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뽑은 2019 올해의 책-번역서]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민음사·1만7000원 ‘상위 1%’를 비난하면서 ‘99%’ 속에 숨어서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중상류층의 위선을 까발린다. 이들 ‘20%’의 고학력·전문직·고소득자 ‘먹물’들은 고등교육을 통해 부를 대물림하며 80%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의 길을 걷는다. ‘기회 사재기’라는 불공정한 방식으로 이익을 누린다. 다른 이들의 접근을 막고 ‘운동장’을 기울이는 것. 진보적인 사람들도 이런 행태에 별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 올해 이른바 ‘조국 사태’로 인해 더 눈길을 끌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리처드 프럼 지음, 양병찬 옮김/동아시아·2만5000원 ‘실용성 없는 아름다움’이 진화를 추동하는 또 하나의 메커니즘이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자연선택만으로는 진화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 성선택, 특히 암컷의 성적 자율성을 강조한다. ‘미적 극단주의자’인 새들의 성생활을 살피면서 수컷 새의 화려한 외모와 구애행동이 암컷의 성선택을 통해 진화했다고 밝힌다. 아름다움은 퇴폐적이기도 해, 때로는 생존을 위협할 정도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섹슈얼리티의 진화도 “여성의 쾌락 추구”가 추동한다고 본다. 황상철 기자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어크로스·1만6000원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 매리언 울프가 경고하는 디지털 시대의 위기. 디지털 장치가 읽는 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무섭도록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기계를 통한 ‘훑어보기’에 길들여진 뇌는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아가 깊이 읽기의 능력을 배양한 좋은 독자가 사라진 사회는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집단적 양심을 보존하려면 모든 구성원이 깊이 읽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테오도르 W. 아도르노, 발터 벤야민 지음, 이순예 옮김/길·3만8000원 한국인이 사랑하는 불우한 천재 사상가, 베냐민과 그를 지원했던 아도르노가 나눈 편지를 엮었다. 1928년부터 1940년까지 파국으로 치닫던 세계 한복판에서 그들은 121통의 글을 주고받으며 때론 격렬하게 논쟁했다. 독일군의 진격을 피해 피레네 산맥을 넘던 베냐민은 아도르노에게 전하는 원고를 남기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책 말미 실은 ‘옮긴이의 말’ 속에서 한국의 베냐민 수용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만날 수 있다. 이유진 기자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글항아리·3만2000원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이론이 한껏 무르익은 2013년에 출간되어 그의 저서 가운데서도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의 토대가 사랑, 연민, 공감을 통해 유지되며 혐오, 질투, 수치심 등은 이를 저해한다고 본다. 사회복지 등 법과 제도 안에 이미 선한 감정이 구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곤경에 처한 이들과 ‘사회’를 이루는 동료 시민들이 가져야 할 감정의 중요성을 세심하게 살핀 인간 해방과 성찰의 제도적, 정치적, 철학적 기획. 이유진 기자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김영사·1만9800원 ‘사실에 근거해 잘못된 통념을 뒤집는다’를 모토 삼아 올 한해 독서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지은이는 우리가 가짜뉴스 때문에 세계를 오해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항상 오해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비합리적 본능 10가지를 밝히고, 이를 억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의 착각과 달리 세상이 날로 좋아지고 있음을 데이터로 입증하는 게 핵심. 하지만 맥락을 삭제한 팩트로 왜곡된 주장을 펼친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음, 이세영 옮김/세종서적·1만8000원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의 지엠(GM·제너럴모터스) 자동차 공장이 폐쇄된 뒤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을 5년 동안 추적 취재한 르포르타주. 시급 28달러를 받으며 베푸는 삶을 살던 노동자들은 10달러 남짓의 일자리를 구하거나, 다른 지역의 지엠 공장에서 일하는 ‘지엠 집시’가 됐다. 직업 재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노동자보다 더 나쁜 일자리로 밀려났다는 조사 결과가 충격을 주었다. 거제와 군산을 비롯해 우리에게도 이미 도착한 현재이자 미래에 관한 이야기로 많은 토론 거리를 제공한 책이다. 이재성 기자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한승동 옮김/돌베개·1만8000원 ‘도금’(鍍金)과 ‘지금’(地金). ‘지금’은 도금을 벗겨내면 나오는 금속을 뜻한다.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1945년 이후의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일러 일본의 본성을 가린 ‘도금’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일본의 ‘지금’은 메이지부터 패전까지의 기간에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이자, 그것을 내면화한 일본의 국민 의식, 바로 ‘식민주의’다. 일본의 경제 도발 등 어느해보다 일본을 말할 일이 많았던 한 해, 일본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된 책. 이재성 기자
와다 하루키 지음, 이웅현 옮김/한길사·각 권 3만5000원 친러정책으로 청나라와 일본을 견제하려던 고종. 일본은 “만주와 조선을 나눠 갖자’는 ‘만한교환론’으로 러시아와 교섭하지만 실은 전쟁을 위한 준비 절차에 불과했다. 일본의 대표적 양심 세력인 지은이는 일본의 국민작가인 시바 료타로가 러일전쟁을 미화한 <언덕 위의 구름>을 비판하기 위해 집필을 시작했다. 시바를 비롯한 일본 우익은 러일전쟁을 서구와의 싸움에서 아시아가 거둔 최초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 700명이 넘고, 2402개의 각주를 달았을 만큼 방대한 책이다. 이재성 기자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사계절·1만7000원 영국의 가난한 동네에서 일했던 일본 출신 보육사가 작성한 현장보고서. 노동당이 집권했던 2008년과 보수당 정권인 2015~2016년의 탁아소를 비교하면서 저소득층의 삶을 가격한 긴축정책의 실상을 드러낸다. 한계선상의 어린이를 상대하는 돌봄노동자이자 외국인의 시선으로 인종차별, 계급격차, 아동인권 그리고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살기도 하고 배를 곯기도 하는 밑바닥 사람들의 풍경은, 정치의 중요성을 소리없이 웅변한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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