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
허정윤 글, 주리 그림/킨더랜드·2만원
“이영차 동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새벽에 봉황을 타고 요궁에 들어갔더니/ 날이 밝으면서 해가 부상 밑에서 솟아올라/ 일만 가닥 붉은 노을 바다에 비쳐 붉도다.”
허난설헌이 여덟살에 지은 산문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의 한 대목이다. 가부장 중심의 조선 중기에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은 당대 대표적 사대부 가문이면서도 자유로운 가풍을 지녔고, 덕분에 난설헌은 자신의 글재주를 맘껏 펼칠 수 있었다. 그의 동생은 <홍길동전>을 지은 그 유명한 허균이다.
<오누이>는 두 남매의 절절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절절하다 함은 두 사람이 모두 비극 속에 이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열다섯에 시집을 간 난설헌은 밖으로 도는 남편과 글 짓는 며느리가 못마땅한 시어머니에 돌림병으로 아이를 잃는 애끊는 고통까지 겪으며 27살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 빼어난 재능과 자유분방한 정신으로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아는 정치를 꿈꿨던 허균도 역모 혐의로 능지처참 당하고 말았다.
어린 시절 둘은 두 마리 학처럼 같은 스승 아래서 시를 짓고 공부하며 보냈다고 한다. 굴곡진 삶의 여정 속에 두 사람은 그 시절을 얼마나 떠올렸을까. <오누이>는 그런 상상 속에 못다 한 이야기를 담았다. 만듦새부터 그러하다. 책을 펼치면 왼편에는 아우를 아끼는 난설헌의 이야기가, 오른편에는 누이를 기리는 허균의 이야기가 못 부친 편지처럼 담겼다. 예스럽고 아름다운 그림이 이를 완성한다.
난설헌은 숨을 거두기 전 자신의 시를 “모두 태우라”고 당부하였지만 동생 균은 친정에 남겨뒀거나 자신이 기억하는 시를 모두 모아 <난설헌집>을 펴냈다. 동생의 그 마음이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날 우리가 그의 시 세계를 만날 수 있게 하였다. <오누이>는 아이에게 그 세계를 소개하는 좋은 출발이 될 듯하다. 지은이 허정윤은 허씨 가문의 후예라고 한다. 5살 이상.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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