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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5월 광주’의 비극적 숭고미를 되살려내다

등록 2020-05-15 06:00수정 2020-05-15 10:57

40주년 맞아 나온 5·18 소설 두편
‘5월’ 전모 담은 정찬주 ‘광주아리랑’
마지막 밤 그린 정도상 ‘꽃잎처럼’
열망과 공포, 해방과 부활의 아리랑
실존인물 등장시켜 사실성 높여
“순간의 패배로 영원한 승리를”

광주아리랑 1, 2
정찬주 지음/다연·각 권 1만5000원

꽃잎처럼
정도상 지음/다산책방·1만4000원

학살과 저항의 드라마로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5·18 광주민중항쟁이 어언 40돌을 맞는다. 참혹하면서도 숭고했던 5·18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소설 두 편이 그 40주년에 맞추어 출간되었다. 정찬주의 두 권짜리 소설 <광주아리랑>이 1980년 5월14일부터 27일 새벽까지 보름 가까운 기간을 시간 순서대로 서술했다면, 정도상의 <꽃잎처럼>은 시민군이 공수부대에 맞서 도청을 사수하다 죽거나 체포된 26일 저녁 7시부터 27일 아침까지 마지막 11시간을 역시 시간 순으로 되살려 낸다.

임철우의 다섯 권짜리 소설 <봄날>부터 한강의 <소년이 온다>까지, 5·18을 다룬 소설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새롭게 발표되는 소설은 기존 작품들과 차별성을 확보해야 하는 동시에, 역사적 사실 자체의 비극적 숭고미를 허구적 감동으로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하는 까다로운 과제 앞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광주 5·18 민중항쟁을 그린 두권짜리 소설 &lt;광주아리랑&gt;을 내고 14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정찬주 작가. “죽마고우였던 시민학생투쟁위원회 홍보부장 박효선이 5·18이 진압된 뒤 서울 내 자취방에 열흘 정도 도피해 있는 동안 그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씨앗이 되었다”며 “5·18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세대가 미체험 세대에게 사태의 전모를 온당하게 알려줄 책무가 있다는 생각에서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광주 5·18 민중항쟁을 그린 두권짜리 소설 <광주아리랑>을 내고 14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정찬주 작가. “죽마고우였던 시민학생투쟁위원회 홍보부장 박효선이 5·18이 진압된 뒤 서울 내 자취방에 열흘 정도 도피해 있는 동안 그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씨앗이 되었다”며 “5·18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세대가 미체험 세대에게 사태의 전모를 온당하게 알려줄 책무가 있다는 생각에서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광주아리랑>은 5·18의 ‘전야’라 할 14일부터 공수부대의 도청 함락으로 상황이 일단락된 27일 아침까지를 70개 장으로 나누어 그린다. 시민군의 주력을 이룬 노동자와 도시빈민, 학생은 물론이고 상인과 교사를 비롯한 일반 시민, 성직자와 교수 등 시민대책위 지도부와 공수부대원까지 직간접 당사자들을 두루 내세워 사태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인물들은 모두 실명으로 등장하며, 대부분 광주와 전남 사람들인 그들이 지역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것이 <꽃잎처럼>과 다른 점이다.

“아리랑은 날마다 거리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졌다. 민주화를 위한 평화집회 때는 학생들이 열망의 아리랑을 불렀고, 공수부대의 만행이 극에 달했을 때는 시민들이 공포의 아리랑을 불렀다. (…) 도청을 탈환했을 때는 해방의 아리랑을 불렀으며, 계엄군이 다시 진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탄식의 아리랑을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시민들은 도청 광장에 다시 모여 부활의 아리랑을 부를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광주 시민들이 부른 각양각색의 아리랑을 묘사한 2권 후반부의 이 대목에서 소설 제목이 왔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아리랑 노래는 열망과 공포, 해방과 탄식 그리고 마침내 부활로 이어지는 역사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구실한다. 소설 말미에서 항쟁지도부의 홍보부장을 맡았던 연극인 박효선은 연극반 선배이기도 한 대변인 윤상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궐기대회를 험서 느꼈는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다 대본이 읎는 즉흥적인 대사로 허는 마당극이 진짜 연극이라는 것을 깨달았단 말이요.” 박효선의 말은 궐기대회를 가리킨 것이지만, 그가 말하는 ‘진짜 연극’은 열망에서 부활에 이르는 5·18의 전 과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손색이 없다. 지난주 ‘책&생각’ 커버로 소개한 책 <5·18 광주 커뮤니타스>에서 강인철 한신대 교수가 말한 “사회 드라마”가 바로 박효선의 ‘진짜 연극’과 통하는 개념일 것이다.

“화순에서 손님에게 광주 소식을 듣고서 구두 닦는 일을 접고 넘어온 박래풍, 공장에서 망치를 직접 만들어 나온 용접공 김여수, 견딜 수 없어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온 가구 노동자 김종철, 회사 일로 광주에 출장 나왔다가 공수부대원의 횡포를 보고 분개한 회사원 김준봉”처럼 시민군으로 참여한 민중의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면모를 충실히 부각시킨 것은 <광주아리랑>의 미덕이다. 시민군 내부의 무질서와 혼란, 민중 출신 시민군과 대학생들 사이의 긴장과 불화, 공수부대를 상대로 한 항복에 가까운 협상과 죽음을 각오한 저항을 놓고 맞서는 시민 지도부 내의 갈등을 있는 그대로 그린 점 역시 소설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모란의 붉은 꽃잎들은 이슬비에 견디지 못하고 화단에 뚝뚝 떨어졌다. 세 명의 시민군 눈에는 모란 꽃잎들이 핏방울처럼 처연하게 다가왔다.”

<광주아리랑> 2권에서 공수부대의 마지막 공격을 앞두고 도청을 떠나는 일부 시민군들이 목격한 떨어진 꽃잎들은 남은 시민군 동료들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대목은 정도상의 소설 <꽃잎처럼>의 제목으로도 이어진다. 정도상은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로 시작하는 노래 <오월의 노래 2>에서 제목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5월 광주’의 마지막 밤을 그린 소설 &lt;꽃잎처럼&gt;을 낸 작가 정도상. 1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5·18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사건이 아니라 광주·전남 민중민주운동의 큰 흐름 안에 놓여 있다는 생각에서 들불야학 강학들과 노동자들을 서사의 중심에 놓았다”고 말했다. 다산책방 제공
‘5월 광주’의 마지막 밤을 그린 소설 <꽃잎처럼>을 낸 작가 정도상. 1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5·18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사건이 아니라 광주·전남 민중민주운동의 큰 흐름 안에 놓여 있다는 생각에서 들불야학 강학들과 노동자들을 서사의 중심에 놓았다”고 말했다. 다산책방 제공

<꽃잎처럼>은 최후 결전을 앞두고 항쟁지도부를 구축한 윤상원의 들불야학 강학 및 노동자 학생 들을 중심에 놓고 사태를 서술한다. 들불야학 학생인 노동자 명수를 일인칭 주인공으로 삼고, 또 다른 가상 인물인 수찬 등 노동자 및 도시빈민 출신 시민군들을 배치해 계급적 균형을 맞추었다.

윤상원을 모델로 삼은 소설 속 인물 ‘윤상우’는 26일 오후 외신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패배가 분명한데도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은 백기를 들고 공수부대를 맞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깃발을 내릴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오늘 밤 패배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히 패배하진 않을 것입니다.”

1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정도상은 “‘왜 그 사람들은 그 새벽에 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서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질 것이 뻔한데도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쉽게 지지 않기 위해서”라며 “학생운동을 할 때에도 매 순간은 늘 패배하는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영원한 패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패배였다”고 설명했다.

40년은 어떤 시간인가. 갓 태어난 아기가 장년으로 우뚝 서는 시간, 스무살 푸릇했던 청춘이 노년의 입구에 들어서는 세월이다. 5·18 미체험 세대가 다수를 이룬 시점에서 두 소설은 문학적 감동을 선사함과 동시에 현대사 교육을 위한 자료로서도 요긴해 보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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