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민 지음/한겨레출판·1만3500원 출판사는 이 책을 에세이로 분류했다. 막상 읽어보니 에세이 같기도 하고, 서평 모음 같기도 하고, 일기장 같기도 하고, 철학책 같기도 하다. 어쨌든 재미있다. 책 갈피를 넘길 때마다 저자 특유의 유머가 가을 뚝방길 메뚜기처럼 튀어나온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사직서를 낸 저자는 백수로 한달을 지내고 ‘퇴사를 해도 깨달음 따위는 오지는 않는다. 고지서만 온다’고 말한다. ‘퇴사 1년, 흰머리가 쑥대밭이다’가 1부 책 제목이다. 20, 30대를 <한겨레> 기자 등으로 일했던 저자는 ‘40대 싱글 백수 여성’이다. 가족과 패키지 여행을 갔을 때 점심 식사 자리에 합석한 중년 여성이 ‘아이들은 다 컸을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저자가 ‘난자가 수정된 적도 없다’고 하니 아주머니가 당황해 물을 들이켰다는 이야기를 그냥 풀어놓는다.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고 싱글에 아이도 없지만 아줌마 또는 어머니로 불리는 나는 누구인가’란 무거운 고민을 저자는 팝업창처럼 툭툭 보여주고 풀어나간다. 이 책은 ‘타인에게 상처받고 괜찮은 척, 나에게 상처주고 아닌 척했던 지난날’과 ‘세상에 휘둘려 말하지 못한 나의 긴 이야기’를 담았다. 실실 웃으며 읽다가 시나브로 ‘그렇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다 책을 덮을 때는 ‘그럼 나는 누구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 운동 입문자들이 많이 듣는 말이 ‘몸에 힘을 빼라’다. 글도 마찬가지다. 어깨에 힘만 잔뜩 주고 시국을 논하는 맥없는 글들이 흘러넘치는 요즘, 물렁물렁하면서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묵직한 사색이 담긴 이 책을 읽으며 글의 힘을 새삼 느낀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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