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 리부트: 지젝과 다시 읽는 마르크스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김유경 옮김/미디어창비·1만2000원
<공산당 선언 리부트>는 2018년 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돌을 맞아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가 <공산당 선언>에 쓴 서문을 우리말로 옮긴 소책자다. <공산당 선언>이 쓰인 1848년은 유럽에 혁명의 기운이 들끓던 때였다. 마르크스는 ‘유럽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며 이 유령이 머지않아 유럽을 장악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기대는 현실사회주의 실험의 파산과 함께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면 <공산당 선언>은 시효가 만료된 책인가? 지제크의 글은 이 물음에서 시작한다.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계급을 묘사하는 구절을 보자. 마르크스는 “생산의 끊임없는 혁명, 모든 사회상태의 부단한 동요, 영원한 불확실성과 운동”이야말로 “앞선 모든 시대와 구별되는 부르주아 시대의 특징”이라고 단언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 없어진다.” 부르주아계급은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세계주의적 성격”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산업들은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나오는 원료를 사용하며, 거기서 나오는 생산물은 지구 어느 곳에서든 소비된다.” 이런 특징은 마르크스 당대보다 오히려 오늘날의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와 더 잘 맞아떨어진다고 지제크는 진단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산당 선언> 전체가 오늘의 현실에 적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혁명계급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혁명 주체가 실종됐다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의 전망이 실패한 곳이다. 지제크는 특유의 신랄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서구 사회에서 새로운 혁명 주체를 찾아 헤매는 급진파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전통 노동자 계급을 대신해 제3세계 농민, 학생과 지식인, 배제된 경계인 따위를 대안으로 삼았다가, 이제는 ‘난민’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지제크는 간단히 혁명을 ‘외주화’하려는 어리석은 프로젝트라고 일갈한다.
그렇다면 길은 없는가. 지제크는 마르크스가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했던 사실을 사유의 거점으로 삼아보려 한다. 마르크스의 이 고백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기존의 모든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 마르크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처음부터 발본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말을 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혁명의 조건과 주체를 찾으려는 지제크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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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한국을 찾았을 때의 슬라보이 지제크.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