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작가가 2일 창비서교빌딩에서 ‘철도원 삼대’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인삿말을 하고 있다. 사진 창비 제공
“지난번에는 헛걸음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진짜 사과드립니다.”
작가 황석영은 기자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의 말부터 했다.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지하 2층 행사장에서 열린 그의 신작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자간담회였다. 워낙 지난달 28일 예정이었으나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아 미뤄진 자리였다. 그는 “그 전날인 27일이 5·18 때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시민군이 계엄군에게 진압당한 날이어서, ‘광주 식구들’(광주의 시민사회운동가들)은 이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날 새벽부터 저녁까지 현장 행사에 참석했다가 밤에는 오랜만에 후배들과 막걸리를 한잔했는데, 술이 안 깨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며 “대형사고를 쳐서 죄송하다”고 거듭 해명했다.
책으로 6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인 <철도원 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기까지 철도공작창 노동자와 기관사로 일한 철도원 삼대의 이야기를 축으로 삼은 소설이다. 한반도는 물론 만주 벌판까지를 활동 반경으로 삼았던 기관사들의 이야기에다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들의 고투가 어우러진다. 그들의 후손으로 2010년대 현재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를 통해 노동 현실과 노동 운동의 연속성이 확보된다.
“2017년 자전 <수인>을 쓰고 나니까 간이나 쓸개 같은 내장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허전하고 막막한 느낌이 들더군요. 아, 이제 할 만큼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세계적으로도 작가들이 대개 80대 초가 되면 절필을 하곤 하는데 저도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여덟이거든요. 그렇지만 작가는 은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써야 하는 게 세상에 대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전북 익산에 집필실을 마련해 하루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을 꾸준히 앉아서 썼습니다.”
그는 “염상섭의 장편 <삼대>가 식민지 부르주아를 다루었다면 <철도원 삼대>는 그 뒤의 산업노동자를 다뤘다”며 “특히 이 작품에서는 민담 형식을 빌려서 리얼리즘을 확장하려 했다”고 소개했다.
“이번 소설을 쓰는 동안 다음 작품도 구상해 뒀어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철학 동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지금 있는 익산이 원불교의 발상지인데요,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쓰려 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현대 문명에 대한 질문과 반성이 늘고 있지 않습니까? 어린 소태산을 통해 그런 화두를 다룰 생각이에요. 젊을 때 <장길산>을 쓰느라 미륵사상을 깊이 공부했는데, 미륵사상의 유교적 발현이 동학이고 선교적 발현이 증산도라면 그 불교적 발현이 원불교입니다. 코로나 이후 세계에서는 탈인간중심주의, 생물과 무생물과 우주까지 포괄하는 사상과 철학이 중요해질 텐데, 원불교가 그에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친 김에 원불교에 귀의할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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