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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일 우파의 ‘역사 백래시’에 맥락적 비판으로 맞서다

등록 2020-02-28 05:01수정 2020-02-28 10:23

역사사회학자 강성현, ‘반일 종족주의’ 7개월 만에 가장 철저한 분석·비판서 출간
“거짓을 발화하는 위치 드러내고, 그 거짓 목소리 상대화하는 방향으로 논쟁 시작”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 ‘반일 종족주의’ 현상 비판

강성현 지음/푸른역사·1만7900원

<반일 종족주의>가 나온 지 7개월 만에 한일 우파연합의 ‘역사 백래시’ 공세에 맞서는 가장 철저하고 종합적인 반박서가 나왔다. 그동안 한두 권의 책이 나오긴 했지만 구태의연하거나 부분적인 비판에 그쳤는데,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는 한일 역사부정 집단이 내세우는 주장과 논리의 맥락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본질적인 철퇴를 가한다.

지은이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사상 통제와 공안, 전쟁과 제노사이드, 냉전과 과거 청산 등을 깊이 연구해온 역사사회학자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책의 방법론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탈진실 사태를 두고 ‘이건 거짓이야’라고 폭로하거나, 탈진실을 조장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당신은 거짓말쟁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탈진실 현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더 휘말려드는 일일 뿐이다. (…) 탈진실시대에 역사부정론자에 대응하는 방법은 거짓을 발화하는 위치를 드러내고, 그 거짓 목소리를 상대화하는 방향으로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일명 ‘버마 로드’에 있는 중국 쑹산의 한 마을에서 중국군 제8군 병사가 포로로 잡은 ‘위안부’들과 찍은 사진. 맨 오른쪽 만삭의 여성 이름은 박영심이다. 사진을 찍을 당시 박영심은 하혈을 하고 있었고, 결국 사산했다. 일본군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특종 보급품’으로 여겨, 연전연패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끌고 다녔다. 웃으며 포즈를 취한 중국군 병사는 이들을 적(일본군)과 함께했던 전리품으로 여겼을 것이다. 푸른역사 제공
일명 ‘버마 로드’에 있는 중국 쑹산의 한 마을에서 중국군 제8군 병사가 포로로 잡은 ‘위안부’들과 찍은 사진. 맨 오른쪽 만삭의 여성 이름은 박영심이다. 사진을 찍을 당시 박영심은 하혈을 하고 있었고, 결국 사산했다. 일본군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특종 보급품’으로 여겨, 연전연패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끌고 다녔다. 웃으며 포즈를 취한 중국군 병사는 이들을 적(일본군)과 함께했던 전리품으로 여겼을 것이다. 푸른역사 제공

‘맥락적 비판’이라고 부를 만한 이 방법론이 잘 드러나는 상징적인 사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영국군의 포로 심문 자료다. 실증주의자를 자처하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에서 “미군 심문기록이 위안부제의 본질과 실태에 관해 다른 어느 기록보다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며 주요 논거로 인용하면서도, 정작 그 심문 기록의 정확한 이름과 작성자 등을 밝히지 않았다. 강 교수는 이영훈이 <일본군 포로 심문보고 제49호>(이하 심문보고 49호)를 봤을 거라고 판단한다. 이 자료는 일본 극우파들이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주장을 할 때 자주 활용하는 자료로, 인터넷에 ‘원자료 복사본’이 떠돌아 다닌다. 강 교수는 해당 문서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작성했는지 맥락을 이해해야 문서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문보고 49호>는 미 육군 인도-버마 전역(戰域)에 배속된 미국 전시정보국(OWI) 심리전팀(일명 레도 팀)의 일본계 2세 정보병사 알렉스 요리치가 미군의 대일 심리전 재료로 쓰려고 1944년 10월1일 작성한 것이다. 알렉스 요리치는 버마 미치나에서 레도수용소로 이송된 조선인 ‘위안부’ 20명과 이들을 관리한 일본인 업자 부부 2명을 심문했다.

중국 윈난성 바오산 텅충성 밖 참호에 널브러진 조선인 여성들의 주검을 중국군 매장조가 바라보고 있다.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학살의 증거다. 푸른역사 제공
중국 윈난성 바오산 텅충성 밖 참호에 널브러진 조선인 여성들의 주검을 중국군 매장조가 바라보고 있다.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학살의 증거다. 푸른역사 제공

이영훈은 “위안부란 일본군에 부속된 직업적 창녀들”이라거나, “1년 뒤 1943년 후반에 부채를 다 변제한 위안부는 귀국할 수 있다는 명령이 내려졌으며, 일부는 조선으로 귀환했다”며 “자유 폐업”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심문보고 49호>를 근거로 한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 교수는 같은 포로들을 심문한 다른 자료를 교차 검증해보면 이영훈 등이 감추려는 진실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뉴델리 소재 영국군 합동군사정보심문센터가 작성한 <동남아번역심문센터 심리전 심문회보 제2호>(이하 심문회보 2호)가 그것이다. <심문회보 2호>는 ‘위안부’가 전차금(선금)과 이자를 모두 갚으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무상 통행권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전시상태 때문에 위안부 중에서 지금까지 떠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더구나 <심문보고 49호>를 그대로 믿는다 해도 “부채를 다 변제한”이라는 조건이 달리면, 그건 자유 폐업이 아니라고 강 교수는 반박한다.

‘위안부’가 “직업적 창녀”라는 이영훈 주장의 근거는 알렉스 요리치가 쓴 ‘프로스티튜트’(prostitute)라는 단어다. 그런데 당시 알렉스 요리치가 들은 일본어 단어는 ‘위안부’라는 뜻의 이안후(ぃぁんふ, 慰安婦)였다. 이를 일본계 병사들이 참고했던 사전에 따라 prostitute라고 번역한 것이다. “다시 말해 prostitute는 현재의 의미에서 ‘창녀’를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위안부’를 지시, 번역하는 특정 개념”이었다. 더구나 “알렉스 요리치는 여성들 중 일부는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에서 일한 적 있으나, 대다수는 무지하고 교육받지 못했으며, 병원에 입원한 부상병을 방문하여 붕대를 감는 등의 일로 알고 왔고, 이런 사기에 속아 몇백 엔의 선불금을 받았지만, 이게 빚이 되어 예속되었다고 썼다.” 사기에 의한 강제동원 사실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필요한 내용만 자의적으로 골라 왜곡하는 일본 극우와 이영훈 식의 궤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영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알렉스 요리치가 “일본인 업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을, “조선의 주선업자”로 바꾸기도 했다.

이영훈은 한 ‘위안부’가 한 번에 1만1000엔을 송금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가치로 3억4400만원이라며, ‘위안부’가 엄청나게 돈벌이가 좋은 일자리였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 역시 일본군 점령지에서 급격하게 치솟은 전시 인플레를 감추는 방식으로 사실을 왜곡한 전형적인 거짓말이다. “1941년 12월을 100으로 기준 삼으면, (해당 송금이 이뤄진) 1944년 12월은 도쿄 물가지수가 130이었고, 싱가포르 물가지수는 극심한 전시 인플레로 1만766이었다. 따라서 1만1000엔은 도쿄에서는 132엔의 가치밖에 안 되었다. (…) 송금하는 것이 허용되었더라도 조선에서 그것을 현금으로 인출하는 데는 큰 제약이 있었다. (…) 결국 전혀 가치가 없는 군표를 모은 꼴이 되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책은 이렇게 꼼꼼한 교차 검증을 통해 이영훈과 일본 극우의 거짓 주장을 하나하나 논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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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는 최근까지 일본에서만 약 40만 부가 팔렸다. 각종 혐한 도서의 대중화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푸른역사 제공

<반일 종족주의>는 “사실은 제가 ‘토착왜구’”(윤창중 박근혜 정부 첫 청와대 대변인)라며 공공장소에서 친일파 선언을 할 수 있게 한 기폭제가 됐다. 이런 현상은 해방 이후 처음이라고 강 교수는 말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 등 정권 차원에서 수행한 ‘역사 전쟁’의 결과,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친일파들이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 중 하나인 이우연이 일본 극우파의 돈을 받아 일제를 미화하는 강연을 하고 다녀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다. 한일 우파연합은 ‘일본 극우파’ 사세 마사모리의 가르침-“아무도 100퍼센트 증명할 수 없으니 모든 사실은 논증 문제가 아니라 설득력 문제다. 궤변일지라도 열심히, 목소리 높여, 나아가 확신적인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대로, 상대주의와 반지성주의로 무장한 채 역사의 진실을 향해 더러운 칼을 휘두르고 있다.

거짓에 맞서는 길은 오직 하나, 지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지은이가 프롤로그 첫 문장으로 제시한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의 첫 장면,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그 이유를 대신 설명해 준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일까요?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로 위험한 건 거짓을 계속 듣다보면 진실을 보는 눈을 완전히 잃는다는 것입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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