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는 지금
미국의 아시아담당 관리나 전문가들 얘기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데다 종잡기도 어렵다. 한가지 확실해 보이는 건 미국 국가이기주의, 자국중심주의 쯤으로 번역해야 할 강력한 ‘내셔널리즘’이다. 미국은 한·중·일 등 동아시아 각국의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을 탓하고 그 때문에 미국 국가이익이 침해받을지 모른다고 엄살을 떨지만, 실은 자신들의 내셔널리즘이야말로 한·중·일을 오히려 능가하며 그것을 선택적으로 부추김으로써 자국 내셔널리즘 욕구 충족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미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자리를 지난달 20일 그만둔 마이클 그린의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연말(12월28일) 인터뷰. “중국은 역사문제에서 일본을 악역으로 세우고 고립시키는 카드로 활용하고 있는데, 일본은 대항 전략이 충분치 않다. 일본의 전략이 명확하지 않은 채로는 중국에 대한 압력이 먹혀들지 않아…곤란해진다. 대처방법의 하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그만두는 것이겠지만, 그건 총리 자신이 결정할 일이다.”
지금 워싱턴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일본문제 책임자인 그린은 그에 앞서 12월25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미일 안보조약상의 ‘극동조항’에 구애받지 말고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해 ‘글로벌 플레이어’가 돼라고 촉구했다.
일본에게 고개 좀 숙이라는건지 오히려 더 세게 나가라고 부추기는 건지 헷갈리지만, 그린의 속내는 이런 게 아닐까? “다른 건 다 좋은데, 야스쿠니 참배 같은 (우리가 보기에는) 시시한 일로 중국이나 한국에게 책잡혀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을 난처하게 만들지 마라. 그런 하찮은 고집 때문에 중국 견제나 북한 제압, 미일동맹 및 주일미군·자위대 확대강화와 한·미·일 공조 등이 모두 삐걱거리고 있고 그에 대항하려는 중국에게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그러니 제발 좀 그만해라, 멍청이들아!”
미국은 지난해 4월 과거사 문제로 중국에서 대규모 반일시위가 벌어졌을 때부터 사태가 심상찮다는 사실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한국이 떠들 때는 눈도 꿈쩍 않더니!) 10월20일 헨리 하이드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에 “저항감을 느낀다”고 질타한 것도, 보수우파 정객인 그가 보기에 미국이 재단한 A급 전범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야스쿠니 참배가 미국의 전후 대일정책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괘씸한 일이기도 하려니와, 이대로 가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치겠다는 초조감의 발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일본 민족주의와 재무장을 부추겨온 것은 다름아닌 미국이었다. 그런 미국이, 그 방향으로 계속 가되 야스쿠니 참배처럼 미국에게 불리하고 콘트롤하기 어려운 것만은 살짝 빼고 하라고 주문하는 건 아무리 뻔뻔하기로서니 좀 지나친 것 아닌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