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코로나19 시대, 집에 콕 박힌 사람들이 책을 더 사볼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상당수 출판사의 매출이 감소했다니까요. 정부는 우수도서를 선정·보급하는 ‘세종도서’ 사업을 서둘러 출판계 지원에 나섰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이 사업은 매년 약 950종 안팎의 책을 선정합니다. 한 출판사에 최대 4종까지 종당 800만원 이내의 책을 사서 공공도서관, 학교, 사회복지시설 등에 배포하니, 출판사엔 큰 도움이 됩니다. 상·하반기로 나누던 사업을 이번에는 상반기 100% 진행한다고 합니다. 특히 작은 출판사들을 배려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꾸었다니 지켜보는 마음도 좋군요.
정부가 주도하던 세종도서 사업은 작년부터 민관협치 기구를 만들어 자율성을 확보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지금 제도는 박근혜 정권 당시 세종도서 지원 심사 때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세월호 관련 작품을 사상 검증하는 등 ‘출판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후속대책으로 마련된 것입니다. 선정의 투명성은 확실히 높아졌습니다.
환부를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용기 있는 제보자 덕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사상검열의 현장을 목격했고 망설임 끝에 이를 언론사에 알렸습니다. 흔들림 없고 열렬한 그의 증언이 바탕을 이뤄 결국 팩트를 최종 확인한 보도가 나간 뒤 제보자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훗날 그는 출판 편집자가 되어 편집과 예술을 다루는 아름다운 책들을 여러권 만들었습니다.
최근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갔어도 그가 바로잡은 제도는 남아 출판인들을 돕는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만든 책도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될 테죠. 그가 바꾼 제도가 잘 운용되는지 살피고 세상에 선물로 남긴 책들을 읽으면서 저도 이 시대를 무사히 견뎌 보겠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