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영 지음/한겨레출판·1만3500원 ‘찌질함’이란 모순을 마주하는 일은 늘 힘겹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버거워 달아나고 싶을 때, 매일 다짐을 거듭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번복할 때, 치열해야 할 순간엔 나태하고 관대해야 할 순간엔 냉혹할 때, 그런 ‘나’로 살아가는 주제에 나와 비슷한 이들을 혐오할 때. 새삼 나의 ‘찌질함’을 마주하자면 벌거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 버티어 선 것처럼 부끄럽고 우울해진다. 왜 나란 인간의 그릇은 세숫대야나, 하물며 밥공기만큼도 되지 못하고 간장 종지 정도를 면치 못하는가!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엔 작가 박상영이 이러한 ‘찌질함’을 자책하며 수많은 밤을 지새운 이야기가 담겼다. ‘개집 살이’ 같은 직장생활, 출판에 대한 압박 등 그를 둘러싼 현실은 좀처럼 그가 ‘찌질함’을 벗어버리지 못하게 만든다. 이때 그가 택한 퇴로는 ‘공허함을 공복으로’ 도치시키기.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건 막연하고 난해하지만 비어 있는 위장을 채우는 일은 너무나도 쉽고 간편하다. 게다가 먹으면 배가 바로 튀어나오니, 이렇게 투자에 정비례한 성과(?)가 산출되는 행위가 우리 인생에 얼마나 있겠는가. 정말이지 ‘고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는 준엄한 유머에 위로받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수차례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다짐하고 번복한다. 매일 밤 허기와 씨름하다 결국 배달 앱을 켜고 홀린 듯 음식을 주문하는데, 이상하게도 따뜻한 우유나 견과류, 삶은 달걀 등에선 인생의 고독하고 아름다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울과 압박감이 잠겨 들 수 있을 정도의 극적인 풍미를 지닌 음식만을 찾게 된다. 그러면서 몸무게의 자릿수가 바뀌고, 몸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하지만, 밤이 되면 다시 허기에 굴복하고, ‘이럴 거면 왜…’ 하며 스스로 한심히 여기는 일상의 반복. ‘업’처럼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보이지만, 그는 결국 분투 끝에 ‘성장’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게 됐다거나, 살찐 몸에 초연해진 건 아니다. 하지만 변화엔 점차 무뎌지게 됐다. 폭식과 다이어트의 반복 끝에 빼고 찌운 살의 합이 백 킬로그램을 넘어가기까지 그 모든 변화가 어찌 보면 삶의 궤적과 흡사하다는 걸 새삼 깨달아서였을까. 지망생 땐 등단만 하면 압박감이 사라질 줄 알았고, 등단 이후엔 부업 없이 글만 쓸 수 있다면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전업 작가가 되고 많은 사랑을 받고 나니 허무함이 찾아왔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성공 뒤엔 역설적으로 ‘목적지’가 부재했고, 그제야 그는 ‘숨 가쁘게 달려나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왜 우리는 항상 어디엔가 ‘당도’해야 한다고 믿는 걸까. 그곳에 꼭 나아가지 않아도 지금 스스로 감각하는 순간들이, 번번이 실패하며 단단해지는 과정들이 내 나름의 궤적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 고백한다. 제목만 보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듯해 책을 골랐다. 지난 1년 사이 10킬로그램 넘게 살이 쪘다. 마라 중독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지인에게 성토했더니, “왜 중독됐겠어. 그거 말곤 재미가 없는 거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책을 읽으며 퇴근 후 습관적으로 마라탕을 욱여넣고 묘하게 불쾌한 배부름을 느꼈던 스스로가 생각나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나를 포함해 오늘 밤도 공허인지 공복인지 모를 허기와 투닥대고 있는 이들에게 책을 권한다. 오늘 밤 굶고 자는 데 실패할지라도 당신은 온전히 오늘 하루를 버티어 살아냈다고, 그러므로 (음식으로든 이 책으로든) 위로받아 마땅하다고.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그림 한겨레출판 제공

ⓒ 윤수훈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