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파기의 즐거움
롤랜드 플리켓 지음. 박선령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 7800원
롤랜드 플리켓 지음. 박선령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 7800원
잠깐독서
1455년 영국 랭카스터 왕가와 요크 왕가는 뜻맞는 귀족들의 세를 규합해 서로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벌였다. 30년간 지속된 이 전쟁-이라기보다는 내란에 가까운-은 랭카스터 왕가가 붉은 장미를, 요크 왕가가 흰 장미를 각각 문장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장미전쟁’이라 불렸다.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더라도 이름만은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낯익은’ 전쟁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하나. 이들은 왜 전쟁을 벌였을까? “왕위계승권을 위해서”라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지식과 교양으로 철저히 무장된 사람일수록 더욱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장미전쟁의 실체는 “공공장소에서 코를 팔 수 있는 권리를 놓고 벌어졌던 내란”이며 “코 파기를 반대하는 쪽은 흰 장미 코덮개를, 찬성하는 쪽은 붉은 장미 코덮개를 쓰고 싸웠다”고, 관련 삽화까지 덧붙여 천연덕스럽게 주장하는 이 책을 말이다. ‘교양인을 위한 코 파기 박물학’이라는 부제가 달린 <코 파기의 즐거움>이다.
영국의 대헌장 ‘마그나카르타’,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전쟁 등 인류 인권신장의 역사는 코 파기 권리 쟁취사에 다름아니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코파리자’, 미켈란젤로의 ‘코딱지 창조’ 등의 예술작품도 인류 최고의 취미활동인 코 파기를 찬미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지한’ 농담을 끝갈데 없이 밀어붙인다. 코 파기 카운슬링·기술분석·어휘사전에까지 이르고 나면 어느새 피식거림은 사라지고 지은이와 같은 ‘진지 모드’로 동화돼버린다. 또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이 콧구멍을 향해 움찔거리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성 코털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코 파기에 대한 연구에 정진하다 지금은 모교의 코 고고학과 명예교수이자 옥스퍼드 코파막파 대학의 특별연구원으로 초빙된 상태에 있는 지은이 롤랜드 플리켓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뭘 망설이나? 가식과 체면일랑 벗어던지고 쑤시고 싶은대로 쑤시면 되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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