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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연 스님 ‘삼국유사’ 숨어있는 나무 이야기 찾아냈죠”

등록 2020-01-29 18:11수정 2020-01-30 02:44

[짬]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 김재웅 이사장
김재웅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 이사장. 김재웅 이사장 제공
김재웅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 이사장. 김재웅 이사장 제공

“고려 시대 일연 스님(1206~1289)이 쓴 <삼국유사>를 20번은 읽은 것 같아요. 역사학계에서는 <삼국유사>를 야사로 보고 정사 성격인 <삼국사기>보다 가치를 낮게 보지만 제 생각에 <삼국유사>에는 재발견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최근 <나무로 읽는 삼국유사>(마인드큐브)를 낸 김재웅 대구경북인문학협동조합(이하 협동조합) 이사장 말이다. 그는 <삼국유사>에서 나무 29종이 나오는 이야기 51편을 확인하고 이와 관련한 현장을 찾아 역사와 생태 이야기를 펼쳤다.

국문학 권위자 조동일 교수에 따르면 단군신화가 최초로 기록된 역사서이자 신화, 전설, 향가 등이 풍부하게 담긴 <삼국유사>는 ‘쓰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파고들 주제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김 이사장은 그 광맥 중 생태와 나무를 잡은 것이다. 저자를 29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2009년부터 경북대 교양교육센터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3년 전 협동조합에서 ‘삼국유사와 생태인문학 기행’ 프로그램을 열어 10개월간 이끌었어요. 수강한 네 가족과 함께 매달 한차례 1박2일로 <삼국유사> 속 나무를 찾아다녔죠. <삼국유사>에는 나무가 많이 나오는데 사람들은 잘 몰라요. 유물을 찾는 여행만 주로 하죠. 이 기행 기록과 경주 답사기를 묶어 책을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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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읽는 삼국유사> 표지

고전문학 전공자인 저자에게 <삼국유사>는 매우 익숙한 책이다. 그는 계명대 국문학과에서 고전 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무 공부 이력도 18년이란다. “2002년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등과 함께 나무를 공부하는 모임인 ‘나무 세기’를 만들어 10여년 이상 한 달에 한 차례씩 전국의 아름다운 숲과 나무를 찾아다녔어요.”

그가 보기에 <삼국유사> 속 나무는 생명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말하는 상징이다. “일연 스님이 책을 편찬할 때는 몽골 침략으로 백성들이 무고하게 죽어가던 시절이었어요. 스님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생명력이 강한 나무를 끌어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려 했죠. 문자를 모르는 백성에게 나무 상징으로 불교의 절대 진리를 깨우치려고도 했죠. 신라 고승 원효도 나무가 부처라고 했어요.”

그는 대나무를 예로 들었다. 소나무·향나무와 함께 일연 저술에 가장 많이 나오는 나무란다. “일연 스님은 의상이 대나무 솟은 곳에 낙산사를 지었다고 해요. 죽순을 보세요. 우후죽순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빠르게 자랍니다. 그 신비한 생명력을 통해 낙산사 창건의 정당성이나 의상 스님의 신통력을 보여주려고 했죠.” 세상을 평안하게 한다는 대나무 피리 ‘만파식적’과 신라 미추왕이 대나무 잎을 꽂은 군사를 지휘해 신라를 지켰다는 이야기도 일연 저술에 나온다.

<삼국유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인 ‘단군신화’도 저자가 보기엔 매우 생태적이다. “단군신화 해석을 보면 곰과 호랑이가 참고 견뎠다는 이야기만 강조해요. 곰과 호랑이의 경쟁도 그렇고요. 산업시대의 관점이죠. 제 생각에 단군신화는 풀 한 포기와 같은 새로운 생명체가 나오기 위해서도 하늘과 땅 우주가 합심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생태적 관점이죠.”

일연 스님의 여러 이야기 중 저자 마음을 가장 끈 대목은 포항 지역에 전승하는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이란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왜국으로 간 뒤 신라의 해와 달이 광채를 잃자 세오녀가 직접 짠 비단을 신라에 보내 하늘에 제사 지내게 하자 해와 달이 다시 밝아졌다는 내용이다. “일연 스님이 나무를 이야기 문맥 속에 숨겨놓았죠. 비단은 뽕나무와 누에가 있어야 짤 수 있거든요.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일월지가 현재 해병대 제1사단 관할 구역에 있어요. 군의 특별 허가를 받아 가 보니 일월지에 뽕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더군요. 너무 기뻤죠. 뽕나무 때문에 암흑천지 하늘에 해가 돌아왔으니 일월지에 뽕나무를 더 심으면 좋겠어요.”

3년 전 10개월 생태인문학 기행
나무 29종·이야기 51편 현장 답사
최근 ‘나무로 읽는 삼국유사’ 펴내
“나무 통해 생명의 소중함 일깨워”

‘고문학’ 전공 ‘삼국유사’ 20번 독파
‘나무 세기’ 모임 등 18년 나무 공부

‘삼국유사 나무 기행’의 미덕 중 하나는 ‘상상하는 즐거움’이란다. “신화나 전설을 하나씩 읽고 현장을 보면 훨씬 재밌어요. 일연의 상상력이 어디서 왔을지 현장에서 묻곤 합니다.” 경주시 탑동에는 신라 첫 국왕 박혁거세(BC 69~AD 4) 탄생 신화가 깃든 장소 ‘나정’이 있다. “나정을 가 보면 소나무 숲이 있어요. 소나무 몸피가 붉어 마치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일연이 전한 박혁거세 신화에는 소나무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상상이 가능하단다. “신화는 붉은 알에서 태어난 아이(박혁거세)를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사방으로 퍼졌다고만 해요.” 그는 “나정의 나는 소나무겨우살이를 의미하고 정은 우물이란 점도 나정 소나무 숲을 예사롭게 지나칠 수 없게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일연 스님이 전한 ‘나정 스토리’가 지금 이곳에서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음을 아쉬워했다. “나정이 신라 스토리 텔링의 출발점인데, 가 보면 사람도 없고 볼 것도 별로 없어요. 다른 신라 유적지에 견줘 관심 밖이죠. 생태 관점에서 신화의 공간을 어떻게 보존할지 더 고민이 필요해요.”

나정의 소나무. 김재웅 이사장 제공
나정의 소나무. 김재웅 이사장 제공

김 이사장은 고전과 생태를 잇는 집필 작업의 장점으로 ‘여행’을 꼽았다. 고전 속 무대를 직접 찾아 상상력을 펼쳐야 글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책에 낙산사를 찾아 대나뭇과의 이대(사진 앞쪽)를 보고 느낀 기쁨을 이렇게 풀었다. “의상대에서 홍련암으로 가는 길에는 대나뭇과의 이대가 무리지어 바닷가의 세찬 바람을 막아준다. 홍련암 입구에서 의상대를 바라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이대 위에 의상대가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대나무는 의상스님이 낙산사를 창건한 유래와 연관되어 있어서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그는 낙산사 주변이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 한계선이라고도 했다. 김재웅 이사장 제공
김 이사장은 고전과 생태를 잇는 집필 작업의 장점으로 ‘여행’을 꼽았다. 고전 속 무대를 직접 찾아 상상력을 펼쳐야 글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책에 낙산사를 찾아 대나뭇과의 이대(사진 앞쪽)를 보고 느낀 기쁨을 이렇게 풀었다. “의상대에서 홍련암으로 가는 길에는 대나뭇과의 이대가 무리지어 바닷가의 세찬 바람을 막아준다. 홍련암 입구에서 의상대를 바라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이대 위에 의상대가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대나무는 의상스님이 낙산사를 창건한 유래와 연관되어 있어서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그는 낙산사 주변이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 한계선이라고도 했다. 김재웅 이사장 제공

그가 2년 전 이사장을 맡은 협동조합은 현재 조합원이 120명이다. 2004년 창립 이후 매년 300회 가까운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작년에는 포항점자도서관 요청으로 회원 20명이 참여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90차례 했단다. 조합원들이 외부강사비 중 일부를 내놓아 운영에 쓴단다. 상근 간사를 두고 사무실까지 있는 인문학 협동조합을 6년 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협동의 가치’가 살아 있어 가능했단다. “대구시청에서 봄·가을로 하는 시민 인문학 강좌는 많으면 300명까지 들어요. 안타까운 점은 인문학 강좌가 꼭 필요한 층은 청소년인데 그들을 강좌로 끌어들이기 어렵다는 거죠. 학교 쪽에 알아보면 학원 수강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나무는 글쓰기 교육에도 유용하단다. “대학 글쓰기 강의 때 가끔 야외로 나가 나무를 소재로 글을 쓰게 합니다. 이 수업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수강생들이 꽤 됩니다.” ‘대학생들의 글쓰기’에 대해 궁금해하자 이렇게 말했다. “요즘 대학생들이 단편적인 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자기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말도 안 되고 글도 안 됩니다. 10년 전보다 글쓰기 능력이 더 떨어진 것 같아요. 감수성이나 상상력도 위축됐고요.”

그는 <삼국유사>에 이어 <춘향전>이나 <구운몽> 등 우리 고전을 두루 살펴 <나무로 읽는 고전문학> 책도 낼 계획이라고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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