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경 지음/정은문고·2만2000원 공원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한 것 같지만, 실은 19세기 중후반 새롭게 ‘발명’된 공간이다. 이전까지 도시의 녹지 공간은 대부분 사적 영역으로 권력이 있는 자들만 향유할 수 있었다면, 근대와 함께 유입된 ‘공원’은 모든 이가 장벽 없이 거닐 수 있다는 점에서 달랐다. 같은 곳에서 양산을 받쳐 든 모던걸·모던보이가 꽃놀이를 하고 지게꾼이 그늘에 걸터앉아 땀을 닦는 풍경. 이렇듯 공원은 각자의 일상 한쪽에 낯선 존재가 들어와 머물 수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줬다.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은 한국 공원의 130년 역사를 살피는데, 이는 결국 한국사회가 대중의 공간에 투영하고 기념하고자 했던 가치의 이력이기도 하다. 유길준은 서구의 공원이 많은 자원을 들여 “부유한 분위기를 가난한 자와 함께 이바지”하는 것에 놀라고, 서재필은 모든 계층의 사람이 공원에 모여 앉아 연설을 듣고 얘기를 나눌 것을 권했다 한다. 한편 공원은 ‘공공’의 개념을 입맛에 맞게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성장통을 겪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엔 대한제국 군인의 추모 공간이었던 장충단공원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가 들어서는 등 일제의 ‘조선 지우기’가 빈발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뜬금없는’ 기념비를 조성해 기억을 강요하거나 노인·노숙인 등 갈 곳 없는 자들을 공원 풍경에서 걷어내려고도 한다. 글쓴이는 공원에도 나이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간의 갈피짬마다 어떤 이들이 공원에 머물렀고, 또 어떤 희망과 욕망이 공원에 깃들어 왔는지 살핌으로써 공원의 시간적 층위를 두텁게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책.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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