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연습장 ⑪
기쁘다 : 즐겁다
양은냄비와 무쇠솥의 차이 [오늘의 연습문제] 다음은 아들과 아버지가 주고받은 편지의 첫머리이다. 괄호 안에서 더 어울리는 것을 고르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기쁩니다|즐겁습니다).” “네가 새 직장에 만족한다니 애비도 (기쁘기|즐겁기) 한량없구나.” [풀이]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는 노래가 심심찮게 들려온 한 주였다. 그런데 “즐겁다 구주 오셨네” 하는 번역 가사가 없는 것을 보면, ‘기쁘다’와 ‘즐겁다’ 사이에 뭔가 차이가 있어 보인다.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자연스럽지만 “하루하루가 기쁘다”는 영 어색하다. “기쁘기 한량없다”는 자연스럽지만 “즐겁기 한량없다”는 왠지 어울리지가 않는다. “즐거운 휴가”의 폭넓은 쓰임에 비해 “기쁜 휴가”는 용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왜일까? 먼저 ‘즐겁다’ 쪽에서 열쇠를 찾아보자. “즐거운 여행” “즐거운 한때” “즐거운 생활”에서 보듯, ‘즐겁다’와 어울리는 ‘여행’ ‘한때’ ‘생활’은 모두 일정 시간 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여름휴가’나 ‘하루 종일’도 마찬가지다. “즐겁게 논다” “즐겁게 지낸다”의 경우에도 ‘노는’ 일이나 ‘지내는’ 일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즐겁다’와 어울리는 것들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대상이다. 뭔가를 즐기는 일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즐거운’ 느낌 또한 해당 사건이 지속되는 기간 내내, 혹은 그 이전부터 이후까지 연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등학생이 소풍날 며칠 전부터 마음이 달뜨고 ‘즐거운’ 것처럼. 이제 “기쁜 마음” “기쁜 표정” “기쁜 소식” “기쁜 일” “기쁘게 받는다” 등을 살펴보자.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덕을 부리고, ‘표정’은 불과 몇 초 만에 모습을 달리한다. 기쁜 ‘일’에 대한 ‘소식’을 듣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없다. 선물을 받는 것도 잠깐 동안의 행위다. 아들의 편지에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은 희소식을 접하고 잠시 일어나는 감정이다. 스승의 칭찬에 기뻐하는 제자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기쁨’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기뻐 날뛴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난다” 하는 표현들은 기뻐하는 행동의 일시성을 말해줌과 동시에, ‘기쁨’이 꽤나 격한 감정임을 잘 보여준다. 결국 ‘기쁨’의 생명이 짧은 것은 그 격렬함에 따르는 반대급부일 것이다. 반면에 ‘즐거움’은 목숨이 질기다. 짧게는 한 시간부터 하루, 한 달, 한 해를 넘어 길게는 인생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평균치가 ‘기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명력이 긴 만큼 감정의 농도는 옅을 수밖에 없다. ‘기쁨’이 양은냄비라면 ‘즐거움’은 무쇠솥이다. 쉽게 달아오르는 냄비처럼 ‘기쁜’ 순간들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은근한 온기를 마냥 품고 있는 무쇠솥처럼 ‘즐거운’ 생을 향유하는 일이야말로 참다운 행복이리라. [요약] 기쁘다: 삽시간에 솟구쳤다 이내 스러진다|격렬하다 즐겁다: 서서히 생겨나 오랫동안 이어진다|은근하다 김철호/ 번역가·도서출판 유토피아 대표 [답] 즐겁습니다, 기쁘기
양은냄비와 무쇠솥의 차이 [오늘의 연습문제] 다음은 아들과 아버지가 주고받은 편지의 첫머리이다. 괄호 안에서 더 어울리는 것을 고르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기쁩니다|즐겁습니다).” “네가 새 직장에 만족한다니 애비도 (기쁘기|즐겁기) 한량없구나.” [풀이]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는 노래가 심심찮게 들려온 한 주였다. 그런데 “즐겁다 구주 오셨네” 하는 번역 가사가 없는 것을 보면, ‘기쁘다’와 ‘즐겁다’ 사이에 뭔가 차이가 있어 보인다.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자연스럽지만 “하루하루가 기쁘다”는 영 어색하다. “기쁘기 한량없다”는 자연스럽지만 “즐겁기 한량없다”는 왠지 어울리지가 않는다. “즐거운 휴가”의 폭넓은 쓰임에 비해 “기쁜 휴가”는 용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왜일까? 먼저 ‘즐겁다’ 쪽에서 열쇠를 찾아보자. “즐거운 여행” “즐거운 한때” “즐거운 생활”에서 보듯, ‘즐겁다’와 어울리는 ‘여행’ ‘한때’ ‘생활’은 모두 일정 시간 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여름휴가’나 ‘하루 종일’도 마찬가지다. “즐겁게 논다” “즐겁게 지낸다”의 경우에도 ‘노는’ 일이나 ‘지내는’ 일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즐겁다’와 어울리는 것들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대상이다. 뭔가를 즐기는 일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즐거운’ 느낌 또한 해당 사건이 지속되는 기간 내내, 혹은 그 이전부터 이후까지 연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등학생이 소풍날 며칠 전부터 마음이 달뜨고 ‘즐거운’ 것처럼. 이제 “기쁜 마음” “기쁜 표정” “기쁜 소식” “기쁜 일” “기쁘게 받는다” 등을 살펴보자.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덕을 부리고, ‘표정’은 불과 몇 초 만에 모습을 달리한다. 기쁜 ‘일’에 대한 ‘소식’을 듣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없다. 선물을 받는 것도 잠깐 동안의 행위다. 아들의 편지에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은 희소식을 접하고 잠시 일어나는 감정이다. 스승의 칭찬에 기뻐하는 제자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기쁨’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기뻐 날뛴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난다” 하는 표현들은 기뻐하는 행동의 일시성을 말해줌과 동시에, ‘기쁨’이 꽤나 격한 감정임을 잘 보여준다. 결국 ‘기쁨’의 생명이 짧은 것은 그 격렬함에 따르는 반대급부일 것이다. 반면에 ‘즐거움’은 목숨이 질기다. 짧게는 한 시간부터 하루, 한 달, 한 해를 넘어 길게는 인생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평균치가 ‘기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명력이 긴 만큼 감정의 농도는 옅을 수밖에 없다. ‘기쁨’이 양은냄비라면 ‘즐거움’은 무쇠솥이다. 쉽게 달아오르는 냄비처럼 ‘기쁜’ 순간들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은근한 온기를 마냥 품고 있는 무쇠솥처럼 ‘즐거운’ 생을 향유하는 일이야말로 참다운 행복이리라. [요약] 기쁘다: 삽시간에 솟구쳤다 이내 스러진다|격렬하다 즐겁다: 서서히 생겨나 오랫동안 이어진다|은근하다 김철호/ 번역가·도서출판 유토피아 대표 [답] 즐겁습니다, 기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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