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
리처드 다이어 지음, 박소정 옮김/컬처룩·2만8000원
서구 백인 사회가 자기 자신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상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탈근대철학의 등장 이후의 일이다. 1970년대 말 에드워드 사이드는 탈근대철학의 논의를 이어받아 쓴 <오리엔탈리즘>으로 서구중심주의 해체에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사이드는 이 책에서 서구가 동양을 왜곡한 뒤 이 왜곡된 상을 거울로 삼아 자기 자신의 ‘우월한’ 정체성을 구성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1990년에 나온 로버트 영의 <백색신화>는 사르트르·알튀세르·푸코 같은 가장 진보적인 이론가들조차 서구 중심의 ‘백색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줌으로써 서구 사회의 자기비판을 한 발 더 전진시켰다.
영국의 문화연구자 리처드 다이어.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국의 문화연구자 리처드 다이어(킹스칼리지런던 영화학과 명예교수)의 <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은 서구 백인의 자기비판에서 또 한 번의 진전을 보여주는 저작으로 평가받은 책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백인이라는 인종이 서구의 예술 매체에서 다른 인종들과는 구별되는 특권적 지위를 누리면서 인류를 대표하는 ‘보편적 인간’으로 재현되는 양상을 추적한다. 지은이가 다루는 매체는 르네상스 시기 이래 서구의 회화, 19세기에 발명된 사진, 20세기에 대중화한 영화들인데, 지은이는 특히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를 통해 ‘백인성’이라는 기표가 어떻게 모든 인종을 초월한 보편적 기표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때는 1997년인데, 이 책 이전에도 영화를 비롯한 예술 매체의 인종주의를 분석하는 저작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책들은 주로 ‘유색인’이 예술 매체에서 어떤 식으로 그려지는가를 탐색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책은 그런 반인종주의 담론의 공백으로 남아 있던 ‘백인 자체’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전의 책들과 구별된다. 말하자면 이 책은 백인이라는 인종이 재현되는 양상을 백인 자신의 눈으로 분석해 백인의 보편성을 해체한 최초의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선구자적 역할 때문에 이 책은 지난 20여년 사이 문화연구 분야에서 고전적 지위에 올랐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은이는 성장과정에서 겪은 내밀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어려서 인형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던 지은이는 이상하게도 백인이 아닌 친구들에게 유대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지은이는 그 친구들이 자신과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백인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 한다. 이어 지은이는 청소년기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동성애자라는 이 주변부성이 백인으로서 정체성에 균열을 일으켰고, 이 균열이 ‘백인성’을 성찰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유색인’이라는 단어 대신에 ‘비백인’(non-whit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유색인이라는 단어는 백인을 ‘무색인’ 곧 ‘색이 없는 인종’으로 이해하도록 오도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강조하는 대로 백인은 분명히 피부색이 있는 유색인이다. 더구나 피부색이 실제로 백색인 것도 아니다. 백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유색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흰색은 색이 아니며 색을 초월해 있다’는 백인들의 관념이 반영된 것이며, ‘색이 없다’는 관념은 백인이 모든 유색인들과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시에, 백인이 스스로 백인이라고 칭한 것은 단순히 살결이 상대적으로 밝기 때문이 아니라, 백색이라는 상징 속에 정신·순수·고결 따위의 의미가 배어 있기 때문임을 지은이는 역사적 문헌들을 통해 밝힌다.
백인 사회에서 ‘인종’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도 ‘유색’이라는 말이 쓰이는 상황과 유사하다. 인종은 백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유색인종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지 백인 자신들을 향해 쓰이지 않는다. 백인은 인종의 하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다. “다른 사람은 인종이고 우리는 그냥 인간이다.” 이것이 백인들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백인은 언제나 특수성을 넘어선 보편성 자체로 자신을 드러낸다. 반면에 인종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인종을 대변할 뿐이어서 인간으로서 보편성을 구현하지 못한다. 이런 백인 중심성은 숱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되풀이하여 재현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백인이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매체 기술을 선택적으로 발전시킨 결과임을 보여주는 데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19세기에 유럽에서 발명된 사진은 백인의 얼굴을 가장 아름답게 재현하는 데 기술 개발을 집중했고, 백인의 얼굴은 자연스럽게 규범으로 정착했다. 백인을 표준으로 삼은 사진 기술은 20세기에 영화 촬영 기술로 그대로 옮아갔다. 문제는 백인의 얼굴을 드러내는 데 최적화한 촬영 기술이 백인이 아닌 사람을 촬영할 때는 전혀 적합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백인과 비백인이 함께 나올 경우 비백인은 잘 보이지 않거나 얼룩이 지거나 실제보다 못생겨 보이게 된다. 백인 중심성은 이렇게 촬영과 조명 기술에 힘을 행사했고, 비백인은 이 보이지 않는 백인 중심성 아래서 미적으로 주변부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됐다.
백인으로서 지은이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백인의 특수성에 대한 자기 인식’이다. 백인은 보편적 존재가 아니며, 백색은 여러 색깔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백인은 자기 자신을 특수한 인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만든 기준을 인류의 보편적 기준으로 세우고 그 기준에 맞춰 자신들을 정상으로, 다른 인종은 그 정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백인 중심성이 해체되지 않는 한, 인종적 다양성과 혼종성이 평등하게 어우러지기는 요원한 일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백인은 스스로를 백인으로 보는 법을, 자신들의 특수성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 백인은 (백인 자신에게) 낯설어져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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