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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풀만 먹는 호랑이 처음 봐?

등록 2020-04-17 06:00

사냥이 괴로운 호랑이 바라…열매 한입 베어 물고 ‘딴 세상’
지은이 “다른 걸 먹는 새로운 결심이 불러온 변화에 초점”
채식하는 호랑이 바라

김국희 글, 이윤백 그림/낮은산·1만3000원

“깊은 숲에 홀로 사는 한 호랑이가 있었어요. 이름은 ‘바라’. 바라는 사냥을 싫어하는 호랑이예요….”

책장을 한장 넘기다 잠깐 멈춤, 사냥을 싫어하는 호랑이라니. 바라는 사냥을 하려고 몰래 숨으면 심장이 쿵쿵 뛴다고 한다.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 도망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볼 때면 슬픈 감정까지 느낀단다. ‘남과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에 살다 보니 괜스레 책 속 호랑이까지 걱정된다. ‘아이고, 네 삶도 순탄치 않겠구나.’

<채식하는 호랑이 바라>는 작가가 아이에게 들려준 “호랑이는 풀만 먹었대, 사냥이 너무 힘들었거든”이라는 두 문장에서 시작된 책이다. ‘풀을 먹는 호랑이’라는 소재에 갇히지 않고 ‘사냥이 괴로운 호랑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냥이 괴로워도 삶은 계속된다. 배를 곯고 살 수 없어 열매를 한입 베어 문다. 그리고 바라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열매와 풀은 도망가지 않네요. 뛰지 않아도 되고 숨지 않아도 돼요.”

낮은산 제공
낮은산 제공

그런데 ‘다른 방식의 삶’은 주변의 경계와 거부감을 부르곤 한다. 바라의 뾰족한 송곳니, 날카로운 발톱은 채식을 해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바라의 진심을 모르는 다른 동물들에게 호랑이는 여전히 ‘공포’의 존재다. 같은 호랑이들에게는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바라는 채식에서 멈추지 않고 새싹을 정성으로 돌보고 땅을 공들여 가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자연의 섭리를, 주위의 시선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용기를 내는 순간, 바라는 바라는 대로 살게 된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바라가 채식을 하게 됐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다른 걸 먹는 새로운 결심이 불러온 변화에 더 큰 의미를 뒀다”고 말한다. 책은 바라가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데서 끝나는데, 바라의 ‘차이’를 이해하고 보듬는 ‘친구’들이 나오는 후속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채식하는 호랑이’는 이야기 속 존재일지 몰라도 ‘채식하는 사자’는 실제로 존재했다. 1940~1950년대 초, 미국 워싱턴주 한 목장에서 살았던 사자 ‘리틀타이크’는 고기를 거부하고 우유·곡물·계란만 먹으며 살아 화제가 된 바 있다. 리틀타이크는 농장의 고양이·양·소·당나귀 등과 친구로 지내며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6살 아이에게 호랑이 바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이상한 호랑이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책장을 덮으며 아이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상한 건 그저 조금 다른 것이라고. 세상에 수많은 ‘바라’와 ‘리틀타이크’가 있고, 우리는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4살 이상.

이승준 <한겨레21>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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