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과학사·1만8000원 세계 좌파 학계의 뜨거운 주제인 ‘커먼즈’는 아직 제대로 된 우리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공유나 공통, 공동 등의 수식어와 물건이나 장소, 체제를 뜻하는 -재, -지, -체 등을 조합해 사용하고 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유(私有)의 반대 개념인 공유(共有)라는 말이 있지만, “자본주의적 시장 행위의 신개념인 ‘공유(sharing) 경제’라는 기만적인 역어로 인해 크게 오염이 이뤄진 터다.” 3기 편집인 체제를 맞아 처음 나온 <문화과학> 101호는 ‘커먼즈’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적절한 대체어를 찾을 때까지 ‘커먼즈’와 ‘공유지’를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유지’ 개념은 원래 토지 등 물질자원을 지칭하지만, 이를 ‘바탕’ 혹은 ‘근본’이라는 보편적인 뜻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화과학> 3기 편집인들은 서문에 해당하는 ‘<문화과학>의 또 다른 세기를 위하여’에서 “동시대 자본주의 대항의 새로운 문화사회적 전망을 새롭게 세우는 그 첫 시작으로, 주요 이론적 실천의 핵심 키워드로서 ‘커먼즈(공유지)’를 제시하고 앞으로 계속 자양분으로 삼을 요량”이라며 “커먼즈는 자본주의 반종획의 보루이자 생성주의적 문화정치를 위한, 궁극적으로는 미래 문화사회의 설계를 위한 실천적 근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유지’라고 하면 일반 독자들은 ‘공유지의 비극’부터 떠올리기 쉽다. <맨큐의 경제학>을 비롯한 주류 경제학서들이 ‘주인 없는 목초지의 황폐화’를 마치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범철 <문화과학> 편집위원은 책의 가장 앞에 실린 글 ‘커먼즈의 이론적 지형’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 주장이 목동들을 원자화한 개인으로 전제하고, 그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가정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인 없는 땅의 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제성’은 없지만, 누군가의 소비가 자원의 총량을 차감하여 다른 누군가의 소비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경합성’이 있듯이, 우리 앞의 모든 재화는 “우리가 그 재화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서로 어떤 가치를 창출하느냐에 따라 사유재도 클럽(멤버십)재도 공공재도 공통재화도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음악 파일은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복제할 수 있으므로 배제성과 경합성이 없지만, “그것이 상품(사유재)이 될 수 있는 것은 지적 재산권으로 대표되는 인위적인 법적 장치 때문이다. (…) 그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고립된 사물은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특정한 관계 속에 있고 그 속에서 성격을 부여받는다.” 지난 2012년 세상을 떠난 엘리너 오스트롬은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수많은 경험 연구를 통해 ‘공유지의 비극’을 반박했고, 그 업적을 인정받아 여성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자원 관리 모델로서 국가냐 시장이냐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사람들이 공동으로 자원을 관리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하지만 오스트롬은 커먼즈를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사고했으며, 자본주의 대안으로서의 커먼즈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권 위원은 지적한다. 그는 중세 장원의 ‘숲 커먼즈’의 경우 지주들을 상대로 한 농민들의 오랜 투쟁을 통해 ‘생산’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P2P(개인과 개인의 직접 파일 교환) 방식으로 전개되는 ‘디지털 커먼즈’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자본이 전유하는 과정, 프롤레타리아트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무용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자본의 ‘2차 인클로저 기획’을 비판한다. <문화과학> 공동편집인을 맡은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커먼즈, 다른 삶의 직조를 위하여: ‘피지털’로부터 읽기’에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특히 플랫폼 기술에 의해 생성된 물질계와 비물질계를 잇는 경계지대’로서의 ‘피지털(phygital)’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사유화 과정인 자본주의 종획에 대항해 그 시스템 안팎에서 구축할 수 있는 대안사회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현재까지 피지털계는 주로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우버 등 닷컴 기업들이 주도하는 추세이지만, “정보와 지식의 공유는 마치 물, 공기, 불과 같아서 (…) 사회적 개방성에 최적화 되어” 있기 때문에 “커먼즈는 (…) 자본주의의 새로운 포식에 대항해 호혜적인 방식으로 유무형 자원을 조직하고 그로부터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는 일종의 크고 작은 ‘어소시에이션들’의 범지구적 결절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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