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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운동에 미친 여자들을 막을 순 없다

등록 2020-04-24 06:00수정 2020-04-24 10:34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
이은경 지음/클·1만5000원

운동 덕분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여성의 ‘성공 서사’는 시중에 적잖이 나왔다. 새 책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는 출발부터 다르다. ‘왜 나의 운동은 매번 망하는가.’ <일간스포츠> 기자 경력 14년을 포함해 20년 동안 스포츠 관련 일을 해온 지은이는 운동을 싫어하고 못 했다는 ‘실패 서사’로 책의 포문을 연다.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지은이는 ‘개인의 실패’에만 함몰되지 않고 시야를 확장한다. 2부로 나뉜 책 앞부분에서는 ‘왜 한국 여성들은 운동에 실패하는가’를 분석한다. 개인과 사회를 번갈아 훑는 지은이의 시선은 날카롭다. “보통의 한국 여자들은 어린 시절에는 체육 활동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고 즐기다가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부터 운동을 기피하기 시작”하고 “20대 후반에서 30대에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돌봄 노동 부담’이 운동 기회를 차단”하며 “젊은 시절 ‘살 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운동했던 여자들이 노년이 된 후에는 또 한 번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안고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책에서 인용한 보건복지부 노인 실태조사(2011)를 보면, 건강관리와 운동에 대한 교육을 여자(25.4%)들이 남자(10.5%)들의 두배 이상 많이 받는다. “친정어머니나 시아버지 병수발을 들면서 아이들과 남편을 잘 챙기려면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운동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은 셈이다. 돌봄은 한국 여성의 운동을 방해도 하지만 추동도 한다.

여성 사회인 야구팀 히로인즈 단체 사진. 히로인즈 제공
여성 사회인 야구팀 히로인즈 단체 사진. 히로인즈 제공

2부에서는 ‘운동하는 여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김연아·이상화 선수 같은 엘리트 체육인이 아닌 ‘그저 좋아서’ 운동하는 평범한 여성들을 주로 인터뷰했다. 축구 잘하는 여자 선배한테 반해 축구 동아리에 들었다는 10대, 잡지사에서 일하며 취미로 운동하다 ‘어쩌다’ 국가대표까지 됐다는 20대, ‘보다 보니 하고 싶어져서’ 사회인 야구 동호회 ‘히로인즈’에서 활동하는 40대, 손주가 아프지 않은 한 본인은 아무리 아파도 수영을 거르지 않는다는 70대 여성 등 다양한 종목에 ‘미친’ 다양한 연령대 여성들의 얘기를 들었다. 남학생들이 운동장을 내어주지 않고, 관중석 아저씨들로부터 불쾌한 훈수를 듣기도 하지만 운동에 미친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운동 이야기의 종착지는 결국 몸이다. “만일 내가 그동안 운동을 힘들다고만 생각하고 미워하고만 있었다면, 어쩌면 그건 운동을 통해 내가 달성하고자 했던 게 정작 내 몸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어떤 욕망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 내 몸을 내가 스스로 통제하고 잘 다뤄나가는 것, 그런 즐거움을 여자들이 모두 누려보았으면 한다. 어떤 심리적 장벽이나 죄책감 없이 말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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