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말할 때 알아야 할 것들

등록 2020-02-14 05:59수정 2020-02-14 09:47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
천자오루 지음, 강영희 옮김/사계절·1만7000원

“살면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삶은 그저 이해되어야 할 뿐이다.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지은이가 인용한 마리 퀴리의 이 말을 증명하듯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이해의 폭을 넓혀, 막연히 가졌던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걷어내는 데 유용하다. “누구도 장애인의 욕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들릴 리도, 보일 리도, 인식될 리도 없고 그렇다면 존재할 리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들의 욕망은 꼼꼼하게 봉인된 채 외부 세계가 그 해제를 사력을 다해 막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한 지은이는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대해 비켜 가지 않고 직진해 들어간다.

대만 저널리스트 천자오루는 장애인들과 그들의 부모, 돌봄노동자, 사회복지사, 인권단체 활동가 등이 전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여러 쟁점을 펼쳐놓는다. 쟁점마다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목소리들은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로 재단하기 어렵다. 지적 장애인이 성에 대해 이해할 능력이 있을지, 성교육을 하는 것이 외려 부작용을 일으키는 건 아닌지, 당사자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이에 대해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에게서 사랑을 할 권리, 아이를 낳아 기르고 가족을 이루는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함부로 박탈할 수 없기도 하다. ‘장애인’이기에 욕망을 추구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손쉽게 여겼던 건, 지은이의 말마따나 우리의 “빈약하고 창백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자문해보게 되는 순간도 있다. 그러다 그들의 자유로운 결정을 지지하게 될 즈음이면 세상의 인식 변화와 복지 시스템의 확충을 갈망하게 된다. 모두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지적 장애인 부부가 아이를 잘 키워내는 것을 보면, 행복한 가정에 관해서는 유일한 각본이 있는 게 아니며 이는 우리에게 “서로 다른 인생의 풍경을 인식할 기회를 준다”는 지은이의 말은 의미 깊다.

청각·시각을 잃은 남자 ‘영찬’과 척추장애를 지닌 여자 ‘순호’의 사랑 이야기. 영화 &lt;달팽이의 별&gt;(2012)
청각·시각을 잃은 남자 ‘영찬’과 척추장애를 지닌 여자 ‘순호’의 사랑 이야기. 영화 <달팽이의 별>(2012)

장애인에게도 성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는 일에서 벗어나면, 또 다른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더 좁은 문 앞에 선 장애인 성소수자나 남성 장애인들보다 더 차별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는 여성 신체 장애인에 대한 조명은 우리를 차별과 배제에 대한 더 근원적인 물음 앞에 세운다. 들여다볼수록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은 ‘장애’란 단어를 걷어내고 모든 인간은 어떤 삶을 영위해야 하는지 곱씹어보게 한다.

누군가와 만나 사귀는 일이 쉽지 않은 장애인들에게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인 ‘손천사’의 역할이나 장애 남성들의 성욕 해소를 돕는 성매매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를 직면하면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지만, 그럼에도 용기 있게 견고한 장애물을 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들이 우리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떤 것을 두려워하면 할수록 그것에 잡아먹히고 만다, 잡아먹힐 바에야 그것을 부리고, 자신의 무기로 삼는 게 낫다’는 장애인 성소수자 즈젠의 말은 앞선 마리 퀴리의 말에 대한 응답처럼 느껴진다.

지은이는 “인류가 자아를 장악하는 도구이자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이며 “인간이 세계로 진입하는 중요한 통로”인 신체를 가진 모든 사람이 머지않은 미래엔 “모든 사람의 성이 보장받거나 해방될 필요 없이 누구나 다 유일무이한 육체를 통해 사랑과 욕망의 한가운데서 속박이나 족쇄, 죄책감이 아니라 진실한 쾌락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바랐고, 옮긴이 강영희는 “장애의 유무나 성별, 성 정체성 등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 안에 펄펄하게 살아 있는 욕망과 들끓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강경은 기자 free192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뉴진스 “29일 자정 어도어와 전속계약 해지…광고·스케줄은 그대로” 1.

뉴진스 “29일 자정 어도어와 전속계약 해지…광고·스케줄은 그대로”

뉴진스 오늘 저녁 긴급 기자회견…어도어 떠나나? 2.

뉴진스 오늘 저녁 긴급 기자회견…어도어 떠나나?

뉴진스, 긴급 기자회견 열어 “어도어와 전속계약 해지” 3.

뉴진스, 긴급 기자회견 열어 “어도어와 전속계약 해지”

‘정년이’ 큰일 했다…여성국극 연일 매진, 신작 제작도 활발 4.

‘정년이’ 큰일 했다…여성국극 연일 매진, 신작 제작도 활발

‘정우성 득남’ 소식이 쏘아올린 작은 공 5.

‘정우성 득남’ 소식이 쏘아올린 작은 공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