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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문화 널리 알리는 ‘외국인 전용 책방’ 꾸려온 까닭은”

등록 2020-03-30 20:36수정 2020-03-31 10:20

【짬】 창립 18돌 서울셀렉션 김형근 대표

김형근 서울셀렉션 대표.                                  강성만 선임기자
김형근 서울셀렉션 대표. 강성만 선임기자

경복궁 옆 대한출판문화협회 건물 지하에 외국인 대상 책방 ‘서울셀렉션’이 있다. 이달로 개업 18년인 이 서점 서가에는 한국과 한국문화를 다룬 영어책 1500종이 진열되어 있다. 개업 이듬해인 2003년부터는 출판도 하고 있다. 그간 한국을 알리는 영문과 한국어 책을 각각 130권과 50권 가까이 냈다. 봉준호와 임권택, 박찬욱 등 한국 영화감독을 소개하는 24권 시리즈도 냈고 10년 전에는 국내 최초로 한국전쟁 컬러 사진집을 출간했다. 올해도 영국 출신으로 귀화한 한국문학 번역자 안선재 선생이 병인양요(1866) 관련 프랑스 문헌을 영어로 번역한 자료집과 미국인인 토마스 듀버네이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가 쓴 신미양요(1871) 학술서를 영문 출간할 계획이다. 지난 25일 서점에서 김형근 서울셀렉션 대표를 만났다.

김형근 대표가 2011년 펴낸 제주해녀 사진집.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는데 사진집의 역할이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어요.”(김 대표)
김형근 대표가 2011년 펴낸 제주해녀 사진집.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는데 사진집의 역할이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어요.”(김 대표)
이 회사 직원은 모두 16명이다. 서점과 출판 외에 유료 번역 서비스와 외주 간행물도 만든다. 지금은 국제교류재단 소식지와 한국문화원연합회 회보를 만들고 있다. 2003년부터 15년 동안 외국인 대상 영문 월간지 <서울>을 내기도 했다. “경영 사정은 늘 벼랑 끝이죠. 개점 초기와 견줘 책방의 책은 다섯배 늘었지만 손님은 세배 줄었어요. (코로나19 사태 직전) 하루 평균 10~20명 정도 책방을 들르고 그중 절반이 책을 샀죠. 번역과 미국 대학 등에 책을 파는 수입으로 버티고 있어요.”

주한 외국인은 작년 말 기준 약 200만명이다. 서점을 열었을 때보다 3배 늘었다. 그런데 왜 책방 고객은 줄었을까? “문화 욕구 충족 수단으로서 책의 지위가 현저히 떨어진 거죠. ‘유튜브’ 같은 시각 매체 영향이 커요. 찜질방이나 먹방, 패션 등 한국인의 생활과 문화에 대한 엄청난 영상 콘텐츠가 쏟아지잖아요. 한국을 알리는 수많은 티브이 채널이 새로 생긴 거나 마찬가지죠.”

김형근 대표가 펴낸 한국전쟁 컬러 사진집.
김형근 대표가 펴낸 한국전쟁 컬러 사진집.
서점의 퇴조엔 이런 영향도 있단다. “주한 외국인들이 장기 체류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외국인의 한국인화가 이뤄지고 있어요. 한국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책 읽을 시간이 줄어든다는 거죠. 한국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많이 의존하잖아요. 한국에서 인간관계에 실패하면 다른 모든 것에서 실패한다는 것을 외국인들이 알아차린 거죠.”

개업 초기에는 한국의 특수한 지역성을 보여주는 책이 잘 나갔지만 지금은 한국을 보편적 시선에서 다룬 책들이 많이 팔린단다. “한국이나 한국문화에 대한 얕은 관심의 책은 요즘 잘 안 팔려요. 한국이 많이 알려져서죠. 처음에는 한국영화나, 도자기·문양처럼 한국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책들이 잘 나갔어요. 그러다 한동안 한국과 다른 나라를 비교하는 책들이 인기였죠. 지금은 방탄소년단 같은 케이팝 책과 한강의 소설, 한국어 학습을 위한 어학책이 잘 나갑니다. 한국학 학술서는 예나 지금이나 수요가 일정해요.”

1995년 통신사 기자 시절 미국 연수
‘94년 북핵위기로 한반도 전쟁날 뻔’
뒤늦게 사실 알고 ‘전쟁 방지책’ 고심
“살기 좋은 ‘한국’ 알려 평화 지키도록”
2002년 서점 열고 영문판 출판사업도

‘한국 연구를 위한 도서관’ 자리매김

김 대표는 서점을 열기 전에 14년 동안 통신사 <연합뉴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 전에는 고교 영어교사와 영문잡지사 기자 생활을 했다. 언론계를 떠나 문화 사업에 나선 계기를 묻자 그는 사회부 기자 7년 만에 기회를 잡은 미국 연수 이야기를 들려줬다. “95년 한 해 워싱턴디시 아메리칸 대학에서 공부했어요. 그때 만난 ‘코리아 소사이어티’(한미 협력 비영리단체) 사무국장 데이비드 김(소설가 고 김은국 아들)이 저한테 ‘지난해 한국에 핵전쟁이 일어날 뻔해 서울 프레스센터 옥상에 <시엔엔> 위성방송 장비가 설치됐는데 이 사실을 아느냐’고 묻더군요. 그때 충격을 받았죠. 어려서부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게 씨앗이었죠.”

서울셀렉션 책방.            강성만 선임기자
서울셀렉션 책방. 강성만 선임기자

평화와 문화 사업은 어떻게 연결될까?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게 알려지면 외국인 투자가 늘어 전쟁도 힘들어진다고 생각했죠.” 18년 뒤 한국은 널리 알려졌냐고 하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책방을 시작할 때는 서울에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규모 공연장이 있다는 사실조차 외국인들이 잘 몰랐어요. 그때만 해도 서울에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큰 공연장이 10개나 있었죠. 제가 서점에서 소식지를 만들어 서울의 전시나 공연 이벤트를 열심히 알린 이유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자사 출판물은 서울 여행 가이드북 <서울>(2009)이란다. “2010년부터 4년 동안 <서울>이 아마존 판매순위에서 론리 플래닛 서울 편을 제쳤어요. 출판계의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해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사에 보내기도 했어요.” 그가 직접 저자를 섭외해 펴낸 종군위안부 주제 한국어 소설 <그래도 나는 피었습니다>(문영숙 지음, 2016)도 자랑스럽게 떠올리는 책이다. 이 책 영역본도 지난해 직접 냈다. “미국 출장 때 만난 교민들께서 일본계 미국인 작가가 쓴 <요코 이야기>에 대항할 종군위안부 책이 나오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요코 이야기>는 일제 패망 뒤 식민지 조선에서 힘겹게 일본 귀환을 시도하던 한 일본인 소녀의 시선으로 쓰인 소설이다. <그래도…> 한국어판은 1만권 가까이 나갔단다.

그는 자신의 서점이 ‘한국 연구를 위한 도서관’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나오는 한국 관련 영문 책은 모두 갖추려고 노력하는 이유이다.

서울셀렉션 영문 출판물의 판매고를 묻자 “거의 안 팔린다”는 답이 돌아왔다. “책 재고가 많이 쌓여 여러 공공 도서관에 기증했죠. 지금도 창고 비용만 매달 200만원씩 나갑니다.”

계획을 묻자 김 대표는 “어렵지만 그래도 출판에 더 힘을 쏟을 생각”이라고 답했다. “한국을 보편적 시선에서 다루면서, 그동안 한국에 없었던 콘텐츠를 발굴해야죠. 한국어책도 더 내려고요.” 이어 그가 특히 강조하고 싶은 말을 했다. “한국인 디엔에이에는 나라를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요. 일본 강점기에 나라 잃고 서러웠던 부모 세대의 기억이 이어진 거죠. 개점 초기에 생면 부지의 한국문학 번역 작가가 제 서점이 자랑스럽다며 적금 탄 돈 3천만원을 출자금으로 내놓았어요. 그런 분이 둘 더 계십니다.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의 지지와 성원도 큰 힘이었죠. 남아공 출신 원어민 교사들은 몇 년간 우리 서점에서 월례 모임을 했어요. 그들 때문에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죠. 그분들의 열정을 앞으로도 이어가야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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