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불평등에 맞서다
조너선 디(D). 오스트리 외 지음, 신현호·임일섭·최우성 옮김/생각의힘·1만8000원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터져 나온 민중 시위가 아랍 전역에서 경제적 평등 확대를 요구하는 ‘아랍의 봄’으로 이어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으로 번져갈 때, 워싱턴 디시의 국제통화기금(IMF) 건물에선 아이엠에프 총재가 주재하는 고위 간부 회의가 열렸다. 총재는 물었다. “왜 우리는 이것을 예측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아이엠에프 현직 간부들이 쓴 <IMF, 불평등에 맞서다>(원제: Confronting Inequality)는 총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책은 질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시기와 맥락으로 미뤄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1년 7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아이엠에프 총재로 일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현직 간부들이 쓴 책 <IMF, 불평등에 맞서다>는 불평등이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불평등을 줄이는 처방으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Shutterstock.com
이 책은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첨병 노릇을 했던 아이엠에프의 반성문으로 읽힌다. 장하준처럼 비유가 화려하거나, 토마 피케티처럼 초유의 분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엠에프 현직 간부들이 수십년 간 고수해온 자신들의 정책 기조를 비판한다는 사실만으로 주목할 만하다.
제목이 말해주듯, 책의 열쇳말은 불평등이다. “2014년 옥스팜(Oxfam, 빈곤 해결을 위한 국제기구)은 놀라운 통계를 표제로 제시했다. 전 세계 상위 부자 85명이 대략 35억명에 이르는 인류의 하위 절반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일극 체제가 완성된 지난 30년 동안 불평등이 깊어졌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이 책의 관심사는 불평등 자체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불평등과 성장의 관계를 밝히는 게 이 책의 목표다. 아이엠에프의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 예를 들어 ‘금융 세계화’로 불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재정건전화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포장된 재정긴축 프로그램,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했던 구조조정이 불평등에 미친 영향을 통계로 입증한다.
책은 먼저 영국, 미국 등 선진국과 브라질, 카메룬, 칠레, 요르단 등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성장 패턴을 분석한다. 영국과 미국의 그래프는 마치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꾸준하게 우상향하지만(물론 작은 오르내림은 있다),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은 성장이 오랫동안 정체되거나 단절되기도 한다. 그 이유를 지은이들은 불평등에서 찾는다. 성장기의 지속 여부와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수인 지니계수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 “불평등이 심할수록 성장의 지속 기간도 짧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과 재분배가 성장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재분배가 겉으론 성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과는 달리, 순불평등은 분명하게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 재분배가 종합적으로 성장친화적 효과를 내는 윈-윈 상황에 있다는 게 분석의 평균적 결론”이라고 책은 말한다.
미국 ‘월가를 점령하라(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시위 장면. ⓒGlynnis Jones/Shutterstock.com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재정건전화(재정긴축) 정책과 불평등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지은이들은 1978~2009년까지 재정건전화 조처를 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 회원국의 경제 통계를 분석했다. 재정건전화 조처란 공기업을 매각하거나 세출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국가 부채를 감축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들 국가의 건전화 규모는 평균적으로 대략 국내총생산(GDP)의 1%였다. “과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증거는 명백하다. 전형적으로 재정건전화는 소득을 감소시키고 실업을 늘리는 단기 효과를 낸다. 지디피 1% 규모의 재정건전화는 2년 이내에 인플레이션 조정을 거친 소득을 약 0.6%포인트 감소시키고, 실업률을 약 0.5%포인트 끌어올리며, 그 뒤론 약간의 회복세를 보인다.” 그 결과, 지니계수는 건전화 조처 이후 1년에 약 0.1%포인트, 8년 만에 약 0.9%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은이들은 말한다.
당연하게도 이에 따른 고통은 균등하게 나뉘지 않는다. “재정건전화는 임금소득자에게 돌아가는 파이의 조각을 줄인다. 지디피 1% 규모의 재정건전화마다 인플레이션 조정된 이윤과 지대는 고작 0.3% 줄어드는 데 반해, 인플레이션 조정 임금소득은 전형적으로 0.9% 감소한다. (…) 종합하자면, 재정건전화는 이미 충분히 고통을 겪고 있을 사람들-장기 실업자-의 고통을 배가한다.”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이다.
1979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불을 댕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검증을 시도한다. 지은이들은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을 인용해 “위기 리스크가 커졌다는 점에서 비용은 높은 데 반해, 자본계정 자유화의 편익에 관한 증거는 찾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로드릭은 자본이 전 세계를 무대로 자유로이 이동하도록 허용하는 건 “런던, 프랑크푸르트, 뉴욕의 20대 중반, 기껏해야 30대 애널리스트들의 기분과 취향에 경제를 볼모로 내맡기는 꼴”이라고 비판한다. 1980년대 이래 자본 유입이 급증한 신흥경제 150국 중 약 20%가 금융위기를 겪었고, 한국도 그중 하나였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소득 불평등의 관계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정책금리를 예상치 못하게 100bp(1%) 인하하면 지니계수를 단기적으로 약 1.25%, 중기적으론 약 2.25% 낮춘다. (…) 노동소득분배율은 증가하고, 상위 10%, 5%, 1%에 돌아가는 소득 몫은 모두 떨어진다. 요약하자면 우리가 얻은 결론은 외생적인 통화정책 완화가 불평등을 줄인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한다.”
책의 결론은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소득불평등은 경제성장을 방해한다. 둘째, 지금까지의 성장 정책(평균소득 증가 정책)은 불평등을 높여 왔다. 셋째, 재분배는 성장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경향이 있다. 넷째,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해소 노력이 노동의욕을 저해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 사회의 불평등도는 정부가 선택한 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대안은 ‘포용적 세계화’다. “세계화의 역전”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각종 재분배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나 교육 등의 공공재 투자 확대를 비롯한 ‘사전분배’ 정책, 미국의 근로장려세제(EITC) 프로그램처럼 소득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불평등 완화 대책으로 제시한다. 이들은 이를 ‘트램펄린과 안전망’이라고 부른다. 또한 자본 이동을 통제하고, 금융 세계화에 따른 이득이 자본에 집중되지 않도록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세계적인 협력도 필요하다고 밝힌다.
주목할 점은 이들의 대안 중에 기본소득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로봇 도입 확대에 따라 생산량은 늘어나지만 노동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짐에 따라 임금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구매력 강화를 위해 기본소득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원은 자본에 대한 과세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고 지은이들은 말한다.
한국에선 일부 좌파의 비현실적인 주장처럼 치부되는 기본소득제를 아이엠에프가 도입하자고 제안하는 현실은 자못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적 성장에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서구 기준으로는 기본소득이 우파적 주장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정도로 현재의 불평등 수준이 심각하거나, 심각해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우파는 여전히 성장과 분배를 흑백논리로 나눠 모든 분배 정책을 좌파적이라고 비난하는 게 현실이다. 자신들이 우상처럼 떠받들던 기관은 이미 10년 전부터 방향을 바꿨는데, 한국의 보수우파는 여전히 과거 이념에 매달린다. 이들의 악담과 저주로 인해,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론’은 거의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이 책의 지은이들이 한국의 보수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문제는 성장이야 바보야! 성장을 위해서라도 분배는 필요하다고!’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