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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천천히, 깊게, 느리게, 카메라에 담은 마음

등록 2020-02-07 06:01수정 2020-02-07 10:12

당신 곁에 있습니다
임종진 지음/소동·1만6500원

‘천천히’ 바라보고, ‘깊게’ 공감하면서, ‘느리게’ 셔터를 누르는 것. 사진치유자 임종진이 사진 작업을 하는 “일관된 원칙”이다. “(사진의) 주된 대상인 사람과 삶을 자의적 해석으로 대상화하지 않기 위한 신념”이다. 임종진은 “사진작품의 완결성을 추구하기보다 ‘사진 행위’에 더 많은 관심과 공”을 들인다. “내게 좋은 사진이 아니라 당신에게 옳은 사진”을 위해서다. 그에게 ‘사진 행위’는 곧 ‘치유’다. 사진 치유란, 고통을 겪은 이가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고통의 장소를 외면하지 않고 맞서 사진을 찍음으로써 끔찍한 트라우마를 인지하고 자신을 치유해가는 프로그램이다.

임종진의 에세이 <당신 곁에 있습니다>는 4가지 주제로 짜였다. 1부 ‘순간을 천천히’는 지은이가 “사람이 우선”인 사진을 시작한 계기와 과정을 돌아본다. 2부 ‘고통을 고스란히’는 사진이 주는 치유의 힘을 이야기한다. 3부 ‘나를 가만히’에선 지은이 자신의 일상과 삶을 한 발짝 떨어져 성찰하며, 4부 ‘세상을 스스럼없이’는 편견과 배제를 넘어선 공동체를 사유한다. 작가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가 넓어지고 성찰이 깊어지는 과정으로 읽힌다.

카메라는 지은이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맑은 눈과 따뜻한 공감을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그렇게 만난 캄보디아의 도시 빈민과 지뢰피해자, 한국의 조작간첩사건과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파괴된 피해자, 제주 4·3 유가족과 세월호 유가족, 심신 장애인,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 여성들의 이야기와 사진들은 독자의 눈길을 오래 붙든다. 책을 읽다 보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뭉클함이 목젖을 넘어 눈시울을 자극한다. 덩달아 맑아지는 느낌이랄까.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지뢰 폭발로 팔과 다리를 모두 잃은 캄보디아의 소년과 엄마. “얼굴에 웃음을 담아 사람과 마주한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의례이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다. 사진 임종진
지뢰 폭발로 팔과 다리를 모두 잃은 캄보디아의 소년과 엄마. “얼굴에 웃음을 담아 사람과 마주한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의례이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행위다. 사진 임종진

제주시 조천읍 북촌마을 너븐숭이 4·3 기념관 주변의 애기 돌무덤. “한 무덤의 봉분 위에 놓여 있는 물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노란 오리인형과 아기 양말 한 쪽,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돌로 덮어놓은 아기 옷 한 벌. 슬픔이 뭉클한 가슴데움으로 이어졌다.” 사진 임종진
제주시 조천읍 북촌마을 너븐숭이 4·3 기념관 주변의 애기 돌무덤. “한 무덤의 봉분 위에 놓여 있는 물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노란 오리인형과 아기 양말 한 쪽,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돌로 덮어놓은 아기 옷 한 벌. 슬픔이 뭉클한 가슴데움으로 이어졌다.” 사진 임종진

김순자 사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1979년 6월 어느날, 세 아이의 어미였던 김순자씨는 영문도 모른 채 이곳에 끌려왔다. 박정희 정권 말기 대표적 간첩조작 사건인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이다 (…) 37년 만에 그 계단을 오르면서 그녀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스스로 찾아온 것임에도 떨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김순자 사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1979년 6월 어느날, 세 아이의 어미였던 김순자씨는 영문도 모른 채 이곳에 끌려왔다. 박정희 정권 말기 대표적 간첩조작 사건인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이다 (…) 37년 만에 그 계단을 오르면서 그녀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스스로 찾아온 것임에도 떨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김태룡 사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그는 꼬박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으며, 지난 2016년 9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 그는 계속 기억을 더듬었다. 무자비하게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던 고문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김태룡 사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그는 꼬박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으며, 지난 2016년 9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 그는 계속 기억을 더듬었다. 무자비하게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던 고문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평생 죄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에게 미래를 주지 못했으니까요.” 세월호 엄마들은 말을 하면서 울다가 웃었고, 다시 웃다가 울고 있었다. 사진 임종진
“평생 죄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에게 미래를 주지 못했으니까요.” 세월호 엄마들은 말을 하면서 울다가 웃었고, 다시 웃다가 울고 있었다. 사진 임종진

“아내는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해변에서 아이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넋을 잃고 사진을 찍다가 뭉클해지는가 싶더니…” 사진 임종진
“아내는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해변에서 아이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넋을 잃고 사진을 찍다가 뭉클해지는가 싶더니…” 사진 임종진

“림 선생! 사는 거이 뭐 다 똑같디요. 무엇이 좋아서 그리 찍습니까? 하하하” 몇 번이나 들었던 북측 안내원의 농 섞인 질문이다. 사진 임종진
“림 선생! 사는 거이 뭐 다 똑같디요. 무엇이 좋아서 그리 찍습니까? 하하하” 몇 번이나 들었던 북측 안내원의 농 섞인 질문이다. 사진 임종진

“어므니이, 어데 갔다 와아?” 한국말이 서툰 로나 씨는 양팔을 휘두르며 살랑살랑 엉덩이춤까지 추면서 시어머니를 맞이했다. 사진 임종진
“어므니이, 어데 갔다 와아?” 한국말이 서툰 로나 씨는 양팔을 휘두르며 살랑살랑 엉덩이춤까지 추면서 시어머니를 맞이했다. 사진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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