라며 길을 재촉할 정도로 똥돼지는 각별한 존재다
어느 날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가 뒷간에 오른 뒤로 붉은 늑대가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용감한 똥돼지
박영옥 지음·전명진 그림/자주보라·1만2000원

현대에 똥은 ‘더럽다’는 생각이 강하다. 우리 대부분은 이 녀석을 몸 밖으로 밀어내며 잘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먼 곳으로 보내기 바쁘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똥을 이렇게 여긴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예전에 똥은 친근한 것이었다. 먹고사는 문제인 농사에 귀한 자원이었다. 이는 다른 말로 인간과 자연의 순환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였단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곳에선 이 고리 옆의 다른 중요 고리 노릇을 하던 동물이 있었으니, 바로 ‘똥돼지’다.

<용감한 똥돼지>는 똥돼지를 주인공으로 한 재미난 작품이다. 똥돼지는 사람의 똥으로 키우던 돼지를 말한다. 뒷간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법한 높은 곳에 짓고, 사람의 똥이 떨어지는 곳과 축사를 연결해 키우던 가축이다. 똥돼지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릴 곳이 제주도다. 제주와 지리산 자락에 이런 식으로 돼지를 키우던 집이 많았다 한다. <용감한 똥돼지>의 무대도 아름답게 그려진 노란 꽃과 돌담, 똥돼지 친구 ‘탐라견’의 등장 등으로 미뤄 제주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주인공 똥돼지의 하루는 급하게 엉덩이를 쥐고 뒷간 사다리를 오르는 할머니의 “아이고” 소리로 시작한다. 네모난 구멍을 비집고 들어온 할머니의 하얀 엉덩이에서 “뽀오옹” 소리와 함께 옥수수, 감자, 고추 등 여러 곡물과 찬의 냄새가 섞여 나오면 똥돼지 얼굴에선 행복한 미소가 피어난다. 똥돼지는 이 중에 “감자 똥”이 제일 좋단다. 뒤이어 뒷간에 오르는 할아버지도 기분 좋게 똥을 눈 뒤 “맛있는 똥 많이 먹고 좋은 똥 많이 싸야 한다” 하신다. 추운 겨울날 ‘콩 똥’밖에 나오지 않자 안타까워하고, 잔칫집에 가면서도 “똥돼지 녀석 살찌웁시다”라며 길을 재촉할 정도로 노부부에게 똥돼지는 각별한 존재다. 그러던 어느 날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가 뒷간에 오른 뒤로 붉은 늑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위기를 맞는다. 부산대 최덕경 교수(사학과)의 <동아시아 농업사상의 똥 생태학>을 보면 우리의 이런 똥 활용은 동양을 찾은 서양인이 감복했던 지혜였다고 한다. 서양은 산업화 시대 도시로 몰린 사람들의 똥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불결의 극치를 빚었고, 이것이 지금의 위생시스템 개발로 이어진다. 우리도 이를 따랐다. 그러면서 똥을 매개로 연결된 자연의 한 순환으로부터 끊어져 나왔다. 사람의 똥을 먹은 똥돼지의 똥은 작물의 거름으로 쓰인다. 그 거름을 먹고 자란 작물은 사람의 먹거리가 되고 그 똥은 다시 돼지의 먹거리가 된다. <용감한 똥돼지>는 인간이 빚고 있는 자연 파괴의 시대에 특히 빛나는 작품이라 하겠다. 초등 1~2년.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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