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평전
톰 라이트 지음, 박규태 옮김/비아토르·3만1500원
기독교 <신약성서>는 예수의 삶을 기록한 복음서를 빼면, 바울이 쓴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예수 시대에 중근동 일대에서 일어났던 무수한 메시아 운동 가운데 하나로 머물다 잊히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지만 바울의 삶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영국의 성공회 주교이자 성서신학자인 톰 라이트가 쓴 <바울 평전>은 이렇게 문헌 속에 흔적만 남은 바울의 삶을 성실하게 복원해 놓은 작품이다. 바울 신학의 권위자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특히 바울의 사상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인다.
이 책의 강점은 ‘바울’ 하면 떠오르는 상투적인 이미지를 깨부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바울이 여성을 천시하는 완고한 남성우월주의자였다는 비판은 온당하지 않다고 이 책은 말한다. 바울의 여성관은 당대 지중해 세계의 일반적인 수준에서 보면 오히려 개방적인 편이었다. 바울은 여성들을 자신의 선교 사업의 동역자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바울이 설파한 기독교 사상이다. 이 책은 바울이 이 세상을 부정하고 저 세상의 천국에 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 사람들을 이끌었다는 통념을 일거에 뒤엎는다. 바울에게 가장 절박했던 문제는 민족과 성별의 경계를 넘어 인류 전체가 신의 품에서 하나가 돼 ‘하느님나라’를 이 땅 위에 세우는 것이었다. 지은이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바울의 모습은 알랭 바디우 같은 철학자가 그려낸 ‘급진 혁명가 바울’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이 책은 예수의 사도로 거듭나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바울이 겪었던 고통을 기술하는 데도 힘을 쏟는다. 바울의 ‘회심’은 유대 율법을 충직하게 따르던 집안사람들과 극심한 불화로 이어졌고, 바울에게 “크나큰 슬픔과 끊임없는 고통”을 안겼다. 그런 괴로움은 바울의 선교 활동 중에도 되풀이됐다. 믿었던 동료들과 관계가 멀어지기도 했고, 이방의 땅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기기도 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결국 그 모든 일이 허사였단 말인가” 하고 탄식하며 절망에 빠지기도 했음을 ‘고린도 후서’의 우울하고 비감에 찬 문장들은 알려준다. 바울의 선교 행로는 괴로움과 두려움을 뚫고 나가는 험로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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