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지우 지음/달그림·1만6000원
‘이태리타월’은 우리나라 고유의 발명품이다. 1967년께 부산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일직물 김원조 대표가 개발자라는 설과, 상표를 등록하고 성공시켜 호텔 사장까지 된 아리랑관광호텔 김필곤 대표가 개발자라는 주장이 서로 부딪치는 듯싶다. 두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떴기 때문에 진실은 가리기 어렵게 되었다. 아무튼 우리나라 발명품인데 ‘이태리’가 붙은 이유는 개발 당시 때밀이 수건의 핵심 소재인 깔깔한 섬유를 이탈리아제 비스코스 레이온으로 삼았기 때문이란다.
이태리타월이 들려주는 교훈의 고갱이는 ‘누구나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 구석구석에는 “보이지 않아도 다 때가 있”단다. 타월이 다가가 살살 밀어주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 달그림 제공
달그림의 새 그림책, <때>는 이태리타월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일단 표지부터 참신하다. 때수건을 대표하는 녹색에 검은 줄무늬를 입힌 책을 만지는 순간 마치 때수건을 잡은 듯 까끌한 감촉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질감을 살리기 위해 표지에 ‘누들로드패턴 코팅’이라는 특수 코팅을 입혔다고 한다.
제목인 ‘때’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시간의 어떤 순간이나 부분’, 그리고 ‘피부의 분비물과 먼지 따위가 섞이어 생긴 것’이다. 때 미는 것이 천직인 이태리타월은 간만에 목욕탕을 찾은 듯한, 푸근한 몸집의 아주머니 몸 구석구석에 쌓인 때를 밀면서 두가지 뜻을 넘나드는 ‘때의 교훈’을 시처럼 들려준다. ‘때가 되었군, 깨끗해질 때./ 또 만났네, 시작할 때. 톡톡 제법 잘 불었네./ 꽈악 비틀어 물기 한 번 쭈욱 빼고./ 살살 흔들 때, 돌돌 말려 나오는 때.’
누구나 자신의 본모습이 드러날 ‘때’가 있다.
이태리타월이 들려주는 교훈의 고갱이는 ‘누구나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 구석구석에는 “보이지 않아도 다 때가 있”단다. 타월이 다가가 살살 밀어주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도 누구나 마찬가지로 다 때가 있다. 그 때가 당장 오지 않았다 해서 안달할 일이 아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조금 느긋하게 불리고 있는 게 밀 시간이 왔을 때를 기다리는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책의 끄트머리 즈음 등장하는 왜소한 사람, 문신한 사람, 하얀 사람, 검은 사람 등 수많은 사람의 벗은 몸을 감싸고 있는 때수건의 그림은 이 원초적인 교훈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면서 또 잊기 쉬운 교훈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한다.
사실 이태리타월은 몸소 그것을 보여준 바 있다. 나무 섬유소를 가공하여 만드는 비스코스 레이온의 제조법이 발명된 것이 1898년인데 이탈리아 사람은 모르는 한국 사람의 뜨거운 애용품으로 거듭 발견된 때가 70년이 지난 1967년이니 말이다. 2017년 특허청 설문조사에 의하면 이태리타월은 훈민정음, 거북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리나라 최고 발명품 10선 가운데 6위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고 하니 이 얼마나 화려한 변신인가. 4~7살.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그림 달그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