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코리안 티처>로 제25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가 서수진. “독자들이 알지 못하는 현실, 그러나 너무나 선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에 대해 써 나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수진 제공
“전화로 소식을 들었을 때 무릎을 꿇고 있었어요. 한겨레출판의 담당 편집자께서 당선을 축하한다고 하시는데, 소리 내서 엉엉 울었어요. 무릎 꿇고 운 건 처음 같아요. 너무 오랫동안 그와 같은 전화를 받는 일을 상상해 왔는데, 막상 그런 일이 생기니 감정이 복받치더라고요. 아직도 감격스러운 마음입니다.”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로 3천만원 고료 제25회 한겨레문학상을 받게 된 작가 서수진은 24일 이메일로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년째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살고 있는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상황이 불확실하긴 하지만 최대한 시상식에 참석하고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 티처>는 대학 한국어학당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여성 강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심사위원들은 “<코리안 티처>는 어학당에서 근무하는 네 명의 한국어 강사를 중심으로 교육노동자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 작품”이라며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등장하기에, 비단 어학당 내 고용 문제뿐만 아니라 언어 교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와 오해, 글로벌 계급 문제 등 좀 더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사실 제가 한국의 여러 대학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어요. 매 학기 강의평가를 받았고 강의평가가 안 좋을 때는 잘릴까 봐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그 외에도 저와 제 주변 동료들이 겪은 일들이 소설에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저는 특히 이 소설에서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사회가 고학력 여성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서수진은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를 했다. 2006년 경장편 <꽃이 떨어지면>으로 이화여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제1회 이화글빛문학상을 받았고 서울문화재단 웹진 <비유>와 문예지 <문학3> 등에 단편을 발표하긴 했지만, 신춘문예나 잡지 신인상 같은 ‘공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다. 수상작이 결정된 뒤 이런 사실을 확인한 일부 심사위원은 “이른바 공식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다행스럽고 믿음직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등단이라는 절차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발표 지면을 가지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서 신춘문예나 잡지 신인상에 투고를 엄청 많이 했었어요. 당선이 안 되었던 것뿐이지요. ㅎㅎ 한국 문단이 원하는 단편을 쓰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조금씩 웹진이나 신생 잡지, 신생 앱에 발표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저는 사실 어떤 타이틀보다 제 소설이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랐거든요. 아, 그리고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도 아주 중요했고요. 이제 책이 나오니 그런 기회가 더욱 많아지겠죠?”
그는 한겨레문학상 기 수상작 가운데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 장강명의 <표백>,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었다며 “최진영의 소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문장의 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했거든요. 문장들이 날이 서 있다고 해야 하나. 정말 앞에 뭐가 있든지 슥슥 베어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는 지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곳 역시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지금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고. 그 나라의 전체 확진자 수는 7천명이 조금 넘고 사망자는 100명을 갓 넘긴 상태다. 비교적 초기부터 국경을 봉쇄했고, 식당과 커피숍, 헬스장 등의 문을 닫는 셧다운에 이어 외출금지령(록다운)도 발동했으나, 지금은 셧다운 완화 1단계라고 그는 소개했다. “록다운 시절에는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남편의 가족도 두 달간 만나지 못했는데, 셧다운 완화 뒤 식당에도 다녀오고 친구 집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나 볼에 입을 맞추는 인사는 삼가요. ㅎㅎ 이 나라에 이민자들의 비율이 높고 아직도 외국에서 들어오는 숫자들이 있어서 계속 조심하는 분위기예요.”
그곳에서도 전자책으로 이주란과 장류진, 정세랑, 황정은, 손보미의 책을 읽었다고 그는 밝혔다. “소설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말 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말하고 보니 모두 젊은 여성 작가들이네요. 그래서 그런지 읽으면서도 반갑다, 고맙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한국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작가로서 활동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을 터. 그는 “영주권 문제로 1년이나 3년 정도 더 이곳에서 산 뒤에는 한국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저는 뿌리부터 한국인이더라고요. ㅎㅎ 가족들과 친구들도 그립고, 한국 책들이 가득 쌓인 도서관도 그립고요. 여기 살면서 도리어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더 많이 생겼어요. 한국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써 보고 싶어요.”
줌파 라히리와 이창래처럼 외국인과 이민자의 삶을 다룬 작가들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그는 “어디에서 살든 열심히 한국인의 삶에 대해 써 봐야겠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위로받는 기분인데, 그렇게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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