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창비·2만원
작가 황석영이 1989년 북한 방문 이후 30년 남짓 품어 온 철도원 삼대 이야기를 마침내 소설로 풀어 냈다. 제목 자체가 ‘철도원 삼대’인 그의 새 소설은 한국 철도의 탄생기부터 6·25 전쟁기까지 반세기에 걸쳐 철도 노동자와 기관사로 일한 삼대 세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에다가 2015년 현재 고공농성을 벌이는 그들의 노동자 후손의 싸움을 곁들임으로써 식민 시대 이후 한국 노동과 노동운동의 역사를 한 줄에 꿴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다.
“내가 오래전부터 언급해왔듯이 <철도원 삼대>에 대한 구상은 1989년 방북 때 평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작가의 말’)
방북 당시 그가 만난 평양백화점 부지배인은 전국노동조합평의회 소속 철도 기관수로 해방 공간에 작가와 마찬가지로 서울 영등포에 살았다. 그 아버지는 영등포 철도공작창에 다녔고 아들은 전쟁기에 “단기속성 과정을 마치고 기관수가 되어 낙동강전선의 군수물자 수송을 위하여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 철도원 삼대의 이야기가 이번 소설의 뼈대로 고스란히 들어왔다.
“이진오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 처음에는 난간을 잡고 시도해보았지만,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쭈그리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려면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야 했다.”
일제 감정기에서 6·25 전쟁에 이르는 철도원 삼대의 이야기를 원고지 2천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담은 소설 <철도원 삼대>를 낸 작가 황석영. “우리 문학사에서 빠진 산업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근현대 백여년에 걸친 삶의 노정을 거쳐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뿌리를 드러내보고자 하였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창비 제공
소설은 아파트 16층 높이인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는 해고 노동자 이진오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다니던 공장이 폐쇄되고 다른 회사에 팔리면서 졸지에 해고자가 된 진오는 노조 지회장으로서 책임감을 지니고 문제 해결을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고공농성을 택한다. 플라스틱 죽 그릇을 변기 대용으로 삼는다거나 건강 유지를 위한 체조와 운동, 그리고 굴뚝 위 농성장에서 채소를 키워 먹는 등 고공농성의 세부 묘사가 상세하다. 작가는 408일 동안 굴뚝농성을 벌였던 차광호 금속노조 전 지회장한테서 고공농성의 구체적 실상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 좁은 원둘레는 지상의 일상과 시간을 벗어난 우주선의 조종실 같은 곳이다. 그는 죽지 않고 여기 살아 있으나 세상은 그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 이진오는 차츰 지상에서의 시간을 벗어났고 굴뚝의 일상은 이미 현실이 아니게 되었다.”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상상하는 데에서 보듯 고공농성은 고독하고 막막하며 한편 자유롭다. 그런 고독과 자유가 이진오로 하여금 ‘시간 여행’에 나서게 한다. 가깝게는 영등포에 살던 어린 시절 영화관에 몰래 들어가 같이 영화를 보곤 했던 이발소집 동무 ‘깍새’에 얽힌 추억에서부터 멀게는 철도공작창 기술자였던 증조할아버지 이백만과 그 부인 주안댁에 관한 이야기까지 시공을 거슬러 오르는 그의 시간 여행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 100년이 풀려 나온다.
강화도 출신인 이백만은 십대 초부터 경성(서울)과 인천에서 갖은 일을 전전하다가 철도국 고원(직원)이 되어 영등포공작창에 자리를 잡았다. 일찍이 한강철교를 지나는 기차를 목격하고 그에 매혹된 백만은 두 아들 이름을 차례로 한쇠(일철), 두쇠(이철)로 짓는다. 일철은 철도종사원양성소를 거쳐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조선인 기관수가 되었으나 이철은 아버지를 좇아 철도공작창에 다니다가 파업을 주도하고 해고된 뒤 노동운동에 매진한다. 동생이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숨진 뒤 일철은 월북을 택하고, 그 아들 지산은 아버지처럼 철도 기관사가 되어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으나 부상을 입은 채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어 영등포 집으로 돌아온다. 이철과 동지들이 벌이는 노동운동에는 이재유와 김형선, 미야케 같은 실존인물이 등장해 서사의 깊이를 더하고, 주재소 밀정에서 출발해 악질 친일 경찰을 거친 다음 해방 뒤 용산경찰서장 자리에까지 오른 최달영 등을 통해서는 이승만 이후 남한 권력의 친일적 뿌리를 드러낸다.
철도원 삼대의 남성 서사는 이백만의 부인인 주안댁과 여동생 막음, 일철의 부인인 신금이로 이어지는 여성 서사로써 보완된다. 특히 홍수가 진 영등포 일대에서 초인적 힘과 지혜로 사람과 물건을 구한 주안댁의 전설 같은 활약과 막음의 출중한 입담 그리고 신금이의 신통력과 예지력은 이 소설을 딱딱한 사실주의의 틀에 갇히지 않게 한다. 작가 자신의 어릴적 추억이 깃든 영등포 일대의 옛 모습 묘사는 그 시공간과 무관한 독자조차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만든다.
“남쪽 도시 어느 곳에서는 택시 기사가 크레인에 올라가서 일년 가까이 농성 중이었고 기차의 여성 승무원들은 십여년 넘게 복직투쟁을 계속했다. 또 교사들은 법외 노조를 제도권 안으로 회복시켜달라고 몇년째 거리에 나와 있었다. 어디서는 청소원들이, 또 어디서는 임시직 노동자가 죽고 다치고 쫓겨났다.”
이진오의 고공농성은 돌출적이거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고 현 단계 한국 노동 현실의 정직한 반영이다. “조선소의 크레인 위에 올라가 일년여를 버텨낸 강철 같은 여성 노동자” 영숙은 김진숙을 모델로 삼은 인물일 것이고, “시 쓰는 노동자”는 송경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진오는 회사쪽과 협상을 거쳐 410일 만에 굴뚝에서 내려오지만 복직을 약속했던 회사는 결국 그와 동료들의 뒤통수를 치고, 진오와 동료들은 소주잔을 나누어 마시며 다짐한다. “다시 올라가자. 이번엔 내가 올라가겠어.” “저두요. 김선배, 저두 올라가겠어요.” 또 다른 고공농성을 기약하는 소설의 결말은 황석영의 중편 ‘객지’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동혁의 독백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를 떠오르게 한다. 동혁의 1970년대나 진오의 2010년대는 물론 진오 조상들이 살았던 식민 시대나 2020년대 현재까지도 노동자들의 처지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는 사실을 이 결말은 아프게 환기시킨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소설 <철도원 삼대>의 작가 황석영. 창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