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의 탄생-세기말 파리, 시각문화의 폭발
바네사 R. 슈와르츠 지음. 노명우·박성일 옮김. 마티 펴냄. 1만4500원
바네사 R. 슈와르츠 지음. 노명우·박성일 옮김. 마티 펴냄. 1만4500원
잠깐독서
19세기 말 파리, 군중들은 ‘볼 수 있는 무엇’을 갈망했다. 그들은 구경거리를 찾아 대로를 거닐고, 카페 의자에 앉아 다른 사람을 관찰했다. 이들의 시선을 활자로 옮겨놓은 신문의 연재소설도 인기였다. 하지만 시각을 자극하려면 더욱 선정적인 쾌락이 필요한 법. 급기야는 ‘죽은 사람이 누구냐’를 확인하기 위해 일반인에게 공개된 시체공시소 ‘모르그’에 수천명의 구경꾼들이 물밀듯 몰려들었다. 구경꾼에는 귀부인이나 노동자, 어른아이의 구분도 없었다. 시체의 신원확인이라는 ‘시민적 의무’는 자극적인 구경거리로 변형됐다.
주검에 대한 이들의 환호는, 이어 밀랍인형을 전시한 그레뱅 박물관으로 옮겨간다. 유명한 범죄 장면, 인기소설 장면 등이 그대로 재현됐다. 신문과 모르그가 현실 자체를 ‘전시’했다면, 밀랍 박물관은 사실주의적인 볼거리로서 현실을 ‘재현’했다. 방문객들은 마치 ‘산보자’처럼 밀랍인형이 보여주는 생생한 현실을 둘러보면서, 구경거리에 관여하는 동시에 구경거리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믿었다. 파노라마와 영화의 출현은, 이런 시각효과의 정점에 서 있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산물만은 아니었다. 시각적 쾌락을 즐기는 구경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는 산보자의 이동하는 시선을 구체화했고, 구경거리의 사실성을 유지하기 위해 서사를 사용했으며, 현실을 매우 기술적인 방법으로 재현했다.”
이처럼 <구경꾼의 탄생>은 세기말 파리에서 현실이 어떻게 구경거리로 변형됐으며, 볼거리로 가득찬 대도시에서 어떻게 ‘새로운’ 군중이 만들어졌는지를 세밀하게 훑어내려간다. 모르그·그레뱅 박물관 등 당시 대중문화에 대한 미시적이고도 풍부한 접근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세기말 파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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