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다산책방·1만8000원 명화(名畵)가 즐비한 미술관에 간다고 치자. 한 작품을 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중요한 전시엔 300점을 거는 것이 보통이라는데 그림 한점에 2분씩만 할애하더라도 꼬박 열시간이 걸린다. 어떤 그림을 어떻게 봐야 전시회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는 ‘지극히 사적으로’ 그림을 본다. 그는 소설가다운 상상력의 바늘로 사실과 사실 사이를 꿰매 제리코·들라크루아·드가·세잔·마그리트 등 17명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풍부한 해석으로 직조해낸다. 가령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1819)을 보자. 이는 폭풍으로 배를 잃고 뗏목에 오른 선원들이 서로의 인육을 먹으며 버틴 사건을 담은 작품이다. 반스는 끔찍한 사건을 묘사한 이 작품에 식인행위에 대한 분노, 생존욕망에 눈먼 인간에서 느껴지는 비애가 담겨져 있지 않음을 간파한다. 초췌해야 할 선원들이 “마치 헬스클럽에서 나온 것”처럼 멋진 근육을 갖고 있는데다 수평선 너머의 선박을 보며 구조 희망을 품는 모습이 파도의 활기와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반스는 고난을 비애감으로 손쉽게 치환하지 않은 제리코의 의도를 읽으며 재난을 예술로 형상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는다. 세잔은 어떤가. 반스는 왜 세잔이 현대미술의 시조인지 미학적 설명을 내놓으면서 그의 삶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세잔은 소박하고 금욕적인 삶, 성실한 자세를 평생 유지했으나 한편으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정신장애인’ ‘독학한 고상한 야만인’ 등의 오해도 받았다. 반스는 세잔이 실제론 잘사는 집 아들에다 풍부한 부르주아적 교양을 갖췄는데도 일부러 아는 게 없는 척했다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4~189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에드가 드가, <머리 손질>, 1896년.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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