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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벽이 가르는 세상의 이쪽과 저쪽

등록 2020-04-17 06:00

더 월

존 란체스터 지음, 서현정 옮김/서울문화사·1만3000원

영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이 소설의 제목은 물론 ‘벽’을 뜻한다. 그러니까 소설은 벽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벽인가. 콘크리트 재질에 길이는 대략 1만 킬로미터고 높이는 5미터 정도이며 폭은 3미터. 규모로만 보면 중국의 만리장성을 능가한다. 이런 벽이 섬나라 영국의 해안선을 따라 세워졌다. 벽에는 멀게는 200미터마다 하나씩 있는 초소에서 경계병이 근무를 서며 외부인의 침입에 대비한다.

<더 월>은 ‘대격변’ 이후 세상을 다룬 일종의 에스에프(SF) 소설이다. 해수면 상승과 기후 변화로 인해 생존 여건은 극도로 열악해졌고, 그나마 살 만한 섬나라는 이런 대규모 장벽을 설치해 밀려드는 난민을 막는다. 제한된 식량과 자원을 지키기 위해서다. 소설은 주인공인 신입 경계병 카바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벽’이 가르는 이쪽과 저쪽의 삶을 묘사하며 벽의 본질과 한계를 묻는다.

‘벽의 규칙’이 카바나와 동료들의 삶을 규정한다. “한 명이 오면 한 명이 추방된다”는 것. 벽 안쪽으로 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에 대해 가장 책임이 큰 한 사람을 벽 바깥으로 추방한다는 원칙이다. 남녀 모두 2년 간의 경계병 근무가 의무인 이 세계에서는 그러니까 누구나 벽 바깥으로 추방될 위험성을 안고 있는 셈이다.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카바나와 경계병 동료들의 일상을 그리고, 2부에서는 치열한 전투 끝에 외부 세력 일부가 벽 안쪽으로 침투하는 과정을 다루며, 3부는 그 결과 추방된 카바나와 동료들의 벽 바깥의 삶에 할애된다.

“우리가 무료하고 피곤하고 불편하고 불안하다면, 그들은 화나고 두렵고 고달프고 절박하다. 세상에, 바다에서 바라보면 벽은 틀림없이 끔찍한 것, 즉 흉터 같은 사악한 선처럼 보일 거다. 너무도 공허하고, 너무도 무자비하고, 너무도 잔인하게.”

벽 안쪽에서 벽 바깥을 향해 경계와 감시의 시선을 보내던 카바나가 처음으로 밤바다 멀리에서 반짝이는 ‘그들’의 불빛을 목격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벽을 생각하는 장면이다.

소설 <더 월>의 작가 존 란체스터. 서울문화사 제공
소설 <더 월>의 작가 존 란체스터. 서울문화사 제공

이 세계에서 벽 바깥의 존재들은 ‘상대’로 불리는데, 그것을 달리 말하자면 ‘타자’가 될 것이다. 그 자신 ‘상대’가 된 카바나와 동료들은 벽 바깥에서 “부유하는 공동체”와 시추탑 위 “은둔자”를 만나 그들의 환대를 받는가 하면 해적선의 공격에 노출되기도 한다. 소설은 해피엔드도 아니고 비극적 결말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마무리되며 여운을 남긴다. 영국의 언론인 겸 소설가 존 란체스터의 작품으로 지난해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미국 멕시코 국경을 따라 세워진 장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는 멕시코 사람들. 소설 <더 월>은 ‘대격변’ 이후 난민을 막고자 세워진 장벽을 소재로 삼았다. 티후아나(멕시코)/EPA 연합뉴스
미국 멕시코 국경을 따라 세워진 장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는 멕시코 사람들. 소설 <더 월>은 ‘대격변’ 이후 난민을 막고자 세워진 장벽을 소재로 삼았다. 티후아나(멕시코)/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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