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 재능을 지녔지만 불우한 생을 산 아담 엘스하이머의 1609년 작 <이집트로의 피신>에 담긴 밤하늘 풍경.
검은색 바탕에 반짝이는 책 제목이 별빛처럼 새겨졌다. 반듯하게 그어진 글자를 둘러싸고 앙증맞게 축소된 명화와 조각상, 행성이 유영하듯 떠 있다.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이란 부제가 붙은 <그림 속 천문학>의 표지가 건네는 첫인사다. 미술을 전공한 김선지 작가는 천문학자인 남편 김현구 박사(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와 협업해 ‘그림’과 ‘천문학’을 엮어 지면에 풍성한 전시를 차렸다. 일 년 내내 이 주제에 몰두한 지은이는 책을 펴내며 “충만감을 느낀다”는 소회를 밝혔는데, 독자에게 남는 인상도 다르지 않다. 책은 우리의 아득한 미래에 닿아 있는 태양계 행성과 인류에게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그리스 로마 신화, 별처럼 빛나는 예술품을 지상에 심어놓은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천문학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며 해석의 묘미를 가득히 선사해준다.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나뉜다. ‘파트 1’에서는 태양계의 해와 달, 목성, 금성 등 행성들의 특성을 살피고 행성과 관련된 신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술 작품을 들여다본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옛사람들은 나름의 유사성을 찾아 목성-주피터, 수성-머큐리, 금성-비너스와 같이 그리스 로마 신들의 이름을 매치했다. 행성들의 위성에도 명명된 각각의 신과 관련된 이들의 이름을 붙였는데, 시간과 공간 모두 서로 아스라한 ‘우주의 행성’과 ‘인류의 신화’가 흥미로운 관계를 맺는다. 이 둘을 매개하며 펼쳐진 사고의 차원에는 책이 전하는 지적 즐거움이 밀도 있게 담겼다. 신화 속의 동일한 사건을 두고 동시대 또는 다른 시대의 화가가 저마다의 해석과 기법을 따라 개성적으로 표현해낸 그림들은 우주의 무수한 행성같이 제각기 존재감을 드러낸다.
‘파트 2’에서는 뒤러, 조토, 엘스하이머, 루벤스, 고흐, 미로, 칼더, 오키프 등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작품 속 별, 우주, 밤하늘에 집중해 작가 개인의 삶을 조망함으로써 작품 세계를 부각시킨다. “인류는 끊임없이 별을 보면서 사유하고 탐구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왔음을 확인시켜주는 예술 작품들은 인간의 태생적 고독을 달래주는 위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천재적 재능을 지녔지만 불우한 생을 산 엘스하이머의 1609년 작 <이집트로의 피신>에 담긴 밤하늘 풍경과, 불행과 불운으로 고단한 삶을 살다 간 고흐의 1889년 작 <별이 빛나는 밤>의 밝게 소용돌이치는 별은 애잔한 감흥을 불러온다.
책에 담긴 그림들이 언젠가 한 번쯤 만나본 명화들임에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새롭게 인식되는 건 잘 차린 전시의 숙련된 안내자처럼 지은이가 꼼꼼하게 서술하며 이끈 덕분일 듯하다. 소개된 작품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기지 않고 당대의 시선을 고려한 해석과 현재적 시각을 함께 드러낸 근사한 탐사가 여운을 준다.
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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