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수원지방법원 국선전담 정혜진 변호사
정혜진 변호사는 2014년부터 국선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6년 전 십대 일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수원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가 됐다. 국선변호사 공채에 합격하면 최장 6년까지 일할 수 있고 더 하려면 공채를 다시 봐야 한다. 그는 지금 두 번째 공채에 도전하고 있다.
그가 속한 수원의 국선전담 변호사 사무실엔 모두 18명이 일하고 있다. 법원에서 사무실을 얻어주고 급여도 주지만 공무원은 아니다. 나라와 계약을 맺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법적 도움을 주는 자영업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최근 지난 6년 국선변호 체험을 바탕으로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미래의 창)란 책을 냈다. 17일 서울 서초역 근처 카페에서 저자를 만났다.
책에는 그가 지금의 일을 하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비참한 삶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 드라마제작사가 출간 직후 책 판권을 사들인 이유일 것이다.
두 아이는 아빠가 마약범죄로 옥에 갇히면서 알코올 중독 엄마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끔찍한 성장기를 겪은 아버지의 온전치 못한 정신에 고통을 겪던 아들은 아버지의 범죄에 무기징역형이 떨어지길 바란다. 어린 시절 아버지 매질에 시달린 어떤 장애인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무전취식으로만 사기 전과 30범이 됐다.
다 쓰린 이야기만 있지는 않다. 저자가 조력한 1심에서 1년6개월 형을 받았지만 대법원 판결 전에 ‘대체 복무 제도 없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와 결국 무죄가 된, 예의 바르고 진지했던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변호사에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을 되새기게 했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도망가 영아 유기범이 된 미혼모를 대신해 아이 출생신고를 한 이야기도 있다. 저자가 신고 현장에서 지은 이름은 ‘희망’이었다.
그는 변호사가 되기 전 <영남일보>에서 15년간 기자를 했다. 쓰고 싶은 기사도 쓰면서 회사도 잘 되는 게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 “딴 길을 찾아” 로스쿨에 들어갔단다. 이 책도 <영남일보>에 3년 동안 쓴 칼럼을 보완했다.
“초기엔 한 달에 30명, 지금은 25명 정도 변호를 하고 있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범죄자는 당연히 비난해야겠지만 범죄에 이르기까지 상황과 그들 주변을 보면 안타까운 사연이 많아요.”
그는 제도와 관심이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사회의 사각지대 이야기를 했다. “알코올 중독 엄마의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앞으로 잘 생활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더군요. 그들이 겪은 마음의 상처를 보면서요. 요즘엔 피고인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을 때 집유 선고를 하고 치료명령을 합니다. 이런 사건이 너무 많아요. 치료받을 돈이 없으면 나라에서 대주기도 해요. 하지만 치료를 잘 받으려면 옆에서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가족들도 외면해요. 사회적 유대가 없으면 치료가 제대로 안 됩니다.”
그는 책에서 국선변호라는 제도 자체를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이웃이 있다는 것도 환기했다. 가난해 수화를 배우지 못한 청각장애인 같은 경우다. “재판은 의사소통이 전제입니다. 제가 변호를 맡은 청각장애인의 말을, 오랜 이웃이라 입 모양만으로도 무슨 말인지 안다며 옆집 아주머니가 풀어주었지만 솔직히 정확히 옮겼는지 확신이 안 서더군요.” 반면 고급 승용차를 모는 번듯한 외관의 피고인이 국선변호를 받기도 한단다. “민사는 대형로펌 변호사를 쓰고 형사는 국선을 쓰더군요. 제가 하는 재판에 대형로펌 변호사가 방청을 오기도 해요. 형사에서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거나, 일부러 가난한 척하려는 사기죄 피고인들이 국선을 쓰죠.” 국선변호사는 구속 사건이나, 불구속이더라도 피고인이 70세 이상이거나 미성년, 장애인인 사건을 맡는다. 여기에 더해 재판장 재량으로 국선 조력 여부를 정할 수 있다. 부자 피고인 사건에 국선이 드물지 않게 동원되는 이유다.
그가 맡는 사건의 대부분이 폭력이나 상해, 업무방해다. “약간의 주먹질과 욕이죠. 휴대폰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누구든 쉽게 신고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기분 나쁘면 녹음해 모욕죄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요. 화이트칼라 쪽은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분들 사이의 분쟁이 많아요. 회의하다 기분 나쁘면 녹음해서 욕했다고 고소해요. 교회 목사나 장로도 엄청 고소해요.”
지역 일간지 기자로 15년간 활동
뒤늦게 로스쿨 나와 ‘국선’ 7년째
최근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펴내 가정폭력·미혼모·전과30범 등등
사회 사각지대 비참한 현실 ‘적나라’
“글감 찾아 피고인 이야기 더 집중” 저자는 헌법재판소가 5년 전 위헌결정을 내려 지금은 사라진 이른바 장발장법 폐지의 주역이기도 하다. 새내기 국선변호사 시절에 그는 라면 한 봉지를 훔쳐도 절도 전과가 있으면 3년 이상 중형을 처하도록 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해 이듬해 위헌결정을 끌어냈다. 책이 나온 뒤 동료 국선변호사 1명과 함께 국선변호 일을 소재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단다. “글쓰기가 제 일에도 도움을 주었어요. 칼럼을 쓰려고 소재를 찾다 보니 피고인 이야기를 더 들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 정도면 기사가 되고도 남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글쓰기는 내가 하는 일을 성찰하게 해주죠. 지금은 사무실 동료와 함께 2주에 한 차례씩 뭐라도 써서 만나고 있어요.” 누가 좋은 국선변호사일까? 그가 내놓은 답은 피고인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 변호사다. “사건을 많이 하니 대체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요. 그래서 처음엔 그쪽으로 피고인을 설득했어요.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죠. 피고인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맞다고요. 물론 피고인이 잘 모르거나, 끝까지 거짓말을 해서 고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말 억울한데 그게 증거에서 안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그 사람들 입장에 서서 보면 안 보이는 게 보일 수도 있거든요.” 이런 경우다. “말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고 전과도 많은 피고인이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어요. 그런데 검찰 자료만 봐서는 확인이 되지 않았어요. 처음엔 저도 피고인 주장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경찰 공문을 보니 유치장에 10일 동안 있을 때 아무도 못 만나게 했더군요. 가족을 만나게 해준다고 해서 허위로 자백했다는 피고인 말이 신빙성이 없는 게 아니었죠.” 그가 지난 6년 만난 피고인들은 국선변호사를 하지 않았으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 내부 동전만 털어요. 출소해도 갈 데가 없어요. 돈이 있으면 찜질방이나 피시방에 가고, 없으면 노숙을 하거나 종합병원 로비 의자에서 잡니다.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훔치고, 잡힐 때까지 그렇게 살아요. 다들 에너지가 없어 일용직도 힘들어요.” 말을 이었다. “형사처벌을 하는 목적 중 하나가 사회를 범죄로부터 방어하는 것입니다. 처벌 뒤에도 계속 죄를 저지르니 아직 우리 형벌 제도가 그 목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는 1994년 <영남일보>에 들어가 2008년까지 일하고 이듬해 강원대 로스쿨에 들어갔다. 법조계 내부에서 바라본 한국 언론은?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절차가 필요해요. 그런데 신문이나 방송에서 기사가 되려면 특정 소스(취재원)나 문제의식과 한 편이 되어야 합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그게 너무 성급해 보여요. 그래서 변호사가 된 뒤 기사를 더 안 봅니다. 점심을 먹으며 동료한테 그런 일이 있었나 들어요. 요즘은 기자들이 기사를 유보적으로 쓰면 클릭을 안 하잖아요. 클릭을 많이 하면 더 위로 올라가고요. 악순환이죠. 기사도 속도전이고 반응도 속도전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정혜진 변호사. 강성만 선임기자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표지.
뒤늦게 로스쿨 나와 ‘국선’ 7년째
최근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펴내 가정폭력·미혼모·전과30범 등등
사회 사각지대 비참한 현실 ‘적나라’
“글감 찾아 피고인 이야기 더 집중” 저자는 헌법재판소가 5년 전 위헌결정을 내려 지금은 사라진 이른바 장발장법 폐지의 주역이기도 하다. 새내기 국선변호사 시절에 그는 라면 한 봉지를 훔쳐도 절도 전과가 있으면 3년 이상 중형을 처하도록 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해 이듬해 위헌결정을 끌어냈다. 책이 나온 뒤 동료 국선변호사 1명과 함께 국선변호 일을 소재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단다. “글쓰기가 제 일에도 도움을 주었어요. 칼럼을 쓰려고 소재를 찾다 보니 피고인 이야기를 더 들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 정도면 기사가 되고도 남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글쓰기는 내가 하는 일을 성찰하게 해주죠. 지금은 사무실 동료와 함께 2주에 한 차례씩 뭐라도 써서 만나고 있어요.” 누가 좋은 국선변호사일까? 그가 내놓은 답은 피고인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 변호사다. “사건을 많이 하니 대체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요. 그래서 처음엔 그쪽으로 피고인을 설득했어요.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죠. 피고인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맞다고요. 물론 피고인이 잘 모르거나, 끝까지 거짓말을 해서 고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말 억울한데 그게 증거에서 안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그 사람들 입장에 서서 보면 안 보이는 게 보일 수도 있거든요.” 이런 경우다. “말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고 전과도 많은 피고인이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어요. 그런데 검찰 자료만 봐서는 확인이 되지 않았어요. 처음엔 저도 피고인 주장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경찰 공문을 보니 유치장에 10일 동안 있을 때 아무도 못 만나게 했더군요. 가족을 만나게 해준다고 해서 허위로 자백했다는 피고인 말이 신빙성이 없는 게 아니었죠.” 그가 지난 6년 만난 피고인들은 국선변호사를 하지 않았으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 내부 동전만 털어요. 출소해도 갈 데가 없어요. 돈이 있으면 찜질방이나 피시방에 가고, 없으면 노숙을 하거나 종합병원 로비 의자에서 잡니다.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훔치고, 잡힐 때까지 그렇게 살아요. 다들 에너지가 없어 일용직도 힘들어요.” 말을 이었다. “형사처벌을 하는 목적 중 하나가 사회를 범죄로부터 방어하는 것입니다. 처벌 뒤에도 계속 죄를 저지르니 아직 우리 형벌 제도가 그 목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는 1994년 <영남일보>에 들어가 2008년까지 일하고 이듬해 강원대 로스쿨에 들어갔다. 법조계 내부에서 바라본 한국 언론은?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절차가 필요해요. 그런데 신문이나 방송에서 기사가 되려면 특정 소스(취재원)나 문제의식과 한 편이 되어야 합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그게 너무 성급해 보여요. 그래서 변호사가 된 뒤 기사를 더 안 봅니다. 점심을 먹으며 동료한테 그런 일이 있었나 들어요. 요즘은 기자들이 기사를 유보적으로 쓰면 클릭을 안 하잖아요. 클릭을 많이 하면 더 위로 올라가고요. 악순환이죠. 기사도 속도전이고 반응도 속도전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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