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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김대중 자신도 ‘브란트와 생각 공유해 신기하다’고 말했죠”

등록 2020-04-27 18:54수정 2020-04-28 02:46

[짬] 전남대 사학과 최영태 명예교수

최영태 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 최영태 교수 제공
최영태 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 최영태 교수 제공

<빌리 브란트와 김대중-아웃사이더에서 휴머니스트로>(성균관대 출판부). 최영태 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2월 정년 퇴임하면서 내놓은 책이다. 그는 600쪽이 넘는 이 저술에서 분단국 옛 서독과 한국에서 민족 화해정책을 펼쳐 노벨평화상을 받은 브란트(1913~1992) 전 서독 총리와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을 상세히 그렸다. 책은 두 정치 거목의 생애를 나눠 살피면서 특히 김대중 대북정책에 끼친 브란트 동방정책의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 브란트는 69년부터 5년간 서독 총리로 있을 때 동독 및 동구권 국가들과의 교류·화해 정책을 과감히 펼쳤다. 이런 노력은 콜 등 후임 총리에게도 이어져 90년 통독의 초석이 되었다는 평가다.

최 교수는 지난 24일 전화 통화에서 “동방정책이 김대중 햇볕정책에 미친 영향을 살핀 첫 책”이라고 자신의 최근작을 소개했다. 독일 사회민주당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 교수는 2년 전에는 동방정책부터 통독 이후 내적 통합까지 통독 과정을 3단계로 나눠 살핀 <독일통일의 3단계 전개과정>이란 책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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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브란트와 김대중> 표지

“김 전 대통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이렇게 브란트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그와 생각을 공유하는 게 신기하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브란트 동방정책은 햇볕정책의 롤모델이었죠.”

두 정치인의 생각은 6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단다. 재선 의원 김대중은 66년 7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박정희 정부 통일정책을 비판하며 통일 논의 개방을 역설했다. 이 주장의 주된 논거는 서독의 활발한 통일 논의였다. “사민당 출신 브란트는 66년 기민당과의 대연정에서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맡아 할슈타인 원칙(동독 수교국과 관계를 끊는 정책)을 파기하며 동방정책을 추진했어요. 우리도 브란트처럼 해야한다는 게 김대중 생각이었죠.”

그는 71년 김대중 대선 후보 공약인 ‘미국과 소련, 중국, 일본 4대국 안전보장론’도 브란트의 영향이 짙다고 했다. “브란트는 통독이 유럽의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유럽의 평화 안에서 통독이 가능하다는 거죠. 이런 생각이 4대국 안전보장을 통해 남북한 화해·평화를 모색하자는 김대중 공약에 반영됐죠.” 김대중은 통독 이후에도 브란트의 조언을 경청했다. “브란트는 통독 1년 뒤 독일을 찾은 김대중에게 한국은 반드시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을 추진하라고 했어요. 독일처럼 흡수통일을 해선 안 된다고요. 독일은 통독하고 10년 동안 통일 비용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어요. 동독 지역에 큰돈을 쏟아부었지만 지금도 동독 지역 생활 수준은 서독의 70% 정도입니다. 동독 지역에서 지금 극우 세력이 득세하는 이유죠. 삶의 불안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적대합니다. 김대중은 이전에도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을 생각했지만 브란트 조언을 듣고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로 흡수통일이 어렵다는 생각을 굳혔죠.”

저자는 두 생애의 유사성도 주목했다. “브란트는 사생아, 김대중은 서자였어요. 서베를린과 호남이라는 변방에서 정치를 시작한 것도 같아요. 둘 다 선거에서 숱한 실패를 겪었고 공산주의자이자 민족 배신자라는 모함을 당했죠.” 한 가지 더, 둘은 대학 졸업장이 없었다. “브란트는 전후 독일 총리 중 유일하게 고졸입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후세 역사의 평가를 중시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브란트는 독일 정치인 중 저술 목록이 가장 길어요. 정치적 위기마다 책을 써 극복했죠. 김대중도 정치적 고비를 겪을 때나 혹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많은 책을 썼어요. 둘에게 독서는 견문을 넓히는 동시에 생의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죠.” 그렇기에 둘의 생애는 지금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에게 용기와 격려가 될 수 있다는 게 저자 생각이다. 정치인들은 이런 가르침도 얻을 수 있단다. “브란트와 김대중은 온갖 역경을 이기고 민주와 인권, 평화, 복지와 같은 보편가치에서 성과를 냈어요. 한국의 정치인들도 이들처럼 보편가치에 대한 비전을 가졌으면 합니다.”

올초 정년퇴임 맞아 ‘600쪽’ 역작
‘빌리 브란트와 김대중’ 저서 펴내
“동방정책의 햇볕정책 영향 첫 분석”

1960년대부터 ‘통일 방안’ 등 교감
변방·서자·고졸 등 개인사도 비슷
“역경 이기고 이뤄낸 ‘비전’ 배워야”

동방정책은 20년 뒤 통일로 이어졌다. 하지만 햇볕정책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왜? “한국과 서독의 정치 문화 차이 때문이죠.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펼칠 때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동독 스파이가 브란트 비서로 침투해 총리 임기를 2년 앞두고 사퇴해야만 했죠. 하지만 82년 기민당으로 정권이 넘어간 뒤에도 콜 총리는 다른 대안이 없음을 알고 동방정책을 계승했어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89년까지 중단없이 동서화해정책을 이어갔어요. 장벽이 무너졌을 때는 이미 절반은 통일된 거나 마찬가지였죠. 동방정책으로 많을 때는 한해 700만 명이 서독에서 동독을 찾았고, 500만 명이 동독에서 서독을 찾았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김대중 정부에서 통일 정책을 편 사람들이 특검으로 감옥에 가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햇볕정책의 성과를 다 물거품으로 만들었죠. 서독도 동독에 불법적으로 돈을 주고 정치범을 데려왔지만 여·야 어디서도 문제 삼지 않았죠.”

빌리 브란트 전 총리. 한겨레 자료사진
빌리 브란트 전 총리. 한겨레 자료사진

지금 한국이 브란트 동방정책에서 배워야 할 점은? “브란트는 현실을 직시했어요. 분단은 역사적 현실이며 억지로 통일하려고 하면 통일은 멀어진다고 생각했죠. 대신 동독을 국가로서 실체를 인정하고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민족 동질성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었었어요. 정치적 통일은 역사에 맡기자고 했죠. 또 궁극적 통일은 유럽의 평화 속에 가능하다고 생각해 주변국과의 외교를 무척 중시했어요. 김대중도 대통령 시절 주변 4대국 외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최 교수는 광주 지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이다. 민교협 공동의장과 광주시민단체대표협의회 상임대표를 지냈고 2년 전엔 광주 시민단체들 추대로 교육감 선거에 나가기도 했다. 시와 시민 사이 소통 구실을 하는 광주 시민권익위원회 위원장도 3년째 수행하고 있다.

2004년부터 2년간 전남대 5·18연구소장을 할 때는 교양과목 ‘5·18항쟁과 민주인권’을 개설해 6년 동안 직접 가르쳤단다. 광주항쟁을 다룬 논문도 6편이나 썼다. “80년 5월에 백령도에서 공군 장교로 있었어요. 제가 광주항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역사학자로서 기록이라도 남기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가 독일 사회민주당을 박사 논문 주제로 정했을 때는 80년대 중반이었다. 그 시절엔 “스탈린 정도는 돼야 진보로 봐주던 시절”이었단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사이비 사회주의라고 비웃을 때였죠. 하지만 저는 한국 상황에서 혁명은 어렵고 민주적 방식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봤어요. 진보 운동 역시 민주적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논문을 제출할 무렵 동유럽 변혁이 일어나 논문이 빛을 봤죠.” 그는 91년 논문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로 전남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사민당은 2005년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마지막으로 독일 총리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세 번의 연방의회 선거 모두 20%대 득표율에 그쳤다. “통독 이후 진보가 녹색당과 옛 동독 공산당으로 분화한 게 큰 이유죠. 극우도 급부상해 기민당 지지율도 떨어졌어요. 지금은 녹색당과 극우정당까지 해서 다당 체제입니다. 기민당도 득표율이 40%를 넘기지 못해 연정 구성에 어려움이 많아요. 극우를 파트너로 택할 수 없는 문제도 있죠. 사민당이 국민적 압력으로 대연정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당의 정체성은 더 흔들려 어려움이 많아요.” 그는 사민당이 진보 가치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지지율 하락의 요인이라고 했다. “전에는 계급 문제가 진보를 가르는 주요 가치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동성애나 기후변화, 평화 문제도 중요해요. 사민당이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녹색당이나 다른 정당들이 세를 확장했죠. 우리도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부분에서 한계가 있잖아요. 새로운 변화에 호응하는 소수 정당이 더 국회로 들어가야 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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