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지방 산 열
사민 노스랏 지음, 웬디 맥노튼 그림, 제효영 옮김/세미콜론·3만3000원
사민 노스랏 이메일 인터뷰
물·불·공기·흙이 만물의 기본 물질이라고 주장한 엠페도클레스처럼, 세상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알아낸(또는 알아냈다고 생각한)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얼마나 기뻤을까? 먹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요리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요리의 기본 원리를 알려주는 ‘복음서’가 나왔다. 넷플릭스의 동명 제목을 통해 이미 많은 사랑을 받은 셰프, 사민 노스랏의 <소금 지방 산 열>이다. 적정량의 소금으로 적정 시간만큼 양념하고, 재료의 맛이 가장 잘 배어나오게 하는 최상의 지방을 선택하고, 산을 더해 음식에 균형과 생기를 불어넣고, 요리별로 최적의 열원으로 적정 시간을 가열하면, 어느 요리든 다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요지다. 무작정 레시피를 따라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하며 요리의 원리를 설파하는 노스랏을 전자우편 인터뷰로 만났다. 그는 무려 원고지 75매에 이르는 성의 있는 답변으로 자신의 요리철학을 설명했다.
사민 노스랏. © BLUE BOTTLE COFFEE Inc.
이란계로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노스랏은 어린 시절부터 농산물 직판장에서 구매한 신선한 재료에 갖가지 허브와 채소로 풍부한 미감을 더한 중동 음식을 먹으며 자라났다. 먹는 걸 즐겼지만 요리엔 문외한이었던 그가 셰프의 세계에 빠져든 건, 샌프란시스코의 맛집인 ‘셰 파니스’에서 환상적인 저녁을 먹고나서부터였다. 노스랏은 레스토랑 주인에게 그날의 감동을 절절이 적은 편지를 보냈고, 곧 요리에 입문했다.
노스랏은 자신에게 음식의 의미란 “몸의 모든 감각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뭔가 노릇하게 익을 때의 냄새,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거나 지글지글 익는 소리 같은 것에 집중하면 몸에 관심을 돌리고 감각을 갈고 닦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만들고 먹는 것의 의미를 넘어서는 경험도 강조했다. “농산물 직판장이나 밭에 가게 되고,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요리를 하게 됐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는 식당 주방에서 일한 지 얼마 안돼 소금·지방·산·열의 원리를 깨우쳤다고 썼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냐고 묻자 “메뉴가 매일 바뀌고 계절에 맞는 음식을 만드는 셰 파니스와 같은 주방에서 일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겨우 토마토 쓰는 법을 배우고 나면, 계절이 바뀌는 바람에 몇달동안 다시 써먹을 수가 없었어요. 각각의 레시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주방에서 만든 모든 것을 매일 맛보면서 소금·지방·산·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가령 전날 밤에 소금을 쳐두지 않은 고기의 질감, 버터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식감, 신맛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미, 센불과 약한불의 차이 등을 끊임없는 반복과 관찰을 통해 익혔습니다.” 그는 특히 소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금을 쓸 때 겁을 내거나, 충분히 넣지 않거나 언제 넣어야 하는지 잘 몰라요. 소금 다루는 법만 알면 음식의 75% 정도는 훌륭하게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건 레시피가 아니라 사람’임을 강조하는 그는 ‘맛보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리는 레시피가 중요하죠. 그러나 어떤 레시피도 완벽할 수 없어요. 여러분이 쓰는 재료와 양념이 레시피 작성 때 쓰인 것과 똑같지 않을 수 있거든요. 레몬 신맛이 더 강할 수도 있고, 소금이 더 굵을 수도 있지요. 자기 몸과 감각을 믿고 집중해야 합니다.” 그는 맛보기를 하다가 보다가 머릿 속에 ‘징’하는 느낌이 오는 순간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고 싶다고 느낄 때, 맛을 보는데 도저히 멈출 수 없을 때까지요.”
요리 재료로 다양한 고기와 동물성 지방을 사용하는 노스랏에게,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한 실천으로 채식주의가 급부상하는 데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저는 닭도, 버터도 치즈도 요구르트도 사랑해요. 동시에 저는 동물성 식품을 덜 먹고 축산업이 기후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는 일에 모두가 참여할 책임이 있다는 의견도 이해합니다. 채식이 가장 강력한 해결 방안이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노력은 동물성 식품 소비량을 줄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3분의 1을 줄이고, 나중에는 3분의 2를 줄이는 식으로요. 이것이 제가 세운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그는 요리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열정적이다. 셰 파니스 입사 직후부터 계속 글을 써왔고, 요리 저널리즘 강의도 들었다. “요리는 사회적 활동이지만 글쓰기는 혼자 상상하고 읽고 생각하는 느린 일이에요. 머리만 굴리거나, 반대로 몸만 썼다면 결코 완전한 기분을 느끼지 못할 거에요. 요리와 글쓰기 두가지는 저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노스랏은 한국 음식에 대한 사랑도 털어놨다. “저희 집과 가까운 곳에 20년째 단골로 찾는 한국 두부 음식점이 있어요. 저는 한국 음식을 무척 즐깁니다. 이란 음식처럼 쌀을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이 있어서, 그리고 맛의 균형이 놀랍도록 잘 잡혀 있기 때문이에요. 한국 요리를 만드는 주방에선 소금·산·감칠맛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요리에 이 세가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김치박물관에 꼭 가보고 발효에 관해서도 배우고 싶어요.”
■ 인터뷰 전문
• 나는 당신이 음식을 만들 때나 먹을 때, 코와 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온 마음을 다하고, 눈과 귀까지 활짝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음식과 관련한 것이라면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당신에게 음식은 어떤 의미이고, 먹는다는 행위의 즐거움은 어떤 것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와,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복합적인 의미가 있어요. 먼저 저는 요리에서 모든 감각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점점 늘어나는 생활에서는 몸을 쓰기보다 생각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요. 그래서 요리는 매일 일상적으로, 다시 몸에 관심을 돌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 감각을 활용하는 한편 그 감각들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정말 멋진 기회이자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해보면 뭔가 노릇하게 익을 때 어떤 냄새가 나는지, 재료가 타기 시작하면 그 냄새가 어떻게 바뀌는지 배울 수 있죠.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듣는 법, 지글지글 굽는 소리가 온 사방에 재료가 다 튀는 상태가 되면 어떤 소리로 바뀌는지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요리에 더 집중하고 더욱 세심하게 살펴보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고, 우리를 더 훌륭한 요리사로 만들어줍니다. 실제로 이런 과정이 훌륭한 요리사가 되는 길이기도 하고요.
제 경우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인 아주 초반부터 음식과 요리는 내가 만들거나 먹는 것의 의미를 넘어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로서의 의미가 훨씬 더 커진 것 같아요. 농산물 직판장이나 밭에 가게 되고 주방으로 향하게 되는 기회, 혼자 요리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요리하게 되는 기회가 됐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롯이 제 자신과 함께하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든 마음을 다해서 함께하는 기회가 됩니다. 요리를 삶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자 하는 모든 분들이 이런 기회를 얻길 바랍니다.”
• 책을 보면, ‘셰 파니스’ 인턴으로 시작했을 때부터 당신은 주방에서 일하는 것 외에도 꾸준히 글쓰기를 해왔습니다. 보통 요리사는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고만 알려져 있는데 당신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이번에도 굉장히 의미 있는 질문이군요. 요리와 글쓰기는 저를 이루는 정말 중요한 두 가지입니다. 여러 면에서 상당히 다른 일이고, 둘 다 저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요리는 제가 일상적으로 몸에 관심을 돌리고 양손을 사용하는 방식이에요. 요리를 하면 보통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해서 완성까지 하루 안에 끝나잖아요. 단시간 내에 내가 만든 결과를 볼 수 있어요. 동시에 요리는 사회적인 활동입니다. 주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일할 때도 그렇지만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쓰기는 전혀 다른 일이에요. 느린 일이고, 절대 하루 만에 뭔가 완성할 순 없어요.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상상하고, 읽고, 생각하고, 쓰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려요. 제가 깨달은 건 요리와 글쓰기가 상호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머리만 굴리거나, 반대로 몸만 썼다면 결코 완전한 기분은 느끼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한 젊은 친구들에게 늘 요리 말고, 그런 충만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다른 일도 함께 찾아보라고 이야기합니다.”
• 책을 보면, 요리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돼 소금, 지방, 산, 열의 원리를 간파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원리를 파악하게 됐습니까? 또한 이탈리아아의 수련 과정과 전세계 여행을 통해서 소금, 지방, 산, 열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했습니다. 책에도 기술돼 있긴 하지만, 특별히 소금, 지방, 산, 열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사건(에피소드)이 있다면 소개해주시겠습니까?
“네 가지 요소의 원리는 각각 따로 깨달았어요. 모두 요리를 시작한 첫 해에, 짧은 기간 동안 네 요소의 원리를 알게 됐습니다. 메뉴가 매일 바뀌고 계절에 맞는 음식을 만드는 셰 파니스와 같은 주방에서 반복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뀌는 것들이 너무 많으면 어느 하나에 계속해서 집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요리에 관해서는 정말이지 아는 게 전혀 없고 전문적으로 교육도 받은 적 없는 저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혼란 그 자체였죠. 가령 아티초크나 당근, 토마토 쓰는 법을 겨우 배우고 나니 계절이 바뀌는 바람에 그 방법은 앞으로 수개월 동안 다시 써먹을 수가 없는 식이었어요. 그 때 저는 각각의 레시피나 그때그때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우리가 주방에서 만든 모든 것을 매일 맛보면서, 어떤 요리에 소금 양이 적절한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씩 바로 그런 대화가 오갔어요. 고기는 소금이 충분히 흡수되고 속에서부터 전체적으로 골고루 분포할 수 있도록 반드시 전날 밤에 소금을 쳐두었어요. 그럴 시간이 없거나, 누가 깜박하거나 실수로 빼먹은 날은 그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전날 소금을 친 고기와 맛에서도 차이가 나고 그만큼 연하지도 않았어요. 반복과 관찰을 통해서 저는 이런 사실들을 깨달았습니다.”
“
지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올리브유 맛에 굉장히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셰 파니스의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은 대부분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라 올리브유를 사용했죠. 그 두 나라 음식에 많이 들어가는 지방이 올리브유니까요. 그러다 그 두 곳 외에 세계 다른 나라 음식을 요리할 일이 생기면 다른 지방을 사용했습니다. 올리브유 종류마다 맛이 어떤지 주방에서 함께 의논하기도 하고 그 다른 맛에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죠. 버터를 사용할 경우, 제가 패스트리 주방에서 보조로 일할 때와 식사 메뉴를 만드는 주방에서 예를 들어 뭔가를 살짝 볶을 때 사용하는 버터의 온도가 다르고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버터의 온도로 음식의 식감이 제대로 형성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겉면을 바삭바삭하게 만들어야 할 때도 있었고 크리미하게, 파삭하게, 연하게, 심지어 휘핑크림처럼 가벼운 질감이 필요할 때도 있었어요. 이런 내용 역시 수개월에 걸쳐서 반복하고 주의를 기울이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산의 경우, 제 가족이 이란 출신이고 이란의 음식 문화는 신맛이 아주 강한 편이라 각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이란 사람들은 시큼한 음식을 정말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 한국 분들도 신맛을 좋아할 것 같아요. 저는 음식에 신맛이 부족하면 본능적으로 알아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그 중요성을 또렷하게 깨달았습니다. 당근 수프를 만들었을 때였죠. 저는 맛이 꽤 좋다고 생각했어요. 소금도 제대로 넣고, 맛이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 요리사 한 분이 맛을 보더니 “음, 산을 더 넣어야 됩니다. 식초를 좀 더 넣으세요.”라고 하더군요. 수프에 식초를 넣다니, 세상에 무슨 그런 괴상한 생각을 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하라는 대로 했죠. 그랬더니 수프 맛이 확 살아난 겁니다. 음식에 산이 충분히 들어가지 않으면, 음식 맛에 아무리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다 허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저도 그 지점을 찾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열은 가장 갑작스럽게 깨달은 요소인 것 같아요. 저는 스토브가 정말 무서웠어요. 센 불을 사용하는 것도 너무 겁이 났고요. 오븐을 쓸 때도 구이 요리를 하건, 채소를 익히건 온도를 잘못 맞추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어요. 그러다 같은 일을 다른 열원을 사용해서 해본 뒤에야 음식을 익힐 때 어떤 열원을 사용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요리사로부터 “스토브가 꽉 차서 빈자리가 없어요. 그러니 불을 피워서 수프를 끓이세요”라는 말을 듣고 일단 시키는 대로 했지만, 불길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불을 피워서 어떻게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어서 잔뜩 겁에 질렸습니다. 하지만 곧 스토브에서 요리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단지 스토브에서는 불길을 세게 올리거나 낮출 수 있지만 불을 피워서 요리할 때는 열이 가해지는 지점이 각각 다르고 그에 맞게 냄비의 위치를 옮겨야 합니다. 센 불과 약한 불의 차이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그걸 깨달은 후에야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떤 음식에 어떤 불을 가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열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봉골레 파스타 만들 때 신맛 입히는 방법. 세미콜론 제공
• 소금, 지방, 산, 열 그 중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아야 한다면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늘 대답하기가 어렵지만, 저는 대부분의 요리사에게 소금 다루는 법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대부분 잘 몰라요. 소금을 쓸 때 겁을 내거나, 충분히 넣지 않거나, 언제 넣어야 적절한지 알지 못합니다. 소금 다루는 법만 알면 만드는 음식의 75 퍼센트 정도는 훌륭하게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 당신은 머릿속에서 ‘징’하는 느낌이 올 때까지 계속 맛을 보면서 소금, 지방, 산, 열을 조절하라고 했습니다. 그 징 하는 느낌을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징’하는 느낌이 오는 순간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고 싶다고 느낄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맛을 제대로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맛을 보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을 때, ‘이 샐러드 드레싱은 소금, 지방, 산 균형이 완벽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손가락으로 찍어서 자꾸 맛을 보고 싶고, 당근을 하나만 더 찍어서 먹고 싶은 순간이죠. 제 경험상 한국 음식 중에는 이미 균형이 딱 잡힌 정말 맛있는 요리가 정말 많아요. 산과 소금, 감칠맛이 꽉 차 있어서 입 안 가득 듬뿍 먹게 만드는 그런 음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화의 특성상 한국의 독자들께 이 책이 꼭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은 그런 음식을 가정에서 접하면서 자라는 동안 독자 여러분들이 이미 다 터득한 것들을 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 레시피에만 의존하지 말라, 요리는 사람이 한다, 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종 요리책의 보급과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특별한 레시피, 이를 테면 양념 비법 같은 데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레시피에 전적으로 의존할 때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레시피가 좋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레시피이거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요리, 또는 정말 좋아하는 요리인 경우에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음식은 매일 변하고 매순간 변하고 있습니다. 주방도 변하고 날씨, 재료도 변하고, 심지어 당근에 함유된 당의 함량도 날마다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레시피도 완벽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어떤 오븐도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열은 항상 바뀌므로, 매번 모든 재료를 똑같은 양만큼 넣는다거나 항상 똑같은 시간 동안 조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이런 방식은 요리하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어요. 사람들은 레시피대로 했는데 완벽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신이 뭔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몸과 감각을 믿고 요리에 집중하지 않은 것이 진짜 실수에요. 레시피는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레시피에만 의존해서는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요리할 때는 항상 맛을 봐야 합니다. 냄새를 맡고, 귀를 기울이고, 지금 만들고 있는 음식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용하는 재료는 레시피가 작성될 때 사용된 재료와 정확히 똑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쓰는 레몬의 신맛이 더 강할 수도 있고, 여러분이 쓰는 식초가 신맛이 좀 덜 날 수도 있어요. 레시피에 나온 것보다 더 굵거나 가는 소금을 쓸 수도 있고요. 그러므로 반드시, 꼭 여러분의 미각을 활용하고 레시피는 여러분의 감각을 바로잡는 가이드로 활용해야 합니다.”
• 당신은 소금, 지방, 산, 열의 원리를 실천하는 데 맛보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미각이 발달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맛을 잘 보는 것, 즉 미각이 뛰어나다는 것은 결국 재능의 문제 아닐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맛보기를 잘 할 수 있는 훈련 방법이 있을까요?
“좋은 와인이나 맥주, 초콜릿, 커피의 맛을 구별하는 법을 누구나 배울 수 있듯이 시간을 들이고 집중하면 누구든 미각을 발달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고 맛을 잘 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요리사가 되는 것보다 맛을 잘 보는 사람이 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늘 음식을 먹으니까요. 저는 누구든 미각을 우수하게 발달시킬 수 있고 그건 연습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연습한다는 건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요리를 할 때는 물론이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연습할 수 있어요. 무엇이 맛을 좋게 만들까, 집중하기만 하면 됩니다. 심지어 정크푸드를 먹을 때도, 대부분의 정크푸드는 맛이 좋게 느껴질 수밖에 없도록 조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왜 이 음식이 맛있는지 집중하면 짠맛과 단맛, 지방의 맛, 신맛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당신은 이란 출신으로, 어린 시절 할머니가 1년에 한 번씩 미국에 올 때마다 다양한 식재료를 가지고 왔던 황홀한 기억을 묘사했습니다. 독특한 문화적 배경은 요리사라는 직업에 있어서 어떤 장점으로 작용했습니까? 또는 유럽 출신이 아니라서 요리사로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우리 가족은 이란에서 왔고 저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저는 평생 두 가지 문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캘리포니아 사람으로 살면서 이란에 관한 훌륭한 정보와 이란의 맛, 문화를 전부 듬뿍 누리면서 살 수 있었던 건 정말로 행운이에요.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당신의 어머니께 배운 방식대로 만든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랐어요. 바로 이란 음식이었죠. 이렇게 어릴 때부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에, 저는 보통 부모님들이 조리하거나 만들어서 내주는 일반적인 미국 음식을 똑같이 먹고 자란 또래들보다 미각이 훨씬 더 폭넓게 발달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굉장히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셰 파니스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여러 가지 재료들, 특히 허브와 채소, 각종 과일에 관해 배웠는데 저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어요. 어머니는 틈날 때마다 농산물 직판장이나 식료품점에 가서 최대한 신선한 재료를 구하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주방에 첫 발을 들이기도 전부터 훌륭한 요리사가 되려면 가장 신선한 재료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저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제가 이란 사람이라서 그리 큰 불이익을 당한 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요리법이나 유럽인들, 유럽 음식을 먹는 것에 관해서는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어요. 유럽 음식은 아예 낯설게 느껴졌어요. 제가 요리를 배우기 위해 들어간 주방이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정통 요리를 만드는 곳이었으니 그만큼 저는 그 요리들을 배우기 위해 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습니다.”
• 요리사라는 직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가령 체력, 재능, 레스토랑의 엄격한 분위기 등등.
“젊은 요리사 시절에 제가 가장 어려웠던 건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우는 일이었어요. 레스토랑은 근무시간이 굉장히 길고 그 시간 내내 서 있거나 재빨리 움직이면서 일을 해야 하므로 육체적인 체력이 정말 중요했어요. 동시에 이겨내야 할 일들이 많은 만큼 정신적인 체력 역시 중요합니다. 일하는 환경이 아주 엄격해요. 모두가 내게 의지한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 팀워크가 필요한 일도 많고요. 저는 그런 상황을 한편으로는 즐기고 한편으로는 압박감도 상당히 느꼈던 것 같아요.”
• 당신은 수련 시절 ‘garde manger’(음식 보초)의 일을 묘사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주방에 서기까지 이런 수련을 받으면서 요리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진 않았나요?
“그런 적이 왜 없었겠어요!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저는 진심으로 요리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다소 우연히 일어난 일에 가깝습니다. 요리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요리를 배우고 싶었지만 막상 주방에 들어가서는 내가 왜 여기에 있나 싶었어요. 무슨 일을 하면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지 알아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도 별로 잃을 것이 없는 젊은 나이였죠.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글쓰기고, 요리는 그냥 그 목적지로 가는 길에 들른 흥미로운 우회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힘들 때면 이런 생각들이 과연 옳았을까 수시로 의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 당신은 세계의 맛 등을 비롯해 한국의 음식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김치볶음밥 등). 한국 음식만의 훌륭함은 무엇입니까? 또는 좀더 많은 세계인의 입맛에 호소하기 위해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선 저는 한국 음식에 개선할 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 음식은 정말 맛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희 집과 가까운 베이 에리어에 제가 20년째 단골로 찾는 한국 두부 음식점이 있다는 것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순두부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에요. 셰 파니스에서 일하기 전에는 한국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그곳에는 한국인 후손인 요리사들이 여럿 일하고 있어서 저는 그 분들께 한국 요리를 배웠어요. 이후 지금까지 한국 음식은 제가 무척 즐기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지역요리 중 하나에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란 음식처럼 쌀을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이 들어가는 음식이 있기 때문인 것 같고, 또 다른 이유는 음식의 균형이 놀랍도록 잘 잡혀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요리를 만드는 주방에서는 소금과 산, 감칠맛에 깊이 신경을 쓰고, 그래서 요리마다 이 세 가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요리마다 정말 흥미로우면서도 뛰어난 맛이 느껴지도록 만들어요. 여러 식감이 만들어내는 느낌도 아주 좋습니다. 특히 순두부 요리는 부드럽고 크리미한 두부를 고슬고슬한 쌀밥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음식이에요. 저는 한국 음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보다는 아직 한국 음식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전 세계 사람들이 큰 손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모든 면에서 잘 하고 있어요. 지난 10년 동안 더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 음식을 접하고 즐기게 된 것도 정말 기쁜 일입니다.”
•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의 음식은 어떤 차이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중일 모두 음식 문화에 발효 음식과 쌀, 콩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3국 음식의 가장 큰 공통점인 것 같고요. 중국 음식은 베이징에 잠깐 머무를 때 먹어본 것, 그리고 미국에서 먹어본 요리가 전부라 그리 전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합니다. 세 나라의 음식에 담긴 사고방식, 즉 채소는 뿌리부터 잎까지 모두 활용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과 효율성이 뛰어나다는 점이 제가 생각하는 한중일 요리의 비슷한 점입니다. 그리고 중국 후난성 요리를 제외하면 한국 음식이 가장 매운 것 같아요. 일본 음식은 셋 중에 가장 미세하고 단순합니다. 제가 딱히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세 나라 음식을 모두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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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요리사 중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국의 요리사들 중에 제가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한국 출신 미국 요리사들 중에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많습니다. 데이비드 장과 로이 최는 미국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접할 수 있도록 했고 그건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망치(Maangchi)도 제가 좋아하는 요리사 중 한 분입니다. 유튜브에서 큰 화제가 된 요리사고 요리책도 내셨어요. 미국의 수많은 가정에서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해준 아주 훌륭한 요리책이에요.”
• 요리의 근본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좀 거창한 이야기이지만, 요리는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이 쓴 저서에는 요리가 우리를 인간으로 정의하고 다른 생물종과 분리되도록 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랭엄은 요리라는 단순한 행위가 매일 함께 모여서 무언가를 먹는 경험을 공유하도록 한 시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인간 문화의 발판이라고 설명했어요. 테이블에 둘러앉는 일, 이것은 모든 인간이 하는 행위이고 따라서 인간 본연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어떤 사람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 요리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 관해 알고 우리 모두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존재임을 알게 하는 길을 제공한다고 믿습니다.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해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테이블에 둘러 앉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합니다. 제가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아주 중요한 포인트도 바로 그것입니다. 모두가 친숙하게 느끼지 않은 나라에 찾아가서 낯설게 다가올 수 있는 문화를 공유하는 것, 그래서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저는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보다 서로 비슷한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이 정치적으로 분열된 시기에는 널리 확산되어야 할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요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에 흥미를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보호해줘야 할 사람들을 보호하고 방어가 필요한 사람들을 방어하고 악에 강력히 맞서는 실행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리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이 제게는 조금 낭만적인 말로 들립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 한국에선 최근 채식주의가 진보적인 라이프스타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채식은 지구환경을 지키는 데 기본적인 실천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당신의 요리는 고기 및 동물지방도 주재료로 많이 사용합니다. 채식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떠한가요? 꼭 비건이 아니더라도 지구 환경을 위해 요리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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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주제입니다. 저는 닭을 사랑합니다. 버터도, 치즈도, 요구르트도 사랑해요. 동시에 저는 동물성 식품을 덜 먹고 축산업이 기후 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는 일에 모두가 참여할 책임이 있다고 의견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채식주의가 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방안이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노력은 동물성 식품의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그리고 가정마다 줄인다는 것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저도 동물성 식품의 소비량을 줄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처음에는 3분의 1을 줄이고, 나중에는 3분의 2를 줄이는 식으로요. 이것이 기후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려는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제가 세운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 동명의 4부작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면, 소금, 지방, 산, 열을 찾아 전 세계를 여러 곳을 여행하였는데, 그럼에도 아직 못 가본 곳 중에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곳은 어떤 음식이나 음식의 요소가 있는 곳일까요?
“당연히 한국입니다! 사실 ‘소금’ 편에서 진심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싶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았어요. 김치 박물관에 꼭 가보고 싶고 발효에 관해서도 배우고 싶습니다. 한국 외에도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 중에 제가 관심이 많고 맛있다고 느껴서 더 배우고 싶은 식재료가 있는 곳들이 많아요.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도 가보고 싶습니다. 전 세계 다양한 음식을 향한 호기심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 요리책인데도 사진이 없어서 센세이셔널했습니다. 당신의 생각이었나요? 그래서 일러스트가 더욱 큰 역할을 하는 책인 것 같습니다. 웬디 맥노튼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작업하는 가운데 호흡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진 것처럼 항상 실제 요리하는 옆에서 바로 그림을 그린 것인가요? 작업하면서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어떤 것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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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사진 대신 일러스트를 넣자는 건 제 아이디어였어요. 웬디 맥노튼과는 늘 함께 일하고 싶었고요. 수년 전부터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편지로 저와 함께 작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봤죠. 웬디는 그러자고 했고요. 제 생각에 그 때 웬디는 뭘 하게 될지 잘 모르고서 답을 한 것 같아요!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됐고 그 덕에 더욱 더 힘을 합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웬디는 동료로서 정말 훌륭한 사람이에요. 웬디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자면, 처음 함께 일을 시작할 때 음식이나 요리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답니다. 그런데 웬디는 실제로 일에서 소재를 얻어서 그리는 작가라, 웬디가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정할 수 있도록 제가 요리를 해야 했죠. 하지만 그 전부터 저는 웬디가 요리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자연스레 웬디는 저의 첫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리를 가르쳐야만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요. 내가 뭔가 복잡한 요리를 만들고 웬디가 그 음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바로 앞에서 다 지켜본 사람이 이해를 못하는데 어떻게 종이 위에 글로 그 요리를 설명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웬디는 미국식으로 묘사하자면, 아주 훌륭한 실험쥐였던 셈이죠.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제가 우리의 첫 요리 강습과 그림 작업을 위해 제가 처음으로 웬디의 집을 찾아간 날, 소금을 찾으려고 주방 수납장을 열었는데 소금도 없고 올리브유도 없고 뭐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수납장이 전부 단백질 바로 꽉 채워져 있었어요. 웬디가 할 수 있는 식사 준비라곤 그걸 꺼내서 봉지를 뜯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니까요.”
• 한국어판에는 분자요리의 대가이자 스타 셰프 최현석이 추천사를 썼습니다. 혹시 최현석 셰프를 아시는지요? 해외에 방영되는 방송에도 많이 출연했고, 해외 팬들이 그의 요리를 먹기 위해 한국을 찾기도 합니다. 그 역시 당신처럼 요리를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배워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추천사를 통해 당신에게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역으로 당신이 최현석 셰프(혹은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권해보고 싶은 요리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와, 최현석 씨가 추천사를 써주셨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분이에요.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해주신다면 더없이 기쁜 일입니다.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감사합니다!”
• 당신의 궁극적인 꿈(목표)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제 막 마흔이 됐습니다. 지난 20여 년을 이 책을 완성해서 세상에 내놓는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미리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쉬면서 제 인생을 정리하고 싶어요. 이 책을 쓸 기회를 얻고, 세계 곳곳에 있는 너무나 다양한 분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분들과 이 책을 공유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또 그 다큐멘터리를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정말로 큰 행운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많은 분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 당장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글을 더 쓰고 싶고,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더 만들고 싶습니다. 계속 여행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전 세계에 더 탄탄한 공동체가 더 많이 형성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형태로 그런 일들을 하게 될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은 그렇습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