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페미니즘을 향해: 무한히 변화하는 몸-ff시리즈3
엘리자베스 그로스 지음, 임옥희·채세진 옮김/꿈꾼문고·1만8500원
사춘기가 찾아온다. 소녀는 월경을, 소년은 몽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각각 받아들여지는 맥락은 다르다. 많은 소녀는 ‘피 흘리는 몸’이 된 월경의 시작을 끔찍하고 수치스럽게 받아들인다. 상처나 부상을 연상시키는 데다 남몰래 피를 말릴 수도 없는 골칫거리다. 스스로 통제도 불가능하다. 월경혈은 배설물의 특징과도 연결된다. 반면 소년에게 몽정은 ‘성숙한 남성’의 신호로 여겨진다. 다가올 성적인 쾌락과 만남을 암시하기도 한다.
<몸 페미니즘을 향해>의 저자 엘리자베스 그로스는 소녀가 느끼는 수치심의 기반으로 프로이트를 인용한다. 프로이트는 “수치심, 혐오감, 그 밖의 다른 도덕적인 기능의 발달은 유아가 배변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 결과”라고 주장했다. ‘깨끗하고 적절한 몸의 발달’은 유아기 때부터 익혀온 배변 훈련, 체액의 제어와 직결돼 있다. 하지만 월경은 교육이나 자기 절제만으로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다. 프로이트의 주장에 비춰보면, 월경은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운 배변 행위에 가깝다. 월경이 당혹감과 혐오감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서양철학사에서 여성은 늘 부재하거나 결핍된 존재였다. 플라톤, 데카르트 등 몸(육체)과 마음(정신)을 나눈 이분법적 패러다임에서나 스피노자 등이 이끈 일원론 패러다임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몸을 마음에 견줘 불확실하고 열등한 것으로 봤던 이원론자들은 여성에게 마음이 아예 없거나 결여돼 있다고 봤다. 일원론자들은 몸을, 정신을 담는 그릇을 넘어 인식과 존재를 이끄는 적극적인 주체로 여겼다. 하지만 이때도 여성은 철학이 다루는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여성의 몸은 남성에 견줘 불확실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로스는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부차적인 존재’로만 봤던 서양철학사의 오만함을 지적한다. 남성, 그것도 주로 백인이고, 젊고, 이성애자이며 중산층인 사람의 몸만을 기준으로 삼아 “여성, 장애인, 문화적이고 인종적인 소수자, 다른 계급, 동성애자에게 가하는 폭력에 관해서는 아무런 인식도 없이 자신을 이상적인 대표로 간주”해왔다는 것이다. ‘남성’이란 특수성은 ‘인간’이란 보편성으로 대체되거나 그 안에서 은폐됐다. 여성 몸의 특수성을 문화적으로 분석한 문헌은 방대하게 남아 있지만, 남성의 몸에 대해선 거의 없는 것이 그 예다.
그는 기존의 남근 중심적인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 개념으로 ‘성차화된 몸’을 제시한다. 여성 또는 남성 몸의 근본적인 특수성을 고려한 이론이다. 성차를 초월해 남성으로 대표돼왔던 이론을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 탐구하기 위한 개념이기도 하다. ‘성차화된 몸’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프레임은 ‘뫼비우스의 띠’다. 꼬임을 통해 안과 밖이 연결된 것처럼, 이 프레임은 마음과 몸 또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를 해체한다. 동시에 일원론도 거부한다. 그로스는 이를 “서로 연관된 이질적인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하나를 꼬아 다른 하나로 합치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델”이라며 “마음-몸의 관계가 환원주의, 편협한 인과관계의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이분법적인 분리에 정체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가부장제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결핍’으로 구성해왔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여성을 삭제해온 역사를 재점검하는 실마리가 되는 책이다. 그로스는 플라톤, 데카르트, 스피노자, 니체, 프로이트, 라캉, 푸코, 들뢰즈 등 철학 및 정신분석학 텍스트는 물론이고 생물학, 의학, 생리학까지 방대한 자료를 분석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